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는 고신 교회 총회'
2006.06.21 11:16
[전 고려신학대학원장 허순길 목사의 글.]
고신교회 2004년 총회는 고신교회 반세기 사상 가장 심각한 신학과 교회생활의 위기를 맞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 노력은 다만 교회 저변에 상당히 확산된 것으로 보이는 현대 에큐메니칼 신학 운동의 영향을 청산하고, 속화된 교회 생활을 정화, 개혁하는 일을 시작한 일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고신교회가 정체성을 회복하고, 개혁주의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총회가 단호한 개혁과 정화 작업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총회는 교회 안에서 에큐메니칼 신학을 옹호하고 신학과 교리를 초월한 교회일치 운동에 대해 매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보수를 자처하던 '합동교단'을 위시한 장로교단들이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강한 시류에 휩쓸려 근년에 그 정체성을 포기해 버린 인상을 보여왔다. 이는 보수 교단 신학자나 지도자들로부터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별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신도 이 시류를 따라 '교회의 연합'과 '교회의 일치'를 구별하지 않고, 교회연합 기구를 통해 신학과 신앙고백이 다른 교회들과의 교회일치를 논의하는 장에 가담해왔다. 결과 상당수 중년 목사들이 무분별한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게까지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고신의 터요 뿌리인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나아가 자유주의 교회로 공인되어 온 교회를 자유주의 교회가 아니라고 항변하며 연합과 일치를 부르짖는 이까지 생겨났다. 이번 총회는 이에 대한 위기를 의식하고 이런 극단적 입장을 정죄, 거절함으로 고신의 교회적, 신학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로써 총회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탁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총회는 '교회연합'과 '교회일치'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리고, 교회를 대표하는 총회 지도자들은 분별 있는 대외활동을 함으로 교회가 나아갈 길을 바로 보여 주어야 한다.
고신 총회는 지난날 원리적으로 교회의 영역에 속하지 않은 일에 직접 관련함으로 교회의 속화를 초래하게 된 사실을 역사적 쓴 경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대학과 병원에 대한 간접운영 문제와 신학대학원의 대학원 대학교로의 독립운영 문제 등에 합의를 보았다. 그렇지만 이것이 개혁주의 교회생활 원리의 확신 위에서 이뤄지지 않을 때 시행이 보장되기 어렵다. 유사한 논의와 합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총회는 이런 재정비가 환경의 요인보다 개혁주의 생활원리를 따라 살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고신 교회 속화를 촉발한 가장 큰 요인은 대학교와 병원의 총회직영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교회가 교회답게 되기 위해 개혁주의 생활원리를 따라 기관들을 재정비하는 일을 꼭 이루어야 한다. 이럴 때 대학과 병원도 발전하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고신교회는 분명히 정체성을 잃고 있다 그러나 총회는 이 심각한 현실을 자인하고,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신교회의 정체성은 '전통적 개혁주의 신학'과 '교회생활의 정화와 성결성'이다. 초창기에는 교회생활의 정화와 성결성이 일제시 신사참배를 함으로 배교한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청산이었다면, 오늘날 교회생활의 정화와 성결성은 교회의 속화를 방지하고 구별성를 지키는 일에 있다. 그런데 고신교회는 80년대부터 급한 속화의 탁류에 휩쓸려 성결성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해 왔다. 불행하게도 총회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몇 가지 속화의 예를 들어 본다.
총회선거제도를 통해 나타난 속화다. 총회가 선거공영제도를 도입하여 목사 장로들이 총회임원이 되기 위해 후보등록을 하고 등록금을 내고 있다. 후보의 부정선거운동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감시위원들이 활동을 한다. 이런 선거제도의 속화는 자유주의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황 아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왕되심'과 '그의 성령의 인도'라는 신앙고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를 위한 기도는 외식일 뿐이다. 더욱 고신교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총회를 앞두고, 자유주의 교회인 기장측과 중도 진보노선을 좇는 교회인 통합측 선거위원회와 함께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거가 진행되기를 바라면서' 한 목소리로 공동입장을 밝혔다. 이 사실은 고신교회 속화의 현실을 그대로 알려주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는 고신교회가 신앙과 생활에서 이런 교회들과 평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는 고신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물려받은 '교회생활의 정화, 성결성'이라는 구별된 영적 생활의 아름다운 유산을 포기해 버린 속화의 실상을 보는 슬픔에서 언급하는 것이다.
다음은 총회가 시국선언을 통해 보여준 속화다. 고신교회는 지난 반세기 여러 차례 국가의 정치적 변혁 과정에서 시국선언을 한 일이 없었다. 이는 교회에 직접 연관이 없는 정치적 문제에는 교회가 공적으로 관련하지 않는 것이 개혁주의 교회의 생활원리이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순수한 정치적 문제는 신자들이 기독교적 신앙양심을 따라 시민의 자격으로 자기가 택한 정당이나 기구를 통해 뜻을 밝힐 일이고, 교회적으로 할 일은 아니다. 보안법이나 수도이전 문제 등에 대해 교회가 공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개혁주의 교회생활원리를 벗어난 일로 본다. 우연한 일치인지 몰라도 오랫동안 신학과 신앙입장의 차이로 교회적인 교제를 해오지 않은 통합측과 동질의 시국선언을 한 것에 주목한다. 고신교회는 현재 개혁에 전진하기보다는 퇴보하고 있으며, 속화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고신교회가 이 시대에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보호와 축복 속에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침투를 경계할 뿐 아니라, 속화된 교회 현실을 확인하고, 생활의 정화에 임함으로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고신교회 2004년 총회는 고신교회 반세기 사상 가장 심각한 신학과 교회생활의 위기를 맞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 노력은 다만 교회 저변에 상당히 확산된 것으로 보이는 현대 에큐메니칼 신학 운동의 영향을 청산하고, 속화된 교회 생활을 정화, 개혁하는 일을 시작한 일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고신교회가 정체성을 회복하고, 개혁주의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총회가 단호한 개혁과 정화 작업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총회는 교회 안에서 에큐메니칼 신학을 옹호하고 신학과 교리를 초월한 교회일치 운동에 대해 매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보수를 자처하던 '합동교단'을 위시한 장로교단들이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강한 시류에 휩쓸려 근년에 그 정체성을 포기해 버린 인상을 보여왔다. 이는 보수 교단 신학자나 지도자들로부터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별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신도 이 시류를 따라 '교회의 연합'과 '교회의 일치'를 구별하지 않고, 교회연합 기구를 통해 신학과 신앙고백이 다른 교회들과의 교회일치를 논의하는 장에 가담해왔다. 결과 상당수 중년 목사들이 무분별한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게까지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고신의 터요 뿌리인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나아가 자유주의 교회로 공인되어 온 교회를 자유주의 교회가 아니라고 항변하며 연합과 일치를 부르짖는 이까지 생겨났다. 이번 총회는 이에 대한 위기를 의식하고 이런 극단적 입장을 정죄, 거절함으로 고신의 교회적, 신학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로써 총회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탁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총회는 '교회연합'과 '교회일치'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리고, 교회를 대표하는 총회 지도자들은 분별 있는 대외활동을 함으로 교회가 나아갈 길을 바로 보여 주어야 한다.
고신 총회는 지난날 원리적으로 교회의 영역에 속하지 않은 일에 직접 관련함으로 교회의 속화를 초래하게 된 사실을 역사적 쓴 경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대학과 병원에 대한 간접운영 문제와 신학대학원의 대학원 대학교로의 독립운영 문제 등에 합의를 보았다. 그렇지만 이것이 개혁주의 교회생활 원리의 확신 위에서 이뤄지지 않을 때 시행이 보장되기 어렵다. 유사한 논의와 합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총회는 이런 재정비가 환경의 요인보다 개혁주의 생활원리를 따라 살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고신 교회 속화를 촉발한 가장 큰 요인은 대학교와 병원의 총회직영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교회가 교회답게 되기 위해 개혁주의 생활원리를 따라 기관들을 재정비하는 일을 꼭 이루어야 한다. 이럴 때 대학과 병원도 발전하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고신교회는 분명히 정체성을 잃고 있다 그러나 총회는 이 심각한 현실을 자인하고,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신교회의 정체성은 '전통적 개혁주의 신학'과 '교회생활의 정화와 성결성'이다. 초창기에는 교회생활의 정화와 성결성이 일제시 신사참배를 함으로 배교한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청산이었다면, 오늘날 교회생활의 정화와 성결성은 교회의 속화를 방지하고 구별성를 지키는 일에 있다. 그런데 고신교회는 80년대부터 급한 속화의 탁류에 휩쓸려 성결성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해 왔다. 불행하게도 총회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몇 가지 속화의 예를 들어 본다.
총회선거제도를 통해 나타난 속화다. 총회가 선거공영제도를 도입하여 목사 장로들이 총회임원이 되기 위해 후보등록을 하고 등록금을 내고 있다. 후보의 부정선거운동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감시위원들이 활동을 한다. 이런 선거제도의 속화는 자유주의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황 아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왕되심'과 '그의 성령의 인도'라는 신앙고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를 위한 기도는 외식일 뿐이다. 더욱 고신교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총회를 앞두고, 자유주의 교회인 기장측과 중도 진보노선을 좇는 교회인 통합측 선거위원회와 함께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거가 진행되기를 바라면서' 한 목소리로 공동입장을 밝혔다. 이 사실은 고신교회 속화의 현실을 그대로 알려주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는 고신교회가 신앙과 생활에서 이런 교회들과 평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는 고신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물려받은 '교회생활의 정화, 성결성'이라는 구별된 영적 생활의 아름다운 유산을 포기해 버린 속화의 실상을 보는 슬픔에서 언급하는 것이다.
다음은 총회가 시국선언을 통해 보여준 속화다. 고신교회는 지난 반세기 여러 차례 국가의 정치적 변혁 과정에서 시국선언을 한 일이 없었다. 이는 교회에 직접 연관이 없는 정치적 문제에는 교회가 공적으로 관련하지 않는 것이 개혁주의 교회의 생활원리이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순수한 정치적 문제는 신자들이 기독교적 신앙양심을 따라 시민의 자격으로 자기가 택한 정당이나 기구를 통해 뜻을 밝힐 일이고, 교회적으로 할 일은 아니다. 보안법이나 수도이전 문제 등에 대해 교회가 공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개혁주의 교회생활원리를 벗어난 일로 본다. 우연한 일치인지 몰라도 오랫동안 신학과 신앙입장의 차이로 교회적인 교제를 해오지 않은 통합측과 동질의 시국선언을 한 것에 주목한다. 고신교회는 현재 개혁에 전진하기보다는 퇴보하고 있으며, 속화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고신교회가 이 시대에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보호와 축복 속에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침투를 경계할 뿐 아니라, 속화된 교회 현실을 확인하고, 생활의 정화에 임함으로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댓글 0
번호 | 제목 | 조회 수 |
---|---|---|
» | '밖에서 보는 고신 교회 총회' | 2007 |
2 | 고신 총무 전호진 목사의 사상을 비평함 | 1706 |
1 | 고신 교수 이성구 교수의 연합 사상을 비평함 | 19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