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퇴임 대통령’
2023.06.22 09:26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퇴임 대통령’
文 국정 실패하고도 ‘난 옳다’ 다큐·책방·SNS 통해 ‘관종 정치’
지지층 끌어모아 ‘양산박’ 쌓고 이재명 이후 ‘文 시즌2′ 준비
[배성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퇴임 대통령’," 조선일보, 2023. 6. 14, A35쪽.]
문재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선정을 베푼 착한 권력자라고 생각한다. 임기 중엔 경제·안보·부동산 정책이 잘되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정치인이 되고도 높은 윤리 의식을 지켰다”고 자부했다. 임기 말엔 “치적을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다. 퇴임 땐 “정직하고 단단하게 소신껏 일했다”고 했다. 측근들은 “국민들이 고맙다고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5년간 나라 경제는 망가지고 안보는 위태로웠다. 온갖 내로남불과 파렴치가 판쳤다. 취임 때 국민에게 약속한 30가지 중 제대로 지킨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든 것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잊힌 삶을 살겠다”고 했다. 불행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은인자중하겠다는 것으로 비쳤다. 하지만 행동은 정반대였다. 퇴임하자마자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야권 정치인들을 수시로 만나 메시지를 날렸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 “남북 군사 합의를 지키고 대화하라”고 훈계했다. 감사원엔 “무례하다”고 꾸짖었다. “정치를 떠나겠다”더니 현실 정치에 먼저 뛰어들었다.
자기 일상을 담은 다큐를 제작하고 책방 사업까지 시작했다. 지자체 돈을 받아 만든 다큐는 극장에서 상영했다. 매일 수천 명이 오는 책방은 팬미팅장과 다르지 않다. 지지자들과 만나 사진 찍기에 여념 없다. 문 정권 관련 책과 굿즈, 음료를 팔아 한 달 만에 2억5000만원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야권 인사들은 양산 사저의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온다. 총선에 출마하려는 친문은 그에게 눈도장 찍고 책방에서 인증샷을 올리는 게 필수 코스다. 이재명 대표도 ‘문·명(文明) 동맹’을 확인하려고 수시로 내려온다. 자녀 입시 비리로 재판 중인 조국 전 장관과는 독대 술자리를 가졌다. ‘마음의 빚’을 갚고 정치적으로 밀어주려는 의미였을 것이다. 조만간 귀국할 이낙연 전 대표도 양산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역대 어느 전직 대통령도, 왕조 시대 상왕조차 퇴임 후 이런 권력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차분한 외모와 달리 ‘관종’ 성향이 짙다. 재임 때부터 ‘탁현민식 쇼’를 중독됐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퇴임 후에도 노출 빈도가 역대급이다. ‘잊히고 싶다’는 건 ‘나를 봐달라’는 문재인식 화법이다. 그는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키우던 풍산개를 돈 문제로 파양하고도 ‘개 달력’을 만들어 팔았다. 이재명 비판 글에 ‘좋아요’를 눌렀는데 고양이가 범인이라고 했다.
잇단 실정(失政)으로 정권을 넘기고도 “5년 성취가 무너져 허망하다” “전문가에게 경제를 맡기면 안 된다”고 했다.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몰이와 울산시장 선거 불법 개입,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으로 측근들이 줄줄이 처벌되는데 뒷짐만 졌다. 딸이 이상직 전 의원의 도움으로 해외 이주한 의혹에도 해명 한마디 없다.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도 대통령 기록물로 꽁꽁 숨겼다. 위선적이다.
지금 문 전 대통령은 양산에 자신의 정치적 성(城)을 쌓고 있다. 총선 전후 닥쳐올지 모를 정권 비리 수사를 피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을 것이다. 친문들은 이재명 다음 타깃이 문 전 대통령일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해 그에 대항할 ‘양산박(梁山泊)’을 세우려는 듯하다. 포스트 이재명 체제도 구상 중일 것이다. 야권 재편의 구심점이 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재임 중 겪었던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에 이어 퇴임 후 ‘문재인 시즌 2′까지 봐야 할지 모른다. 달갑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