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박정훈, ‘더러운 평화黨’의 ‘싸우는 충무공’ 마케팅
2023.07.27 10:56
‘더러운 평화黨’의 ‘싸우는 충무공’ 마케팅
‘더러운 평화’를 주장하는 정당이
침략에 맞서 싸워 ‘이기는 전쟁’을 한
충무공까지 끌어다 정쟁에 활용하다니 참 염치도 없다
[박정훈, "‘더러운 평화黨’의 ‘싸우는 충무공’ 마케팅," 조선일보, 2023. 7. 22, A26쪽. '조선일보 논설실장']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인식은 충격적이나, 그가 이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적어도 지난 7년간 똑같은 얘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해왔다. 확인된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은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대북 관계 질문을 받고 “더럽고 자존심 상하고 돈이 많이 들더라도 평화가 낫다”며 이 말을 꺼냈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본격화하던 시점이었다. 이해 북한은 자칭 ‘수소폭탄’이라는 4차 핵실험에 나서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을 18차례나 쏘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전단 처벌’ 방침을 밝히자 그는 이를 지지한다며 같은 주장을 펼쳤다. 북이 비행 거리 1만여㎞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을 쏜 직후였다. 미·북 싱가포르 회담이 결렬되고 북한이 연속 도발을 재개했던 2020년 6·15 기념식 때도, 북한이 동해상에 탄도미사일을 고각 발사한 직후인 2022년 3·1절에도 ‘더러운 평화론’을 꺼내 들었다. 이 대표가 의도했든 안 했든 결과적으로 북의 도발을 감싸는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뿐 아니었다. 2016년 10월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쏜 날, 당시 민주당 유력 대권 후보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선제타격이니, 핵무장이니, 전쟁이니 하는 말로 불안하게 만들지 말라”며 대북 인도적 지원을 주장했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안보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민주당 사람들이 만능 치트키처럼 휘두르던 논리였다. 대북 제재를 얘기하면 “전쟁하자는 거냐” 하고, 대칭적 보복을 언급하면 “전쟁광”으로 몰았다. 모든 군사적 옵션을 ‘나쁜 전쟁’으로 몰아 말문을 틀어막았다.
민주당의 ‘더러운 평화론’은 보편성을 갖는 논리가 아니었다. 오로지 북한·중국·러시아에만 적용되는 특수하고도 선택적인 평화론이었다.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 중국의 경제 보복 앞에서도 민주당은 중국 편을 들었다. 협박에 고개 숙이고 중국이 원하는 대로 사드 배치를 철회하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치욕적 항복 문서와 다름없는 ‘사드 3불(不)’ 약속까지 해주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재명 대표며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초보 정치인 젤렌스키가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이 났다”고 했다.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자위 전쟁을 폄훼하는 말들이 민주당 안에서 끊이지 않았다.
일본에 대해선 달랐다. 2019년 일본이 반도체 보복을 감행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의 12척 배’ 정신까지 언급하며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틀었고, 민주당 특위 위원장은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했다. 중국에 항복하자던 민주당 구(舊)권력이 일본엔 임진왜란 의병, 동학 농민 정신까지 들고나와 맞서 싸우자고 했다.
2018년 저공 비행하는 일본 해상 초계기를 향해 우리 광개토대왕함이 레이더를 조준하며 대치하는 일촉즉발 상황이 벌어졌다. 그 직후 문 정부는 일본 군용기가 근접 비행하면 ‘추적 레이더를 쏘라’는 사실상의 교전 지침을 해군에 시달했다. 레이더 조사(照射)는 함포·미사일 발사 의사를 알리는 공격 신호다.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수시로 헤집는 중국·러시아 전투기는 방치하면서 일본에 대해선 ‘교전 불사’로 대응했다.
평화를 바란다면 한·일 간 긴장 완화도 환영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대일 관계 복원에 나서자 민주당은 “매국” “국치(國恥)”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한일 정상회담을 “화해를 간청하는 항복식”에 비유하고, 한·미·일 연합훈련을 “자위대 군홧발” 운운하며 비난했다. ‘더럽고 자존심 상해도 무조건 평화’는 북한·중국·러시아에만 해당되고 일본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러운 평화론’은 결국 친중 사대주의와 친북 퍼주기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했다.
민주당이 국회 당대표실 배경 벽면을 이순신 장군 사진으로 장식했다. 장검 든 충무공 동상 그림을 내걸고 ‘핵 오염수 반대’ 구호를 넣었다. 후쿠시마 정쟁화를 위해 충무공 마케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팬 카페엔 ‘이 대표는 현존하는 이순신’이며 ‘잼순신(재명+순신)’ 운운하는 낯 뜨거운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충무공은 ‘싸워서 이긴’ 전쟁 영웅이다. 왜적의 침략 앞에서 그가 평화만 읊고 있었다면 이 땅은 지금 우리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할 각오가 돼 있어야 평화를 얻는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도 없다. ‘더러운 평화’를 주장하는 정당이 ‘이기는 전쟁’을 한 충무공까지 끌어다 정쟁에 활용하려 한다. 참 염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