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核 비확산 지키다 피해자된 한국민 이해하나
2016.09.28 10:42
[사설: “美는 核 비확산 지키다 피해자 된 한국민 이해하나,” 조선일보, 2016. 9.20, A35.]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18일(현지 시각)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유사시 미국이 한․일에 대해 미 본토 수준의 핵(核)과 재래식 전력을 지원하는 '확장 억제' 공약을 재확인했다. 케리 장관은 특히 '모든 범주'의 핵을 동원한다는 표현을 썼다. 전략핵이든 전술핵이든 필요한 수단은 다 동원하겠다는 것은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일 수 있다. '핵 억제력을 확실히 제공하겠으니 안심하라'는 그 메시지의 밑바탕에는 어떤 조건이 붙더라도 한국의 핵무장은 안 된다는 뜻도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핵 비확산은 미국 세계 정책의 기본 줄기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8년간 '핵 없는 세상' 정책을 추구해오기도 했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그 당위성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가장 충실한 이행국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북의 핵 위협에도 한국 정부가 핵무장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한․미 동맹 역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당하고 있는 핵 위협은 핵 비확산의 당위나 동맹의 효능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북핵은 핵 비확산이 실패한 대표 사례이고 대한민국이 바로 그 최대 피해자가 돼 있다. 아무리 동맹이라 하더라도 5000만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다른 나라에 전적으로 맡겨놓고 있다는 것도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세계 역사를 돌이켜봐도 동맹이 무한하고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스파이로 처벌받은 로버트 김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북 잠수함 활동 정보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당시 미국의 한반도 관련 정보가 영국․캐나다 같은 나라에는 제공돼도 혈맹(血盟)인 한국에는 안 가는 구조였다고 한다. 로버트 김은 "미국 정부에서 일해 보면 우리가 맹방이니 하는 건 한국 혼자 생각이고 미국의 국익에 따라 결정할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그의 이 말은 흘려들을 수 없다.
북한이 주한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균열을 노리며 '북․미 평화협정 전환' 주장을 하자 실제 미국 내에서 소수나마 '해볼 만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이 미 본토까지 날아가는 대륙간탄도탄(ICBM)을 보유한 뒤 미국과 담판하고자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금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케리 장관조차 장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핵확산을 막겠다는 미국의 세계 전략은 중요하다. 동시에 핵 비확산을 충실히 지켜온 대한민국이 명백한 핵 위협을 받고 있고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유엔 제재는 중국의 비협조와 북의 폐쇄성 탓에 사실상 통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5000만 국민의 안위를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국도 이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고 북핵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전술핵 재배치와 유럽식의 핵 공유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해 열린 자세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의 핵 비확산 기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핵 비확산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