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전쟁] 보수는 진영 싸움에서 지고 있다
2023.06.08 11:16
보수는 진영 싸움에서 지고 있다
전교조가 교육 장악하며 오늘의 이념 전쟁 잉태
좌파, 공직 사회 곳곳에 씨앗 심어 ‘너 죽고 나 살자’식 극한 대립 시대
보수·우파 너무 한가한 것 아닌가
[김대중, "보수는 진영 싸움에서 지고 있다," 조선일보, 2023. 6. 6, A26쪽.]
오늘날 한국의 정치가 당면한 가장 심각하고 해악적인 문제는 이념 성향의 극단적 대립이다. 세계 어디서나 또 인류 역사상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대립이 있어왔다. 그리고 보수·진보는 시대에 따라 교차해 가며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를 진영 싸움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는 좌우의 대립은 시대적 정당성도 논리적 귀납도 없는, 전쟁 그 자체다.
지난날 한국의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대립했을 때도 ‘너 죽고 나 살자’는 아니었다. 군부독재 세력도 민주화를 수용하려고 했고 민주화 세력도 마냥 파괴적으로만 가지 않았다. 한국이 오늘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대립이 독주와 파괴로 가지 않고 공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 이념이 나라를 이끄는 데 순차적으로 또 교차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화의 대강(大綱)을 이룩했다고 보는 이 시점에서, 또 한국의 성장과 가능성이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는 성취의 시점에서, 우리는 좌우의 극한적 대립을 경험하고 있는 꼴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이후 지난 1년여에 걸친 여론조사는 우리 분열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윤 정부에 대한 찬반과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찬반은 꾸준히(?) 수평적 평행선을 그어왔다. 이것은 한마디로 윤 대통령이 무엇을 얼마나 잘하느냐 못하느냐와 상관이 없고 평가는 이미 정해졌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표가 다수의 범법(犯法) 혐의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그의 ‘범죄’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조국과 김남국의 처신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우리 편’이냐 아니냐만이 중요하다.
한국인들은 본질적으로 좌파 성향이 강한 민족이라는 분석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한때 노비가 인구의 절반을 넘었을 때도 있었다. 전 세계에서 전쟁 포로나 이민족도 아닌 동포를 노비로 삼은 나라는 조선이 유일하다는 학자의 지적도 있다. 노비 제도가 백성의 항거 의식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지만 조선은 그럼에도 5백년을 갔다. 그 중세 시대에 그렇게 오래간 왕조도 없는 것을 보면 민중의 저항 의식마저 희박했다. 진보·좌파 의식이 보수·우파의 안일과 기득권 의식에 대한 반발로, 그리고 북한의 공산주의화로 가능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 억눌린 의식이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새삼 분출하기 시작했다는 역설적 설명이 그래서 가능하다.
문제는 이 극단적인 분열과 진영 싸움의 국면에서 좌파가 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문재인 5년’의 여파인지 여운인지는 모르겠다. 586세대와 그들을 잇는 이른바 ‘전교조 1세대’ 즉 40대 후반~50대 초반 세대가 오늘의 좌파를 주도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 정권은 오늘의 이념 전쟁이 전교조가 교육계를 장악하면서 잉태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보수·우파 정권의 누구도 우리 교육계에 심어져 있는 사상적 대립과 이념적 분열상의 씨앗을 예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교조뿐 아니다. 좌파는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특히 지난 5년의 좌파 정권하에서 좌파는 공직 사회 곳곳에 그들의 씨앗을 심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채용 비리도, 방송통신위원장의 반발도 좌파가 쉽게 뽑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윤 정부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는 양상이다. 일부에서는 보수 정권에 불리한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는 여론조사 기관 자체가 이미 좌파 세력에 장악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금쯤 윤 대통령 자신도 이 진영 싸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내년 총선의 문제는 심각하다. 이미 좌우의 게임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윤석열’은 덮어놓고 싫다는 네거티브가 좌파 사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국민의 힘의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고쳐야 하는가를 논의하기에는 총선의 시점이 너무 코앞에 다가와 있다. 한때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하지 말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원론적인 방식으로 총선을 이기기에는 상황이 단순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국힘당의 한 원로 정치인은 윤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때라고 했다. 적어도 보수·우파의 이탈을 막는 방어전에서라도 성공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