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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여당 대표의 처신

보수주의는 순결한 사람만 정치해야 한다고 위선 떨지 않는다
단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도덕성에 따라 처신하라는 것이다


[선우정, "보수 여당 대표의 처신," 조선일보, 2022. 9. 14, A30쪽.]

정치인에게 감동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재작년 제주도 광복절 경축식 때 원희룡 제주지사의 모습이 그랬다. 광복회 관계자가 이승만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을 맹비난하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독설을 기념사라며 대독했다. 그러자 원 지사는 단상에 올라가 이를 반박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치우친 역사관을 기념사라고 대독하게 한 처사에 대해 매우 유감입니다. 김일성 공산 군대가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고 왔을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과 국민이 있습니다. 그중엔 일본군에 복무했던 분도 있습니다. 역사 앞에서 우리는 공과 과를 겸허하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받아야 된다는 식으로 역사를 조각내는 시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듬해 김 회장은 야당을 향한 노골적인 저주로 발언 수위를 올렸다. 과거 보수 정부를 ‘친일 정권’으로 단정하고 “이들은 대한민국 법통이 조선총독부에 있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경축식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했다. 같은 편이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야당 대표는 다르다. 연설은 화상으로 진행됐다. 원 지사였다면 송출 중단을 요구하고 항의했을 것이다. 퇴장해도 괜찮았다. 정당 대표가 굴욕을 당하고도 그냥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굴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반응이 없었다. 경축식이 끝나자 문 대통령 부부에게 꾸벅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이날 그를 사로잡은 건 야당 내에서 일어난 이른바 통화 녹취록 유출 공방이었던 것 같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쏟아낸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대부분 이 문제에 대한 변명이었다. 언제나 그에겐 외부 공격보다 내부 공격이 훨씬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역사적 정당성, 보수의 가치, 이런 말은 재미없다. 원 지사가 “김일성 공산 군대”라며 반론을 시작했을 때 “아, 또 저 얘기”라며 외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인은 그래도 된다. 하지만 당대표는 다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 표현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에 대한 비유로도 유명하다. 이준석 대표가 강한 발언권을 가진 이유는 앞선 보수 정당 선배들의 위대한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에 비유할 수 있다. 거인을 모독하는데 이 대표가 침묵했다. 원 지사의 말처럼 “역사 앞에서 공과 과를 겸허하게 보는 자세”로 “치우친 역사관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대표의 의무였다. 그런데 지키지 않았다.

지난달 이 대표의 눈물 회견은 ‘개고기 발언’ 말고도 보수의 시각에서 주목할 부분이 많았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지지층 절반이 태극기를 보면 자동으로 왼쪽 가슴에 손이 올라가는 국가 중심의 가치를 중시하는 당원”이라고 했다. 국기에 대한 애정으로 표현되는 애국주의와 국가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썩어서 문드러진 반공 이데올로기” “60년째 북풍의 나발을 부는 집단”이라고 정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반공은 썩어서 문드러지지 않았고 북풍 나발 역시 멈출 수 없다. 윤핵관 때문이 아니라 북핵과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틀렸다. 세율 인상 없이 경제를 키워 복지를 감당한 사례가 많다. 필요하면 증세를 할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자제하는 게 보수다.

보수의 관점에서 이 대표의 핵심 문제는 도덕성이다. 논란이 많은 성 매수 주장을 들추려는 게 아니다. 보수주의는 좌파처럼 순결한 사람만 정치를 해야 한다고 위선 떨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법에 앞서 도덕성을 처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어떤 총리 후보자는 변호사 수임료 16억원 때문에 물러났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지만 도덕성을 중시해 자진 사퇴했다. 보수적 가치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정무실장은 성 매수 주장과 관련된 제보자에게 7억원 투자 각서를 써줬다고 한다. 만약 대통령 부인의 비서관이 유흥업소 취업 주장과 관련된 제보자에게 투자 각서를 써준 사실이 드러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차이가 없다고 본다. 보수 정당 대표라면 그는 이 일만으로 스스로 물러났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일가족 비리 수사 때 조국 교수와 당시 집권자들이 보여준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 도덕성이 아니라 대중 선동을 처신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국민의힘은 전후 고도 성장을 정치 영역에서 지원하면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다수 국민을 대변해 왔다. 업적으로 말하면 세계 보수 정당 가운데 손꼽히는 정당이다. 맨파워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듯하다. 가치를 모르니 보수에 어울리는 내부 인재를 제대로 찾지 못한다. 문제만 생기면 특정인의 인기에 의존해 우르르 몰려 다닌다. 이번 파동도 그러다가 일어난 일이다. 이런 체질을 바꿀 수 있다면 더 세게 당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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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탄핵 이후 처음 보는 자유보수 진영의 희생과 헌신 97
85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114
84 자유냐 전체주의냐, 그 사이에 중간은 없다 76
83 4·15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니다 287
82 보수 통합의 열쇠는 국민에게 있다 105
81 죽느냐, 사느냐? 주사파 집권 대한민국 198
80 [자유대한민국 수호] 자유 우파가 무엇이고, 좌파가 무엇인가? 1426
79 야권이 넘어야 할 山 '박근혜' 141
78 좌파 10단의 手에 우파 1단이 맞서려면 179
77 조갑제, "김문수의 이 글은 대단하다. 진땀이 난다!" 167
76 '베트남판 흥남 부두'인 '십자성 작전'을 아십니까 205
75 굿 모닝~ 변희재! 159
74 변희재, 안정권과 김용호발 보수혁명 443
73 58년 전 오늘이 없었어도 지금의 우리가 있을까 171
72 홍준표의 박근혜, 황교안 논평 옳지 않다 132
71 김문수 대담 (2019년 4월 8일) 162
70 기승전 황교안 173
69 황교안의 정확하고 용감한 연설 172
68 나경원 연설의 이 '결정적 장면'이 좌익을 떨게 했다! 139
67 [자유대한민국 수호]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자들은 단합해야 1646
66 이런 인물을 한국당 대표로 뽑자! 197
65 한국당 전당대회, 보수대통합의 용광로가 되어야 177
64 '문재인 對 反문' 전선 246
63 대통령이 북한 대변인이면 한국 대변인은 누군가 310
62 자기 발등 찍은 文 정부, 판문점에서 절룩거리다 360
61 진보의 탈 쓴 위선과 싸워야 327
60 죽은 자유한국당 左클릭 하면 살까? 279
59 선거 압승하니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 242
58 MBC의 문제 250
57 광장정치와 소비에트 전체주의 290
56 촛불의 반성 263
55 文정권 1년 214
54 '독재자 김정은' 집단 망각증 200
53 지식인으로 나는 죽어 마땅하다 230
52 혁명으로 가고 있다 229
51 서울-워싱턴-평양, 3色 엇박자 265
50 북이 천지개벽했거나 사기극을 반복하거나 273
49 대한민국의 '다키스트 아워' 342
48 현송월과 국립극장 277
47 교회는 북한에서 성도들이 당한 역사 가르쳐야! 390
46 강력한 압박을 통한 대화가 필요하다 295
45 남북대화, 환영하되 감격하지 말자 316
44 중국이 야비하고 나쁘다 310
43 돌아온 중국이 그렇게 반갑나 308
42 박정희가 지금 대통령이라면 347
41 청와대 다수도 '문정인·노영민 생각'과 같나 308
40 대통령 부부의 계속되는 윤이상 찬양 275
39 남과 북 누가 더 전략적인가 285
38 오래된 미래 322
37 도발에 대한 우리의 응전은 지금부터다 332
36 뺄셈의 건국, 덧셈의 건국 263
35 文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역사 265
34 망하는 길로 가니 망국(亡國)이 온다 269
33 네티즌도 화났다… 공연 파행시킨 反美 행태에 비판 쏟아져 242
32 7094명 戰死, 한국 지킨 美2사단에 고마움 표하는 공연이 뭐가 잘못됐나 337
31 성주와 의정부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장면들 291
30 북(北) 김정은의 선의(善意) 347
29 공산주의 신봉한 영국의 엘리트들처럼 412
28 야당의 정체성? 무슨 정체성? 340
27 안팎의 전쟁 492
26 하단 광고, 우리나라의 위기 988
25 좌파들의 사대 원수 927
24 ‘정신적 귀족’ 보수주의자의 길 그 근간은 기독교적 세계관 1375
23 좌파적인 보수정당 정치인들 1050
22 황장엽 선생이 본 '역사의 진실' 1086
21 독도가 한국 영토인 진짜 이유 1073
20 용서 잘하는 한국 정부 991
19 황장엽 조문까지 北 눈치 살피는 민주당 1166
18 유럽의회, '中, 한국 조치 지지하라 1294
17 얼마나 더 대한민국 망신시킬 텐가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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