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제재] 금융 핵폭탄, 스위프트(SWIFT)
2022.03.03 13:37
금융 핵폭탄, 스위프트(SWIFT)
[김홍수, "금융 핵폭탄, 스위프트(SWIFT)," 조선일보, 2022. 2. 28, A34쪽.]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2005년 미국이 북한 김정일의 통치 자금 2500만달러가 은닉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사건을 두고 나중에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이 한 말이다. 최고 권력자의 비자금이 묶이자 북한은 1차 핵실험을 단행하는 등 강력 반발했지만, 미국과 막후 협상에선 BDA 제재 해제를 통사정했다. 독재자의 약한 고리는 ‘돈줄’이라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난해 1월 이란 혁명수비대가 별안간 한국 화물선을 나포했다. ‘해양 오염’ 핑계를 댔지만, 실제 이유는 ‘돈’이었다. 한국은 금융 제재를 받는 이란 원유 수입을 위해 ‘원화 결제 계좌’라는 우회로를 만들었다. 원유 수입 대금을 이 계좌에 예치하고, 한국 기업이 이란에 수출한 대금을 빼 가는 상계 결제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정부가 원화 결제까지 가로막자 70억달러가 묶였고, 화가 난 이란이 한국 화물선에 분풀이한 것이었다.
▶미국과 서구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결제망(SWIFT)에서 러시아를 축출하기로 결정했다. 스위프트는 200여 나라 1만1000여 금융기관이 이용하는 국제 송금·결제 시스템이다. 스위프트에서 축출되면 러시아는 달러 결제가 안 돼 최악의 경우 원유, 천연가스 수출이 중단되고, 중앙은행의 보유 외환 6300억달러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없게 된다.
▶스위프트는 프랑스 재무장관이 “금융의 핵무기”라 부를 정도로, 서구 동맹국들이 아껴놓은 비장의 무기다. 하지만 원유의 26%,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EU(유럽연합)로선 상당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러시아에 한 해 40만대 이상 자동차를 수출하는 한국도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가 암호 화폐나 중국의 위안화 국제 결제 시스템(CIPS)으로 우회로를 뚫으려 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달러 결제망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일각에선 스위프트 축출에서 더 나아가 푸틴 대통령의 해외 은닉 재산까지 동결해야 ‘금융 핵폭탄’이 완성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푸틴의 아킬레스건은 1000억달러대 해외 은닉 재산”이라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언하면서 “러시아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핵무기 덕에 서방의 군사 개입은 차단했지만, 서구의 금융 핵무기 공세까지 잘 막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