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파탄] ‘죽창 경제’의 종말
2022.03.17 10:17
‘죽창 경제’의 종말
머리는 펄펄 끓고 손발은 오작동한 3류 진보 정권
편가르기 정치 셈법으로 고차방정식 경제 풀다 민생 망치고 곧 퇴장
[강경희, "‘죽창 경제’의 종말," 조선일보, 2022. 3. 14, A34쪽.]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김대중 정부를 ‘첫 민주 정부’라고 했다. 문 정권은 자칭 ‘민주 정부 3기’라는 것이다. 객관적 표현을 쓰자면 3기 진보 정권 내지는 좌파 정부다. 대북·외교안보 정책에서는 1·2·3기의 맥이 이어진다. 보수 정권과는 확연히 차이 난다. 경제 정책은 결이 좀 다르다.
1기 진보 정권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받은 가운데 출발했다. 위기 수습에 총력전을 펴느라 경제 정책이 좌파 색채를 띠지는 않았다. IMF 협의하에 거시경제와 구조조정의 큰 틀이 정해졌다. 이규성, 강봉균, 이헌재, 진념, 전윤철 같은 유능한 경제 관료들이 사령탑을 맡아 경제를 정상화했다.
진보적 경제 색채가 나타난 건 2기 노무현 정부 때다. 재정 지출이 선진국보다 적다며 ‘큰 정부’의 시동을 걸었다. “상위 20%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면 80%가 혜택 본다”며 대통령이 ‘20대80′ 편 가르기를 경제 운용에 도입했다. 2%에게 세금 물려 98%를 덕 보게 할 수 있다며 종부세를 도입했다. 부동산 참사 등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이 그나마 후한 평가를 받는 건 운동권 세력이 경제를 좌지우지 못 한 덕분이다. 김진표, 이헌재, 한덕수, 권오규 같은 역량 있는 경제 관료들에게 경제 운용을 맡겼다. 엘리트 관료들이 이념 과잉에 브레이크 거는 역할을 했다. 한·미 FTA 등 국가에 도움 되는 정책은 대통령 스스로 이념을 접고 실용을 택했다.
3기 문재인 정권은 부동산 대참사만 ‘노무현 시즌2′이고 나라 살림은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1·2기 진보 정부가 버럭할 ‘퇴보 정부’다. 좌파의 스타 학자 장하성, 김상조, 조국 등이 정권 브레인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여했던 김수현이 청와대에 컴백해 부동산 정책을 지휘했다. 불타는 이념으로 가슴이 뜨겁다 못해 머리까지 펄펄 끓고 작동 능력은 부실하기 그지 없는 3류 정부를 구성했다. 똑똑하고 소신 있는 경제 관료는 호락호락하질 않으니, 부리기 좋은 예스맨(홍남기 경제 부총리)을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로 앉혀놨다. 탈원전 총대는 교수 출신 샌님(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에게, 부동산 행동대장은 소신 강한 부동산 문외한(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에게 맡겼었다. 소득 주도 성장,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과속 인상, 탈원전, 부동산 규제 등 ‘우리 이니 마음대로’ 다 해봤다.
기업들이 열심히 공장 돌리고 수출해서 나라 경제가 이만큼 버텼지, 정부가 손댄 경제 성적표는 형편없다. 연 400조원 나라 살림 물려받아 600조원으로 씀씀이를 키웠다. 돈 모자라니 마구 국채 찍어 나랏빚 1000조원을 앞당겼다. 서울 아파트 값은 두 배로 올렸다. 약자 편이라는 좌파 정권이 무주택자의 가난을 고착화시켰다. 집값 올랐다고 세금 ‘삥’ 뜯다 집 있는 유권자들을 등 돌리게 만들었다. ‘비정규직 제로’ 정부에서 비정규직이 사상 최대다. 한·일 관계는 ‘죽창가’ 외치며 악화시켰다. 코로나 팬데믹이 없었다면 문 정부의 경제 운용 실력이 더 드러났을 텐데 그나마 감춰졌다.
좌·우 정당의 역사가 깊은 유럽에서는 좌파 정당이 철 지난 이념에 갇히지 않고 중도로 수렴하면서 정책을 쇄신해 국가 미래를 책임지는 통치 역량을 입증했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제3의 길’로 18년 집권 보수당을 누른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그랬다. 독일의 좌파 슈뢰더 총리는 저성장의 독일병을 고치느라 지지 기반인 노조에 반하는 노동 개혁을 단행해 독일 경제를 되살렸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자기 쇄신은 없었다. 말로만 공정, 정의 외치고는 자기편끼리 문 닫아 걸고 부패, 탈선 눈감아주며 권력 떡고물 챙기는 데 집착했다. 정권의 위세를 등에 업은 노조의 막무가내, 납작 엎드린 관료의 보신주의는 극심해졌다.
‘문재인의 청와대’는 인상적인 두 컷의 사진으로 시작되고 끝났다. 시작은 산뜻했다. 취임 다음 날인 2017년 5월 11일, 문 대통령과 참모진이 양복 상의 벗어놓고 흰 드레스셔츠 차림으로 테이크아웃 커피 들고 활짝 웃으며 청와대 경내를 걸었다. ‘문의 남자’ 조국, 임종석 등이 곁에 있었다. 개방, 소통, 포용의 정부가 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듯했다. 민낯과 실력이 드러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선 다음 날인 2022년 3월 10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 와중에 우는 장면이 보도됐다. 3류도 못 되는 후진적 국정 운영으로 국민 앞에 사죄의 눈물을 흘려도 시원찮을 판인데, 민망한 아부로 벼락 출세한 여성이 ‘대선에서 졌다’고 공식 석상에서 질질 짜는 장면으로 ‘문재인의 청와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비루한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