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북한이 핵을 들고 서해를 기습했을 때," 조선일보, 2017. 9. 13; 사회부장.]
한국은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를 다루듯 왜 북한을 다루지 못하느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수난에서 얻은 상무(尙武) 정신, 불퇴의 용기, 단결된 국론…. 아랍 사이에 낀 이스라엘은 반세기 이상 강대국 사이에 낀 분단 한국의 본보기였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변한 북한, 아랍처럼 변한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50년 전 엄청난 일을 벌였다.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西岸), 가자지구에 동시에 쳐들어갔다. 지도를 보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이었는지 안다. 지중해에 붙은 가자지구를 포함해 동서남북 사방에서 이집트·시리아·요르단 세 나라의 땅을 일거에 장악했다. 요르단은 사흘, 이집트는 나흘, 시리아는 닷새 만에 두 손을 들었다. 이때 이스라엘이 추가한 점령지는 당시 자국 영토의 4배에 달했다.
이 전쟁이 3차 중동 전쟁이다. 1·2차 중동 전쟁과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1차는 유대 국가를 중동에서 지워버리려 한 아랍 연합군이 일으켰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방위전이다. 2차는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계기로 일어났다. 이권을 갖고 있던 유럽 강대국과 함께 전쟁에 나섰다. 3차는 이스라엘 단독으로 아랍 세계를 향해 일으킨 전쟁이었다. 국제사회로부터 국제법 위반이자 침략 행위라는 비판을 들었다. 유대인은 호전적인 민족이 아니다. 2000년 가까운 방랑을 통해 저항이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보다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았다. 싸움보다 협상을 앞세우는 민족이었다. 나치 대학살 때도 제대로 항거하지 못했다. 이런 국민이 무슨 배짱으로 아랍을 상대로 폭거를 저질렀을까.
이스라엘의 핵 완성 시점은 1967년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이 된 건 1970년대 초반이다. 3·4차 중동 전쟁이 그 사이 일어났다. 핵은 이스라엘을 깡패로 만들었다. 중동전의 성격도 달라졌다. '유대 국가를 지도에서 지운다'는 목표는 산산조각이 났다. 4차 중동전은 아랍이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제한전에 불과했다. 그마저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수세에 몰린 이스라엘이 핵 사용을 준비하자 핵전쟁을 우려한 미국이 첨단 무기로 이스라엘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아랍도 핵이 무서워 전진하지 못했다. 4차 중동 전쟁은 핵위협만으로 재래식 전쟁의 판도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3년 전 국제부장으로 일할 때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항의를 받았다. 중동 특파원이 게재한 기사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슬람 급진파가 장악한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인근 도시 주민 일부가 언덕에 올라가 맥주를 마시면서 불꽃놀이 구경하듯 폭탄에 박살 나는 팔레스타인 도시를 굽어본다는 기사였다. 일종의 유희였다. 물론 극단적인 사람들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쟁은 가벼워졌다. 핵 때문이다. 아무리 팔레스타인을 짓밟아도 아랍 형제들은 총을 들고 나서지 않았다. 레바논을 침공해도, 이라크를 공습해도 아랍은 조용했다.
핵을 가진 북한이 이스라엘을 본보기로 삼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까. 이스라엘은 민주국가다. 그런 나라도 핵무기를 보유하자 사방에서 분탕질을 시작했다. 지난달 말 북한은 서해 5도 중 2개 섬을 점령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김정은은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답이 없다. 연례행사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핵 없는 자의 말 폭탄은 허풍이다. 하지만 핵 있는 자의 말 폭탄은 실제 위협이다.
이스라엘이 재래식 전쟁에서 써먹은 핵의 유용성을 북한이 모를 리 없다. 남한이 풍요를 누릴 때 풀을 뜯어 먹으면서 완성한 핵이다. '북핵은 미국 협상용'이라고 믿는 것은 남한에 대한 김정은의 자비를 구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서해를 기습하고 서울을 핵으로 파괴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김정은은 이런 구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태에 대통령은 서울을 버릴 각오로 서해 5도를 수호할까, 아니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담보로 타협에 나설까. 서울 시민은 목숨을 걸고 서해 수호에 찬성할까, 아니면 대혼란을 빚을까. 광화문광장엔 서해 주민을 위한 촛불이 켜질까, 아니면 반전(反戰)의 촛불이 켜질까. 4차에 걸친 중동 전쟁 중 이스라엘과 아랍이 보여준 행태가 이런 식으로 갈렸다.
전자(前者)를 선택하면 한국은 결국 북핵을 이길 수 있다. 후자(後者)라면 이 나라는 그걸로 끝이다. 미국 도움으로 겨우 생존한다 해도 북한의 호전적 유희에 농락당하는 동북아의 팔레스타인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재래식 전쟁에서 써먹은 핵의 유용성을 북한이 모를 리 없다. 남한이 풍요를 누릴 때 풀을 뜯어 먹으면서 완성한 핵이다. '북핵은 미국 협상용'이라고 믿는 것은 남한에 대한 김정은의 자비를 구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서해를 기습하고 서울을 핵으로 파괴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김정은은 이런 구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태에 대통령은 서울을 버릴 각오로 서해 5도를 수호할까, 아니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담보로 타협에 나설까. 서울 시민은 목숨을 걸고 서해 수호에 찬성할까, 아니면 대혼란을 빚을까. 광화문광장엔 서해 주민을 위한 촛불이 켜질까, 아니면 반전(反戰)의 촛불이 켜질까. 4차에 걸친 중동 전쟁 중 이스라엘과 아랍이 보여준 행태가 이런 식으로 갈렸다.
전자(前者)를 선택하면 한국은 결국 북핵을 이길 수 있다. 후자(後者)라면 이 나라는 그걸로 끝이다. 미국 도움으로 겨우 생존한다 해도 북한의 호전적 유희에 농락당하는 동북아의 팔레스타인으로 전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