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文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역사," 조선일보, 2017. 8. 16, A30쪽.]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가난을 겨우 벗어난 자작농 집안이었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나와 경성에서 사범학교를 마치고 귀향해 교편을 잡았다. 해방을 고향에서 맞았지만 공산주의를 경험한 얼마 후 월남했다. 그 후 한 번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세상을 뜰 때까지 북쪽 가족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전후에 태어난 나는 아버지의 그런 향수(鄕愁)를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공감한 것, 그리고 지금껏 감사하는 것은 짧은 공산주의 경험을 토대로 고향을 등진 70년 전 아버지의 탁월한 선택이다.
세상을 뜬 지 30년이 지났지만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너무 모른다"는 아버지 음성이 또렷하다. 그만큼 거듭 말했다. 월남 직후 아버지가 남쪽 동창에게 들은 말은 "양키와 친일파, 악질 자본가, 악질 지주, 간상모리배, 반동분자가 판을 치고 있는 너절한 이곳을 왜 찾아왔느냐"는 핀잔이었다. 북한 소식을 접할 방법이 없는 남쪽 출신일수록 자신이 살고 있는 남한에 대한 멸시가 강했다고 한다. 그럴수록 북에 대한 환상도 심했다. 아버지는 일생 그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가족이 볼 때도 '왜 저러시나' 하고 의아해할 정도로 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