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민국 보수]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무질서의 海溢과 맞서 싸우는 사람
2022.10.26 14:45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무질서의 海溢과 맞서 싸우는 사람
큰 독재자든 작은 독재자든 ‘무질서’란 糧食 먹고 자라
모든 혁명과 촛불엔 대중을 群衆·暴衆으로 몰아가는 같은 법칙 作動
[강천석,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무질서의 海溢과 맞서 싸우는 사람," 조선일보, 2022. 10. 22, A30쪽.]
정치에서 무질서만큼 두려운 게 없다. 무질서가 휩쓸고 간 땅에 희망의 싹은 돋지 않는다. 대부분 괴물(怪物)이 태어난다. 무질서는 약한 사람을 더 힘들게 하고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다. 무질서가 낳은 괴물들은 무질서에 지치고 시달린 약하고 힘든 사람들의 절망을 양식(糧食) 삼아 몸을 부풀린다. 히틀러·마오쩌둥·스탈린이 그런 경로를 밟았다. 그들은 전쟁 중에 또는 전쟁 후 적군(敵軍) 숫자보다 많은 자기 국민을 살해했다. 작은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혁명을 찬양하지 않는다. 자유·평등·박애라는 깃발을 휘날리던 프랑스 혁명 다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두대(斷頭臺)에서 목이 잘리고, 노동자 천국(天國)을 선포한 볼셰비키 혁명 후 무수한 노동자들이 총살당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무질서와 혼돈(混沌)의 자식인 독재자들은 국민의 귀와 입을 막고 ‘새로운 질서’라고 우긴다. 혁명 귀족, 노동 귀족들은 약한 사람, 어려운 사람 위에 멍석을 깔고 저희들끼리 권력과 이익을 분배하는 독식(獨食) 잔치를 벌인다. 이것이 혁명의 타락 과정이고 촛불 이후 우리 국민이 목격한 진실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어떤 혁명 어떤 촛불은 우러르고 다른 혁명 다른 촛불은 위험시하는 분류법(分類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거창한 혁명과 반짝이는 촛불에 감춰진 동일한 덫을 뚫어본다. ‘질서 있는 혁명’은 ‘질서 있는 혼란’만큼 역사에 드물다. 국민이 군중(群衆)을 이루면 달뜬 흥분에 등 떠밀려 폭중(暴衆)으로 바뀐다. 인터넷 군중은 더 빨리 폭중이 된다. 선동가들 평등은 느리게 뛰는 사람 기운을 북돋워 빨리 달리도록 부축하는 평등이 아니다. 빨리 달리는 사람 발목에 무거운 쇠뭉치를 매다는 평등이다. 하향(下向) 평준화가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정착하면 사회 모든 부분이 생명력을 잃고 정체(停滯)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쇠락(衰落)의 내리막을 구른다. 어느 흥망사(興亡史)든 줄거리는 비슷비슷하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작은 불의(不義)보다 법이 무너진 다음의 큰 무질서를 더 경계한다. 법이 무너진 공백(空白)을 무질서가 메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용의주도(用意周到)한 개혁주의자다. 아둔하고 게으른 보수주의자처럼 변화의 때를 놓치고 뒤늦게 과격한 방법으로 혁명을 진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작은 불씨와 불쏘시개를 적시(適時)에 치워 큰불을 예방한다. 가속(加速)페달만 달린 차를 모는 위선적 좌파와 다르다. 변화가 더딜 땐 가속페달을, 속도가 지나칠 땐 브레이크를 밟는 개혁주의자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혁명 구호가 아니라 착실한 실천에 의해서만 진보는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한다. 역사 속 실례(實例)가 그들의 자신감을 받쳐 준다. 그러기에 ‘민주화 운동가’라고 찍힌 명함을 들이미는 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 ‘20년 계속 집권’ 운운하는 과욕(過慾)도 부리지 않는다. 과욕을 부리지 않기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찰 위에 고위 공직자 수사처 신설 등 곧 철거될 옥상옥(屋上屋)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없다.
적의 위협을 정시(正視)하지 못하는 유화주의자(宥和主義者)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 서야만 현실을 깨닫는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앞에서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이라고 비하(卑下)한다 해서 위협은 줄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동맹의 효용과 그 한계(限界)를 안다. 김정은은 핵무기로 한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언(公言)한다. 한미는 북이 서울을 핵 공격하면 북한에 핵 보복을 가하겠다는 확장억제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게 정말 실행 가능할까.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이 비극적 시나리오에 질문을 던지며 나라를 지킬 현실적 대안(代案)을 절박하게 고민한다.
무질서의 해일(海溢)이 세계에 넘실댄다. 휴전선 이북·대만 해협·우크라이나의 무질서는 ‘냉전(冷戰) 질서’도 질서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만든다. 세계경제는 ‘힘 있는 나라는 책임감이 없고, 책임감이 있는 나라는 힘이 없었다’던 1930년대 대공황 전후를 방불케 한다. 지난 5년 우리 내부 법치주의·노동현실·교육 현장은 차례로 무질서에 자리를 내주며 허물어졌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무질서를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세우고 가시덤불 위를 뒹굴며 길을 뚫어온 선인(先人)들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다. 번영의 불시를 꺼뜨리지 않는다. 나라를 또다시 무질서에 내어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