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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지사, 국민의 수준을 묻는다

보통 정치인이 아니다
시대의 표상으로서 나라에 던진 과제는
대장동 파문보다 훨씬 무겁고
근본적인 것 아닐까

[선우정, "이재명 지사, 국민의 수준을 묻는다" 조선일보, 2021. 10. 13, A30쪽.]

그제 국민의힘 대선 토론회에서 한 후보가 이재명 경기도 지사를 “대량 살상 무기”라고 했다. 방송 토론이었는데도 직함과 경칭을 달지 않고 흉악범 부르듯 이름만 불렀다. “조폭을 척결하듯 그를 척결하겠다”는 후보도 있었다. 뇌물죄, 배임죄, 국고손실죄 등 죄목도 야당 후보들끼리 정했다. 이재명 이름만 나오면 신들이 나는 듯했다. 이게 요즘 국민의힘 분위기인 모양이다.

안희정 지사와 박원순 시장이 몰락하고 이 지사의 선거법 재판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뒤 “이재명이 정말 대통령 되는 거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답을 원해서 묻는 건 아니었겠지만 “형수에게 한 욕설을 들으면 그런 사람을 누가 지지하겠냐”고 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그를 지켜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침전물처럼 어둡게 고인 인생 밑바닥을 넘어서 국민 일부는 더 큰 무언가를 그에게서 발견하는 게 아닐까, 이재명 지사가 시대의 표상으로서 이 나라에 던진 과제는 그런 것보다 훨씬 무겁고 근본적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얼마 전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이번 대선을 “이익 투표”라고 했다. 대선은 승자와 패자만 남는 게임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모든 사안을 정치적 유불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대장동도 그런 단계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대장동 파문은 그의 희망과 달리 오래 가겠지만 결국 정치 게임으로 수렴하고 선거는 각자의 득실에 따르는 이익 투표로 귀결될 것이란 의견에 동의한다. 김오수 검찰이 여당 후보를 겨냥할 리 없고, 여당이 특검법을 만들 리 없고, 야당 유력 후보들이 이익 투표를 가치 투표로 바꿀 수 있는 정치 역량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은 성남시민, 개발지 주민 등 다수의 이익을 빼앗아 소수에게 퍼주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지사가 대장동과 반대로 설계한 것이 ‘이재명식 기본소득’이다. 소수의 이익을 빼앗아 다수에게 나눠주도록 돼 있다. 그냥 다수가 아니라 모든 국민, 모든 유권자를 수혜 대상으로 했다. 그동안 유력 대선 후보는 증세와 금전 살포를 이렇게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매표(買票) 비난 때문이다. 대장동에 한계가 없었듯 대선에서도 그에겐 한계가 없다. 그는 기본소득을 통해 나라를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다.

그는 국민에게 1인당 매년 100만원을 주겠다고 한다. 기본소득은 생계비라 보통 월 단위로 말한다. 8만3000원이다. 그런데 크게 보이려고 연 단위로 말했다. 사실 기본소득이 아니라 용돈 수준이다. 문제는 이 용돈을 주려고 매년 세금 59조원을 쓴다는 것이다. 국방 예산(53조원)보다 많다. 재원이 없으니 국토보유세를 걷겠다고 했다. 이 세금으로 기본소득 절반을 댄다고 해도 부동산 보유세를 두 배 늘려야 한다. 한국은 부동산 세율이 낮지만 땅값 폭등과 많은 거래세, 상속·증여세로 재산 관련 세수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지사 주장과 달리 부동산 등 재산을 가진 국민이 이미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백번 양보해도 이렇게 걷은 귀중한 세금을 “봄날 흩날리는 벚꽃잎처럼(윤희숙 전 의원 표현)” 왜 ‘이재명 용돈’을 위해 허무하게 날려야 하는가. 하지만 좌파는 그럴수록 다수의 지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후진국일수록 사실이 그렇다.

어느 편이든 대장동 의혹에 분노하지 않는 국민은 거의 없다. 다수의 공적 이익을 소수가 과하게 가져갔기 때문이다. 성숙한 국민이라면 같은 논리로 ‘이재명식 기본소득’에도 분노해야 한다. 아무리 부자라도 개인이 모은 재산을 과하게 가져가선 안 된다. 그리고 재정을 무너뜨린다. 무엇보다 그렇게 거둔 공공 자금을 선거라는 사적 목적에 이용하고 있다. 6년 전 스위스 국민은 국민투표를 통해 기본소득을 거부했다. 그가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핀란드처럼 2년 동안 사회 실험이라도 해보고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어야 한다. 그런데 집권 다음 해 실행을 약속하고 “세계 최초”라고 자랑한다. 당장 선거에서 써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대장동보다 이 나라를 훨씬 위험하게 만들 것이란 주장에 동의한다.

이 지사는 여론 주도 능력이 탁월하다. 상대가 백 가지 문제점을 얘기해도 자신이 원하는 핵심만 반복해 말한다. 그는 “40년 전 매월 7000원만 있었다면 제가 공장을 다니다 팔에 장애를 입는 불행이 없었을 것이고, 송파 세 모녀에게 월 30만원만 있었으면 극단적 선택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복잡한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비약을 통해 대중을 설득한다. 국민의 증세 고통을 가진 자의 꾀병으로 몰아붙이고, 여기에 소년공과 세 모녀의 고통을 대입한다.

이 지사는 보통 정치인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 수준과 경제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실험하면서 나라를 바꾸려고 한다. 야당 후보가 그를 얕보고 모욕하면 당장은 후련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허망한 얘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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