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부산에서 열릴 WCC 총회의 문제
2012.08.23 16:29
에큐메니칼 운동 비평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의, 세력
에큐메니칼 운동 곧 교회연합운동은 온 세계의 모든 기독교회들을 재연합시키려는 운동이다. 1948년 화란의 암스텔담에서 조직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결실이며 현재 대표적인 수단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력은 상당히 크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2012년 현재 110개국 이상의 349개 회원 교단들에 소속된 5억 6천만명 이상의 교인들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구세군 등이 회원이며, 그들은 한국교회의 일부만을 대표한다.
신학적 포용주의
WCC의 헌법에 있는 ‘기초’라는 진술은 내용적으로 틀린 말은 없으며 또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이 제안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도 정통적 신조이지만, 역사상 다양화된 교회들의 현실에서 그것들은 교회 연합의 기초로서는 너무 부족한 것들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교회 일체성의 실제적 기초는 신학적 포용주의, 즉 기독교계 안에 있는 다양한 신학들을 비평 없이 포용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다양한 신학들을 용납하고 그 다양성을 정당화한다. 그들은 포용적 교리 진술을 제안하고 교회들 간의 상호 인정과 성찬 교제, 선교 활동에서의 협력, 그리고 협의체들 구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신학적 포용주의는 잘못된 사상이며 입장이다. 왜냐하면 바른 교리와 바른 신학은 기독교에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또 교회의 하나됨(일체성 一體性)은 교리적인 성격을 지닌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들을 전달받았고 소유하고 있으며 또 그 진리들을 보수(保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살후 2:15; 딤후 1:13-14). 또 교회는 이단을 배격할 의무가 있다(롬 16:17; 딛 3:10; 유 3).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 안에 들어와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유주의 신학을 분별하고 배격함이 없는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큰 잘못인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관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관은 매우 포용적이며 다음 몇 가지 점에 있어서 자유주의적이다.
(1) WCC는 성경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공인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런 비평방식은 자유주의 신학의 방법으로서 파괴적, 불신앙적 연구방식이다.
(2) WCC는 성경의 통일성을 부정하고 성경 속에 신학의 다양성과 상호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의 통일성은 성경의 신적 권위와 영감에 내포되어 있는 기본적 진리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의 영감성과 권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3) WCC는 성경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그것들을 해석된 역사로 본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단적 사상이다.
(4) WCC는 특히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그 결과, 성경 구절들을 증거 구절로 인용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성경의 명확한 메시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개신교회들의 공통적인 기본 신념을 그 근본에서부터 뒤엎는 것이며, 성경 자체의 명백한 증거들과 충돌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성경의 객관적, 절대적, 신적 권위를 명백히 증거하셨다(요 10:35; 딤후 3:16; 살후 2:15).
신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라고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적 신념이며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은 모든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신념이다. 그러나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은 기독교의 이 기초적 신념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적 성경관을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신조, 복음, 믿음에 대한 개념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 신조에 대해 잘못된 개념들을 포용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교회 연합을 위한 신조적 내용을 축소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단을 배제하는 신조의 역할을 생각할 때 신조의 축소는 잘못된 생각이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니케아 신조가 시대제약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계시관에 대한 근본적 오류이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니케아 신조를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하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니케아 신조는 정통 신조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단적 사상이다. 심지어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하나님에 대한 언어적 표현이 부적절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사상은 신정통주의적 오류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을 포용하고 있다.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교회가 복음 자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가 복음을 받았고 지금 소유하고 있음을 명백히 선언한다(고전 15:1; 갈 1:8-9).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복음이 교리가 아니고 살아있는 실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리와 인격을 대립시키는 오류이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복음이 문화적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를 불가지론으로 만드는 큰 오류이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복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복음의 내용이 영원하고 불변적이라고 선언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 믿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을 포용하고 있다.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믿음에 대한 반(反)지식적 견해를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지식을 필요로 하고 지식을 내포함을 명백히 보인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믿음의 내용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진리들와 성경 전체는 변할 수 없다.
천주교회와 가까움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한 천주교회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다. 천주교회 측의 태도도 매우 긍정적이다. 현재 에큐메니칼 운동은 천주교회와 연합적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1993년 8월 스페인에서 열린 WCC 제5차 신앙직제위원회 세계 대회의 120명 회원 중 26명은 천주교인으로서 전적으로 참여하였다. 1999년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천주교는 이미 온 세계의 56개국의 교회협의회들의 정회원이다. 심지어, 에큐메니칼 운동에는 모종의 교황 제도를 받아들이려는 경향까지 존재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례관은 성례주의적, 의식주의적 맛을 가진다. 그것은 천주교의 개념과 가깝다. 또 오늘날 은사운동은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 간의 접착제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마리아 교리나 미사의 교리나 칭의의 교리나 교황의 교리에 있어서 명백히 성경에서 이탈한 적그리스도적, 우상숭배적, 이단적 집단이며 천주교회와의 교제는 명백히 비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
한 세계교회를 지향함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한 한 세계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오류를 포용하는 한 세계교회의 추구는 잘못이다. 더욱이, 교파적 확신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초교파적 연합교회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덧붙여서, 우리는 거대한 전제주의적 교회를 두려워한다.
넓어진 선교 개념을 포용함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교 개념은 전도뿐 아니라, 사회정치활동을 포함하는 넓어진 개념이다. 또 에큐메니칼 운동은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큰 관심과 행동주의적 태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마귀의 속임수이다. 성경적 교회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성경적 선교개념을 지켜야 한다.
종교다원주의적 경향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은 종교다원주의적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WCC는 타종교들과의 대화의 방식을 강조한다. WCC 지도자들 중에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Dirk C. Mulder, S. Wesley Ariaraja 등). 또 천주교회는 근래에 더욱 혼합주의적인 경향을 띤다. 그러나 진리의 통찰력을 얻기 위한 이방종교인과의 쌍방적 대화는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바이다(신 12:30; 렘 10:2). 성경적 전도 방법은 선포와 가르침이다. 더욱이,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은 확실히 이단이다.
문제의 핵심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의 핵심은 신학적 포용주의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복음적 개신교파들의 다양성을 의미하지 않고, 19세기에 작게 시작되었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역사적 대교단들을 부패시킨 자유주의 신학을 포함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역사상 찾아볼 수 없었던 파괴적 이단인데, 오늘날 세계의 역사적 대교단들은 이 이단 사상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가 되었고 이런 교회들의 연합체로서의 WCC는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조직체가 된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것이다. WCC는 오늘날 천주교회와 매우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심지어 종교다원주의의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결론
결론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비성경적 운동이다. 교회의 일체성이라는 목표는 좋지만, 이 운동이 실제로 취하는 교회 일체성의 기초인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그것은 결국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이단이며 천주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그 본질적 내용에 변한 것이 없는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 집단이다. 심지어, 에큐메니칼 운동은 종교다원주의적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확실히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비성경적, 이단적, 인본주의적, 배교적 운동이다. 따라서 성경적 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말하였다(엡 5:11).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위태하게 되는 그런 사랑과 일치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하였다.
교회 연합의 바른 원리
그러면 교회의 일체성(一體性, unity)의 성경적 개념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주 안에서 하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일체성(一體性)은 영적, 교리적, 유형적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이미 영적으로 하나이다. 이 일체성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다. 교회의 일체성은 또 교리적이다. 기독교적 일치는 진리 안에서의 일치이다. 교회의 일체성은 또한 유형적이다. 또 연합 개념의 균형잡힌 이해를 위해, 교회의 일체성은 성결성과 더불어 이해되어야 한다. 비록 지상에 완전히 순결한 교회는 없을지라도, 참된 교회는 성경의 모든 교훈을 성실히 지키고 순종하려 해야 한다. 성도의 교제는 악을 포용하면서 지켜야 할 덕이 아니다. 참된 사랑은 불의와 악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고전 13:5-6).
그러면 교회 연합의 바른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로, 세계의 모든 성경적 교회들은 적어도 성경의 근본 교리들에 있어서 일치해야 한다. 교회들에서 이런 근본 교리들의 일치는 다수결적 일치이어서는 안 되고 만장일치이어야 한다. 둘째로, 참된 교회들은 이단을 배제해야 한다. 이단은 근본 교리들에서의 이탈을 가리킨다. 그것은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부정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이다. 특히 이 점에서 참된 교회들의 교제는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배제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셋째로, 교파들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넷째로, 우리는 한 지교회나 교파의 담을 넘어서서 범교회적 혹은 초교파적 교제와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우리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관련해 몇 가지 점들을 제안하려 한다.
첫째로, 우리는 초교파적 교제를 위해 기존의 건전한 단체들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경적교회 세계협의회(WCBC), 세계근본주의자대회(WCF),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 등.
둘째로, 성경적 교회들은 잘못된 교제를 반성하고 중단해야 한다.
셋째로, 참된 교회들은 조직체적 연합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외적 규모만 중시하지 말고 영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지교회를 목회하여 교인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세워야 하고, 또 우리의 속한 교단을 바르게 건립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바른 신학교,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전수하고 현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바른 분별력을 가지게 하는 목사 양성원들을 세워야 한다. 신학교가 가는 대로 교회들이 갈 것이다. 또 교회들이 가는 대로 신학교도 갈 것이다. 물론, 기회 있는 대로 건전한 원리에 따라 전체 교회의 교제를 나눠야 할 것이지만, 우선 지교회, 지교단이, 비록 그것들이 작은 규모일지라도, 바르게 세워지고 바르게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모든 목사들과 교회들의 일차적 의무일 것이다. 그것을 먼저 잘 하면서, 우리는 진리와 사랑 안에서, 온유와 겸손으로 전체 교회의 건전한 교제의 확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의, 세력
에큐메니칼 운동 곧 교회연합운동은 온 세계의 모든 기독교회들을 재연합시키려는 운동이다. 1948년 화란의 암스텔담에서 조직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결실이며 현재 대표적인 수단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력은 상당히 크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2012년 현재 110개국 이상의 349개 회원 교단들에 소속된 5억 6천만명 이상의 교인들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구세군 등이 회원이며, 그들은 한국교회의 일부만을 대표한다.
신학적 포용주의
WCC의 헌법에 있는 ‘기초’라는 진술은 내용적으로 틀린 말은 없으며 또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이 제안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도 정통적 신조이지만, 역사상 다양화된 교회들의 현실에서 그것들은 교회 연합의 기초로서는 너무 부족한 것들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교회 일체성의 실제적 기초는 신학적 포용주의, 즉 기독교계 안에 있는 다양한 신학들을 비평 없이 포용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다양한 신학들을 용납하고 그 다양성을 정당화한다. 그들은 포용적 교리 진술을 제안하고 교회들 간의 상호 인정과 성찬 교제, 선교 활동에서의 협력, 그리고 협의체들 구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신학적 포용주의는 잘못된 사상이며 입장이다. 왜냐하면 바른 교리와 바른 신학은 기독교에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또 교회의 하나됨(일체성 一體性)은 교리적인 성격을 지닌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들을 전달받았고 소유하고 있으며 또 그 진리들을 보수(保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살후 2:15; 딤후 1:13-14). 또 교회는 이단을 배격할 의무가 있다(롬 16:17; 딛 3:10; 유 3).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 안에 들어와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유주의 신학을 분별하고 배격함이 없는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큰 잘못인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관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관은 매우 포용적이며 다음 몇 가지 점에 있어서 자유주의적이다.
(1) WCC는 성경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공인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런 비평방식은 자유주의 신학의 방법으로서 파괴적, 불신앙적 연구방식이다.
(2) WCC는 성경의 통일성을 부정하고 성경 속에 신학의 다양성과 상호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의 통일성은 성경의 신적 권위와 영감에 내포되어 있는 기본적 진리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의 영감성과 권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3) WCC는 성경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그것들을 해석된 역사로 본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단적 사상이다.
(4) WCC는 특히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그 결과, 성경 구절들을 증거 구절로 인용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성경의 명확한 메시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개신교회들의 공통적인 기본 신념을 그 근본에서부터 뒤엎는 것이며, 성경 자체의 명백한 증거들과 충돌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성경의 객관적, 절대적, 신적 권위를 명백히 증거하셨다(요 10:35; 딤후 3:16; 살후 2:15).
신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라고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적 신념이며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은 모든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신념이다. 그러나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은 기독교의 이 기초적 신념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적 성경관을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신조, 복음, 믿음에 대한 개념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 신조에 대해 잘못된 개념들을 포용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교회 연합을 위한 신조적 내용을 축소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단을 배제하는 신조의 역할을 생각할 때 신조의 축소는 잘못된 생각이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니케아 신조가 시대제약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계시관에 대한 근본적 오류이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니케아 신조를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하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니케아 신조는 정통 신조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단적 사상이다. 심지어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하나님에 대한 언어적 표현이 부적절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사상은 신정통주의적 오류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을 포용하고 있다.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교회가 복음 자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가 복음을 받았고 지금 소유하고 있음을 명백히 선언한다(고전 15:1; 갈 1:8-9).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복음이 교리가 아니고 살아있는 실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리와 인격을 대립시키는 오류이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복음이 문화적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를 불가지론으로 만드는 큰 오류이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복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복음의 내용이 영원하고 불변적이라고 선언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 믿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을 포용하고 있다.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믿음에 대한 반(反)지식적 견해를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지식을 필요로 하고 지식을 내포함을 명백히 보인다. 또 어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믿음의 내용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진리들와 성경 전체는 변할 수 없다.
천주교회와 가까움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한 천주교회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다. 천주교회 측의 태도도 매우 긍정적이다. 현재 에큐메니칼 운동은 천주교회와 연합적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1993년 8월 스페인에서 열린 WCC 제5차 신앙직제위원회 세계 대회의 120명 회원 중 26명은 천주교인으로서 전적으로 참여하였다. 1999년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천주교는 이미 온 세계의 56개국의 교회협의회들의 정회원이다. 심지어, 에큐메니칼 운동에는 모종의 교황 제도를 받아들이려는 경향까지 존재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례관은 성례주의적, 의식주의적 맛을 가진다. 그것은 천주교의 개념과 가깝다. 또 오늘날 은사운동은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 간의 접착제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마리아 교리나 미사의 교리나 칭의의 교리나 교황의 교리에 있어서 명백히 성경에서 이탈한 적그리스도적, 우상숭배적, 이단적 집단이며 천주교회와의 교제는 명백히 비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
한 세계교회를 지향함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한 한 세계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오류를 포용하는 한 세계교회의 추구는 잘못이다. 더욱이, 교파적 확신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초교파적 연합교회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덧붙여서, 우리는 거대한 전제주의적 교회를 두려워한다.
넓어진 선교 개념을 포용함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교 개념은 전도뿐 아니라, 사회정치활동을 포함하는 넓어진 개념이다. 또 에큐메니칼 운동은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큰 관심과 행동주의적 태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마귀의 속임수이다. 성경적 교회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성경적 선교개념을 지켜야 한다.
종교다원주의적 경향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은 종교다원주의적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WCC는 타종교들과의 대화의 방식을 강조한다. WCC 지도자들 중에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Dirk C. Mulder, S. Wesley Ariaraja 등). 또 천주교회는 근래에 더욱 혼합주의적인 경향을 띤다. 그러나 진리의 통찰력을 얻기 위한 이방종교인과의 쌍방적 대화는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바이다(신 12:30; 렘 10:2). 성경적 전도 방법은 선포와 가르침이다. 더욱이,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은 확실히 이단이다.
문제의 핵심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의 핵심은 신학적 포용주의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복음적 개신교파들의 다양성을 의미하지 않고, 19세기에 작게 시작되었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역사적 대교단들을 부패시킨 자유주의 신학을 포함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역사상 찾아볼 수 없었던 파괴적 이단인데, 오늘날 세계의 역사적 대교단들은 이 이단 사상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가 되었고 이런 교회들의 연합체로서의 WCC는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조직체가 된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것이다. WCC는 오늘날 천주교회와 매우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심지어 종교다원주의의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결론
결론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비성경적 운동이다. 교회의 일체성이라는 목표는 좋지만, 이 운동이 실제로 취하는 교회 일체성의 기초인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그것은 결국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이단이며 천주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그 본질적 내용에 변한 것이 없는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 집단이다. 심지어, 에큐메니칼 운동은 종교다원주의적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확실히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비성경적, 이단적, 인본주의적, 배교적 운동이다. 따라서 성경적 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말하였다(엡 5:11).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위태하게 되는 그런 사랑과 일치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하였다.
교회 연합의 바른 원리
그러면 교회의 일체성(一體性, unity)의 성경적 개념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주 안에서 하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일체성(一體性)은 영적, 교리적, 유형적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이미 영적으로 하나이다. 이 일체성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다. 교회의 일체성은 또 교리적이다. 기독교적 일치는 진리 안에서의 일치이다. 교회의 일체성은 또한 유형적이다. 또 연합 개념의 균형잡힌 이해를 위해, 교회의 일체성은 성결성과 더불어 이해되어야 한다. 비록 지상에 완전히 순결한 교회는 없을지라도, 참된 교회는 성경의 모든 교훈을 성실히 지키고 순종하려 해야 한다. 성도의 교제는 악을 포용하면서 지켜야 할 덕이 아니다. 참된 사랑은 불의와 악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고전 13:5-6).
그러면 교회 연합의 바른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로, 세계의 모든 성경적 교회들은 적어도 성경의 근본 교리들에 있어서 일치해야 한다. 교회들에서 이런 근본 교리들의 일치는 다수결적 일치이어서는 안 되고 만장일치이어야 한다. 둘째로, 참된 교회들은 이단을 배제해야 한다. 이단은 근본 교리들에서의 이탈을 가리킨다. 그것은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부정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이다. 특히 이 점에서 참된 교회들의 교제는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배제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셋째로, 교파들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넷째로, 우리는 한 지교회나 교파의 담을 넘어서서 범교회적 혹은 초교파적 교제와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우리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관련해 몇 가지 점들을 제안하려 한다.
첫째로, 우리는 초교파적 교제를 위해 기존의 건전한 단체들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경적교회 세계협의회(WCBC), 세계근본주의자대회(WCF),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 등.
둘째로, 성경적 교회들은 잘못된 교제를 반성하고 중단해야 한다.
셋째로, 참된 교회들은 조직체적 연합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외적 규모만 중시하지 말고 영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지교회를 목회하여 교인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세워야 하고, 또 우리의 속한 교단을 바르게 건립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바른 신학교,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전수하고 현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바른 분별력을 가지게 하는 목사 양성원들을 세워야 한다. 신학교가 가는 대로 교회들이 갈 것이다. 또 교회들이 가는 대로 신학교도 갈 것이다. 물론, 기회 있는 대로 건전한 원리에 따라 전체 교회의 교제를 나눠야 할 것이지만, 우선 지교회, 지교단이, 비록 그것들이 작은 규모일지라도, 바르게 세워지고 바르게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모든 목사들과 교회들의 일차적 의무일 것이다. 그것을 먼저 잘 하면서, 우리는 진리와 사랑 안에서, 온유와 겸손으로 전체 교회의 건전한 교제의 확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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