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전쟁] 70년 전 졌던 원조 빚
2022.03.10 10:16
70년 전 졌던 원조 빚
[김태훈, "70년 전 졌던 원조 빚," 조선일보, 2022. 3. 4, A38쪽.]
6·25전쟁에 참전한 리처드 위트컴 미 제2군수사령관은 한국인이 겪는 전쟁의 참상에 눈물을 흘렸다. 부산항에 들어오며 수송선에 무기뿐 아니라 구호물자를 한가득 실었다. 군수 지원과 별도로 이재민을 위한 주택 200가구를 지었고 부산 메리놀병원 건립 자금 모금에도 앞장섰다. 부하 장병을 대상으로 급여 1% 모금 운동도 펼쳤다. 휴전 후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밴 플리트 장군과 함께 한미재단을 설립해 전쟁 폐허 복구를 도왔다. 그는 미 의회에서 이렇게 이유를 설명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많은 나라가 위트컴 장군처럼 한국을 도왔다. 유엔은 16국이 전투병을 파병한 것과 별도로 ‘한국 민간인에 대한 구호’를 결의했다. 이 결의에 따라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 여섯 나라가 의료진을 파견했다. 이 나라들은 휴전 후 한동안 돌아가지 않고 의료 기술을 전수하거나, 귀국하며 의료 장비를 기증했다. 인도는 파병한 야전병원 부대원 수십 명이 적의 포격에 죽거나 다치는 희생도 겪었다.
▶국제 구호 단체들도 팔을 걷었다. 세계적 구호 단체 월드비전과 컴패션은 최초 설립 동기가 6·25전쟁 중 생긴 고아들을 돕자는 것이었다. 6·25 난민과 이산가족·고아 돕기에 나선 NGO가 130곳을 넘어섰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받은 나라였다. 그들이 내민 도움의 손길엔 전후 한국의 미래를 위한 지원도 포함됐다. 1951년 교과서 인쇄 공장을 지어준 게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는 우크라이나에 전 세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70만 피란민 구호를 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개인들은 구호 계좌로 송금하고 인증 샷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KFC와 맥도널드는 음식 기부를 시작했다. 테슬라는 우크라이나 접경 국가에서 구호 활동 중인 전기차 무료 충전을 지원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국을 언급한 적이 있다. “발전할 수 있고, 강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은 우크라이나의 아주 좋은 본보기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허덕이던 이 나라를 인류애로 뭉친 세계가 돕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우크라이나의 모범이 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세계의 도움을 발판 삼아 자유 민주 번영을 누리는 국가로 우뚝 선 대한민국이야말로 우크라이나를 향한 전 세계의 도움 행렬 맨 앞에 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