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 안보] 핵연료재처리라도 따 와야
2023.04.07 15:03
핵연료재처리라도 따 와야
[김대중, "핵연료재처리라도 따 와야," 조선일보, 2023. 4. 4, A34쪽.]
북한이 이틀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댄 지 2~3년 되니까 한국 사람은 이제 면역이 됐는지 “또 쐈어?” 하다가 ‘미국이 지켜주겠지’로 태평(太平)하다. 어쩌다가 북한이 며칠 거르면 ‘김정은에게 무슨 일 생겼나?’라며 걱정(?)해 줄 정도다. 미국도 피곤할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댈 때마다 미군 신형 항공기 날리고 군사훈련 한답시고 항공모함 동원하고…. 이런 게임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미국은 북한의 도발이 강해질 때마다 때로는 핵확산 억제를 꺼냈다가 때로는 나토식 핵공유를 들먹이면서 우리를 달랜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한국을 핵공격할 때 미국도 핵무기로 응징할 것인가다. 나는 미국은 미국 영토와 국민이 핵공격을 받지 않는 한, 핵무기를 동원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미국인은 핵무기에 깊은 트라우마가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최초로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다. 그것도 민간인을 상대로 한 것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수십만 일본인(군인도 아닌)이 비참하게 죽어갔다. 미국인들은 원자폭탄 얘기나 나올 때마다 하와이 진주만의 참상을 꺼낸다. 하지만 그것은 민간인 대(對) 군인의 문제다.
다시 말해 미국은 그 어떤 우방을 위해서도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미국의 ‘핵우산’을 거론하며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미국은 미국이 직접 당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대규모 학살자’의 불명예를 쓰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핵확장 억제니 나토식 핵공유니 하며 마치 미국이 핵약소국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한 양 말하지만 그 어떤 경우도 결국 핵 사용의 버튼은 미국 대통령만이 누를 수 있게 돼 있다.
문제는 북한의 김정은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데 있다. 김정은은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 땅이나 미국인을 건드리지 않는 한, 북한을 상대로 (우리를 위해) 핵 보복을 하지 않을 것, 아니 못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공식 발표를 보면 북한은 미사일을 쏠 때 거리, 대기권 진입, ‘태평양’ 등을 거론하지 뉴욕이나 LA, 샌프란시스코 같은 지명을 공식으로 지목하지는 않았다. 김정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미국 본토나 미국인을 대량 학살해서는 북한과 김(金)체제가 뼈도 못 추린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김정은의 목표는 대한민국이다. 김정은은 ‘서울’을 공격하면서 미국의 핵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도 스스로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미국의 가공할 핵 보복 능력만을 믿고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언제까지 미국의 ‘신(新)무기’에 감탄하고 어디까지 핵 보복 능력에 심취해서 북한을 얕잡아 보는 ‘바보 놀음’을 계속할 것인가? 프랑스의 드골은 1961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은 파리를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느냐?’며 프랑스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을 선언했다. 미국의 핵 보복에 편승해 살아갈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나는 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미국의 조야(朝野)를 만나 ‘미국은 서울을 위해 LA를 포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지금 당장 한국이 핵 보유에 나서는 것이 한국의 안보를 위해 긴요하고 절실하지만 세계에서 우리 같은 강소국이 핵확산 금지라는 강대국들끼리의 게임 룰은 넘어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핵 보유로 가는 중간 단계가 있다. 그것은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자체 생산하는 길이다. 핵 보유는 아니다. 선언한 그 중간까지 감으로써 유사시 우리도 핵의 공유에 근접하는 길이다.
우리는 슬리퍼 차림에다 이제 겨우 10살 미만의 딸을 데리고 미사일 발사장에 나와 버튼을 누르는 김정은의 안하무인에 깊은 모멸감을 느낀다. 그 미사일 하나하나가 우리 한국인과 한국땅을 겨냥한 것일진대 저렇게도 우리를 업신여기는 김정은과 그의 체제에 우리는 언제까지 볼모 잡혀 있을 것인가?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미국이 우리 대통령을 데려다가 극진히 환대하며 미국을 믿고 더 이상 미국이 정한 핵 바운더리를 넘지 않도록 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환영’의 나팔 소리와 한미 연예인들의 놀음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윤 대통령 스스로 선언했듯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한국보전(保全)의 목소리를 토해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