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와 현대신학
2013.02.20 16:18
개혁교회와 현대신학
김효성 목사
개혁교회가 당면한 현대신학적 제문제들을 간략히 정리해보고 그 중요한 대처방향을 생각해봅시다.
자유주의 신학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회의주의적 성경비평학의 공격을 받아 전통적 성경관과 성경해석을 거의 포기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입니다. 저는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말을 오늘날의 불신앙적인 현대 신학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한마디로 이단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와 무오성을 부정한다.
첫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와 무오성을 부정합니다. 칼 바르트는 아담의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는 거짓이라고 단언했고 또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 제작의 산물들이든지 아니든지 무슨 문제가 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또 그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C. H. 다드는 성경의 외적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계시 진리는 객관적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고 심지어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은 종교와 공중 도덕에 위험물이라고까지 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을 부정한다
둘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을 부정합니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고 말했습니다. 폴 틸리히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엉터리 없는]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칼 바르트는 “그의 모친이 젊은 부인으로 불리는가 혹은 처녀로 불리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고, 라인홀드 니이버는 처녀 탄생 진리를 원시적 신화요, 후대에 삽입된 생각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모독하는 말들입니다.
3.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한다
셋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합니다. 폴 틸리히는 그리스도의 행적 전반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역사적 지식과 같이, 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고 가설적이다. 역사적 연구는 이 지식을 방법론적 회의주의에 굴복시키고 본질적인 부분들뿐 아니라 각개의 부분들에서도 계속적인 변화에 굴복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의 진실한 증거성을 부정합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또 우리는 특히 헬라주의적 환경으로부터 당시 유행하는 작품에서, 귀신의 추방, 병 고침, 죽은 자들을 일으킴, 풍랑을 잔잔케 함, 포도주 기적의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이 기적 이야기들의 어떤 것들은 복음서들의 그것들과 매우 밀접한 접촉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적 전통이 그 주변 환경에서 빌려왔으며 적어도 그것에서 어떤 개별적 주제들을 이어받았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4.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부정한다
넷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부정합니다. C. H. 다드는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가라앉힘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이교적(異敎的)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5.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
다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고 말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부활의 역사는 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 신화(saga)나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6. 사람의 영혼 불멸을 부정한다
여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사람의 영혼 불멸을 부정합니다. 폴 틸리히은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적 교리는 아니다”라고 말했고, 오스카 쿨만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 불멸의 개념]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유주의 제학파들은 공통적 불신앙입니다!
7.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일곱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합니다.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고, 라인홀드 니이버는 “기독교 교리 중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8.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여덟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고 말했고, 판넨베르크는 “죽은 자의 부활 개념의 긍정적 타당성을 인식하고 주장함은 우리가 그것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성격에 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가능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다 불신앙자들이요 이단자들이며 허무주의자들입니다.
이런 이단적 신학 사상이 마치 당연한 학문인 것처럼 교회 속에 들어와 신학교들과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또 목사들과 신학생들과 평신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예들은 너무 많고 우리나라의 개혁교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만일 누가 우리나라에 자유주의 신학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무지하든지 고의적으로 속이거나 자신의 사상을 감추는 자이든지 아니면 신앙이 너무 해이해져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지 못하는 자일 것입니다.
에큐메니칼 운동
오늘날 교회들의 특징은 포용주의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넓어진 교회입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오늘날 교회들 속에 조금씩 들어와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들은 그것을 배제할 의지가 없고 힘이 없습니다. 경건하게 보이는 많은 목사들과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을 뿐입니다.
넓어진 교회들 속에서 일어난 현대적 운동이 에큐메니칼 운동입니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선교대회에서 기원을 찾습니다. 그 후, 교회일체성과 사회적 관심을 가진 두 종류의 세계적 모임들이 일어났고 그런 일련의 모임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교회협의회(WCC)라는 단체를 형성하였습니다.
WCC의 특징은 신학적 포용주의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포용
WCC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적 인사들을 포용하고 있었습니다. WCC의 여러 해에 걸친 토의 과정에서 종합된 성경관에 대한 문서는 WCC가 바른 성경관을 멀리 떠나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입니다. 그 단체는 성경연구에 있어서 문학적, 역사적 비평방식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많은 교회들과 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마당에, 교회들의 연합체인 세계교회협의회가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신학적 포용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학적 포용주의는 현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이단을 포용하고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것이며 권징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천주교회의 포용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과 심지어 유명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천주교회를 인정하고 친밀히 교제하고 있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WCC의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현재 WCC와 천주교회 간의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며 모든 종류의 우호 관계들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1968년 이후, 10-15명의 천주교 신학자들이 WCC 신앙직제위원회에 정회원으로 참여해왔습니다. 천주교회는 정규적으로 WCC의 주요 대회들에 참관인이었고 WCC의 프로그램 작성 간사 중에도 들어 있습니다. 1993년, WCC 신앙직제위원회 세계대회의 120명 회원 중 26명은 천주교인이었습니다. 1999년 현재, 천주교회는 56개국 교회협의회(NCC)들의 정회원입니다.
유명한 복음주의 지도자들 중에도 천주교회를 용납하는 일이 있습니다. 199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이사 스털링 허스턴은 “지난 10-15년간 그레이엄 전도대회에서 천주교회의 참여가 크게 늘어났으며 소수의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이제 전도대회 계획위원회들의 공식적 대표자들로 봉사한다. 천주교회 신자들은 안내위원들, 성가대원들, 심지어 상담위원들로 환영을 받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1994년 빌 브라잇, 촬스 콜슨, J. I. 패커 등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상호 인정과 협력을 선언한 선언서에 서명하였습니다.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의 전 회장 존 화이트도 그 문서에 서명하였고 천주교인들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마리아를 숭배하고 이신칭의의 복음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속죄를 왜곡시키고 교황의 무오한 권위를 주장하는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집단입니다. 게다가, 천주교회는 고문과 학살, 음행, 사치와 탐욕의 역사적 오류들을 교회적으로 인정하고 회개한 적이 없습니다.
낙태와 동성애의 허용
오늘날 교회들의 배교는 윤리적 영역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것은 특히 낙태와 동성애 문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낙태는 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죄악입니다. 세계적으로 낙태는 연간 약 5,500만건이며, 우리나라도 연간 약 150만건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아 대학살입니다. 미국연합감리교회는 일찍부터(1970년대 초) 낙태를 허용했습니다. 1986년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도 낙태에 관해 낙태 허용의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미국 연합그리스도교회(UCC)도 공식적으로 낙태를 지지합니다.
동성애 문제는 최근의 이슈입니다. 1999년, 미합중국장로교회는 동성애 전도자 제인 스파를 그 해의 ‘신앙의 여성’ 수상자로 지명하였습니다. 그는 그 교단의 첫 번째 공공연한 동성애자이었습니다. 1999년, 미합중국장로교회 총회는 동성애자 안수금지를 규정한 헌법조항 삭제를 주장하는 교회직제 목회위원회의 ‘다수파’ 보고서 대신, 동성애자 안수 문제를 2년간 더 연구하자는 ‘소수파’ 보고서를 지지하였지만, 다수파 보고서 지지 총대는 무려 38%에 달하였습니다. 2000년 5월 미합중국장로교회 총회재판국은 목사의 동성애자 결합식 주례를 인정하며 동성애자 목사후보생을 인정하는 대회 재판국의 판결을 정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종교다원주의 경향
오늘날 교회들 안에 들어와 있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은 참으로 심각한 사실입니다. 그런 사상은 WCC 지도자들 중에서 볼 수 있습니다. WCC 종교 간의 대화위원회의 의장인 더크 멀더(Dirk C. Mulder)는 “당신은 불교인이나 힌두교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물론이죠! 물론이죠!”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WCC의 타종교들과 이념들과의 대화위원회 의장인 웨슬리 아리아라자(S. Wesley Ariaraja)는 1985년 WCC를 통해 출판된 성경과 타종교인들(The Bible and People of Other Faiths)이라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하게 부정하였습니다. 1990년 1월, WCC의 살아 있는 종교들에 속한 사람들과의 대화위원회의 스위스 바아르 모임은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인격적 의탁에 제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서 나아갈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을 발견한다”라고 말하며 또 하나님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우리 밖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고 감동하는 종교적 전통들의 구조 안에서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살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들로 그들에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방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종교다원주의의 경향입니다.
선교개념의 혼란
선교개념의 혼란은 현대교회의 혼란에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선교를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행위로만 보지 않고 사회정치적 활동을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미국연합장로교회(지금의 미합중국장로교회)의 소위 ‘1967년 신앙고백’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1968년 이후 WCC의 선교개념도 그러합니다. 1980년 WCC 멜본 세계선교대회는, “인권을 위한 투쟁에의 참여는 그 자체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말과 행위로 선포할 교회의 전체적 선교의 중심 요소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1983년 WCC 선교와 전도 선언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개인의 회개를 요청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 . . 복음 전도는 이 세상의 구조들, 즉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제도들에 대해 말한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이것이 소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혹은 ‘전체적(holistic) 선교’라는 개념입니다. 1996년, 한국 개혁신학회 학술심포지엄에서 장로회신학대학의 이형기 교수는 동일한 개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넓어진 선교개념은 존 스토트에 의해 복음주의 진영에도 수용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이런 선교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개혁주의에큐메니칼대회(RES) 총무 이었던 폴 슈로텐보어는 심지어 전도 개념 속에 구조적 개혁을 포함하려 했습니다.
복음주의의 문제
오늘날 많은 개혁파 목사들은 복음주의 협의회(NAE)나 복음주의 신학회(ETS)나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등 복음주의에 관계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이후 로마 천주교회와 구별하여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으나,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난 후 오늘날 복음주의는, 조지 말스던의 말과 같이, 신복음주의적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주의의 특징은 교제와 활동에 있어서 자유주의를 배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처음으로 대변했던 인물은 미국의 풀러신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해롤드 오켕가이었습니다. 그는 풀러신학교 교장 취임시 성경적 분리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자기 신학교는 대교단들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1948년 풀러신학교 강연에서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1957년의 한 소식지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말했고, 또 후에 그는 “신복음주의는 분리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하였습니다.
194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가 조직되었고, 1947년 미국의 풀러(Fuller)신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1951년 20개국의 복음주의자협회들이 모여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를 만들었습니다(2001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로 개명함). 1956년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가 창간되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신복음주의의 대표적 기관들이 되었습니다.
자유주의의 포용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들의 자유주의 포용의 대표적 예는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의 전도 집회들에서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의 후원을 공공연히 받았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전도집회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명확히 부정한 제랄드 케네디 감독을 명예대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데이빗 클라우드는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에 대해, 성경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호하지 않는 점,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부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 점, 지옥이 불붙는 고통의 장소라고 믿지 않는 점,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 신학이 더 이상 자기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 점, 이단적인 로버트 슐러의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에 동의한 점,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칭송한 점,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배교적 자유주의 교회들에 넘겨준 점 등을 열거했습니다. 컬럼비아 국제대학교 명예총장 로벗슨 맥퀼킨은 빌리 그레이엄이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 즉 천주교인, 헬라정교인, 자유주의자에게 따뜻한 에큐메니칼 포용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복음주의 기관인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의 지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의 무오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교리를 포함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마틴 마티는 199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에서 강연하였고 또 1998년 그 협회 회장 돈 아규는 그 협회가 창설된 이래 최초로 자유주의적 미국교회협의회(NCC) 총회에서 연설하였습니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회장 데오도르 윌리암스는 WEF 뉴스레터 1993년 8월호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소속 교단 내의 복음주의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그 교회 안에서 복음주의적 영향을 끼치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개혁을 포기하고 권징을 포기하는 포용주의적 정신입니다.
신복음주의 대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98년 9월 7일자는 레이몬드 브라운의 신약개론을 높이 추천하였습니다. 그러나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 아니고 오류를 범하였다고 말한 자유주의적 천주교 신부입니다. 그는 WCC에서 활동적이고 1971년 미국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예들
한국교회의 예들을 봅시다. 1986년 9월 한국장로교협의회는 새문안교회에서 노춘경씨 수세 100주년 기념 행사로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예장고신, 예장대신 등 5개 장로교단 연합성찬예배 및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1990년 11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빌리 그레이엄 홍콩 전도대회의 한국 위성중계 전도대회의 장소로 부산 수영로교회, 대구 서문교회, 대전 중앙교회 등 예장합동측의 큰 교회들을 채택하였습니다. 1991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기감과 기장의 가입 문제는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거듭 밝혔습니다.” 이 단체는, 자유주의 교단인 기감과 기장을 배제할 의사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에서 예장통합 박성원 목사는 “개인 구원, 사회 구원을 각기 외치면서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일치하려면 타협이 필요하며, 예컨대 보수측에서 ‘성경이 유일한 계시이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장로교 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장 신학연구소장인 김원배 박사는 교회 일치는 진정한 교회 회복 운동인데, 교회 일치를 위해 도그마에서 벗어나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교리만 따진다면 끝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한편, 예장대신 총회 총무 김재규 목사도 한국교회가 교리를 따지지 말고 선교에 함께 참여함으로 일치를 이루자고 말하며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장로교회 일치의 저해요인”이라고 주장했고, 또 과거엔 김재준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했으나 오늘날 보수 신학에서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1993년, 한국장로교협의회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은 한국 장로교회들이 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1994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3.1절 기념예배 설교를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강원용 목사에게, 3월 8일 임원취임예배 설교를 기장측의 조향록 목사에게 부탁했고, 또 4월 9일 남북교회협력을 위한 세미나 강사 명단에 강원용 박사를 포함하였습니다.
1995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광복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의 강사 중에 기장측 조향록 목사를 포함하였습니다.
199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발표회에서, 홍순우 목사는 진보적 교회와 보수적 교회가 다 반성하고 한국교회 전체 정서에 맞는 연합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NCC나 한기총 등의 연합기관이 합력하여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199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한명수 목사(한기총 전 총무, 당시 합동측 기독신보 주필)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과 교회협[NCC]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합동신학교 교수, 강변교회 목사)도 “양 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97년 3월,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대신, 예장개혁, 기장 등 장로교 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협의회 토론회에서 예장합동측의 한명수 목사는 “개신교계의 분열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앞세운 데서 생긴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1997년, 예장대신측 전 총무 조순태 목사는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위기상황일 때 교회연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땅치 않게 여기는 교파도 같은 사도신경을 믿고 있으며 . . .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전혀 없는 생각입니다. 또 천주교회도 사도신경을 믿는데 연합할 수 있습니까?
1997년, 예장고신 총무 심군식 목사는 사회 문제와 사이비 이단이 판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여 힘을 약화시키지 말고 일치단합된 연합운동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997년 7월,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통합 등 3개 교단의 전국남전도회 혹은 남선교회 연합회 임원들은 교단 간의 화합과 일치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습니다. 이제는 장로들도 이 연합의 대열에 동승하고 있습니다.
1998년 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지 덕 대표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차이가 이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1998년 6월,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장의 목회자로 구성된 한국장로교목회자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는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의 약화가 한국교회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협의회(교회협)로 나눠진 것에서 연유한다”고 말하며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은 늦출 수 없는 긴박한 과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잘못된 진단과 처방입니다.
1998년,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회원교단 신임총회장과 총무 임원 축하예배에서 길자연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는 “장로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자기 입장만 고집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이제라도 우리 모두 하나 되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자”고 말하였습니다.
1999년 1월, 예장통합측 총회(총회장: 유의웅 목사)의 신년하례회에 초청된 예장합동측 총회장 길자연 목사(서울 신림동 왕성교회)는 “통합과 합동이 이심전심으로 장로교 연합과 일치 운동을 벌여 올해는 하나로 되어가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1999년, 복음주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측 총회총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예장통합과의 강단교류와 신학교류, 연합사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64%가 통합측과의 교단 통합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장통합측은 분명히 자유주의적(신정통주의적)입니다.
1999년 6월 27일, 예장합동측의 역사적 승동교회(박상훈 목사)와 예장통합측의 대표적 교회인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간의 강단교류가 양교단의 분열 40년 만에 승동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00년 3월, 한국기독교교단총무회는 교회연합운동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교회협과 한기총의 연합에 적극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교단총무회는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합동보수, 예장개혁합신, 침례교, 감리교 등이 속해 있습니다.
이상의 예들은 한국의 보수적 장로교회들을 포함한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무지하거나 고의적으로 타협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단지 복음을 믿는 입장이 아니고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이나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교단들과 교제를 끊지 않고 서로 교제하고 협력하는 포용적 입장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개혁교회들은 이런 잘못된 교제로 말미암아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점점 더 해이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래 개혁교회의 정상적 모습은 아닙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며 그런 이단을 교회가 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역사적 개신교회의 대교단들을 거의 지배하는 오늘날 신학의 영역에서나 교회 활동의 영역에서 자유주의의 요소를 완전히 떨어버리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말하면 개혁교회는 자유주의적 요소들을 배격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단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딛 3:10). 잘못된 교제는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은사주의 포용
오늘날 개혁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또 하나의 문제는 은사주의의 문제입니다. 많은 개혁교회들이 은사주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일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은사주의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1993년, 카리스마지는 오순절파가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 회원교회들의 약 51%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어떤 보고서는 약 80%라고 합니다. 또 미국복음주의자협회 회장 케빈 매노이아는 자신이 복음주의 운동에서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간에 일치의 다리를 놓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또 그는 복음주의자협회가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 같은 은사운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은사주의는 사도 시대에 있었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 즉 예언, 방언, 병고침 등의 은사들이 오늘날도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전통적으로 이해해왔던 대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과 기적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전달과 그 확증을 위해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고 또 그가 친히 교회의 기초를 닦도록 말씀 전파의 직무를 주셨던 사도들에게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과 기적 행하는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통해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시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교회들에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과 기적들을 주지 않으시는 것은 신구약성경으로 하나님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보이셨던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성경은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족한 책이며 도구입니다. 또 다시 죽은 자가 살아나야 하나님이 증거되는 것은 아닙니다(눅 16:29-31).
사도 시대 이후 기독교 역사는 기적 행함의 역사가 아니고 십자가의 말씀을 전한 역사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하였습니다(고전 1:22-23). 중생과 회개의 내면적 기적은 늘 있었지만, 외적 기적은 오랫동안 사라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충족한 말씀으로 일해 오셨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구원과 변화된 삶을 위해 충족한 수단이었습니다. 성경을 믿고 성경대로 사는 삶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한 성령의 잔잔한 내면적 활동은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떠난 적이 없었고, 신자들은 그 속에서 만족을 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성경책을 통해 역사하셔서 만세 전에 택하신 영혼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사신 영혼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구원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사들이 아니고, 성경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과 성실한 순종이다. 개혁교회는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기초를 흔들며 혼란시키는 매우 위험한 사상입니다.
여자 목사 문제
오늘날 교회들의 불성실함 중의 하나는 여자 목사 문제입니다. 자유주의 교회들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벌써부터 허용되었던 이 문제는 지금 보수적인 개혁교회들에서 토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어기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여자 목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2:11-14과 고린도전서 14:34-37은 이 문제에 대해 (1) 창조의 질서, (2) 범죄의 징벌, (3) 율법의 말씀, (4) 주의 명령, (5) 교회의 보편적 규례 등 다섯 가지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 교훈을 옛 시대의 사고방식과 풍습에 제약을 받은 인간 바울의 말로 보는 것은 이 다섯 가지 이유들의 정당성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항하는 큰 오류이며 큰 죄악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말했습니다(살후 2:15).
현대기독교음악(CCM)과 열린 예배의 문제
최근의 교회들의 한 중요한 문제는 현대기독교음악(CCM)과 열린 예배의 문제입니다. 인간 생활의 중요한 요소인 음악이 오늘날 역사상 유래 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세속적 현대음악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반복적 북두드리기나 우리나라의 토속적 굿판의 꽹과리 리듬 같은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비트가 주된 특징인 락 뮤직이라는 장르는 현대음악의 여러 형태들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전통적 음악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이것은 멜로디의 형태나 곡의 빠르기나 소리의 크기의 문제이기 전에 음악의 연주 방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락 비트는 사람의 감정을 흥분시키고 격화시킵니다. 거기에 그 음악의 묘미가 있고 또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런 특징 때문에 그것은 교회음악으로서는 부적합하다고 경계를 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노래해야 하지만, 우리는 성도의 노래가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것이므로 경건함, 질서와 안정성, 조화와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자기만족적이거나 자기도취적인 방식으로 찬송하거나 노래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대기독교음악은 곡에 관한 한 그렇지 않고 세속적 음악과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교회 음악에 있어서도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한다고 봅니다(빌 1:10).
교회의 예배 방식도 변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더 이상 그들이 임직서약 때 한 예배모범을 따르지 않습니다. 말주변과 리더쉽 있는 목사들이 앞장서서 전통적 예배 형식을 부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한 임직서약 위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존귀하십니다. 그는 무질서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고전 14:33). 우상숭배자는 오락적 춤과 노래를 좋아하지만(출 32:6, 19), 성도들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시 96:9). 예배는 엄숙하고 질서 있게 드려야 하고 또 개혁교회가 전통적으로 이해한 대로 예배에서 설교는 가장 중요합니다. 충실한 설교가 빠진 흥미 위주의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줄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근심과 진노를 일으킬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개혁주의자라면 먼저 여러분의 예배당에 드럼세트를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있다면 즉시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다단계식 교회성장 방식
오늘날 개혁교회들을 포함하여 교회들이 직면한 한 큰 문제는 다단계식 교회성장 방식입니다. 그것은 제자훈련 방식이라고도 표현되고 두 날개 양육시스템이라고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평신도들을 제자로 훈련시키는 것이고 교인들을 리더로 양육하여 소그룹들을 번식시켜 나가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수적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또 많은 교회들이 그런 방식을 채용하여 수적인 성장을 성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단계식 목회방식은 성경이 가르치는 전통적 교회 조직, 즉 목자로서의 목사와 장로들과 양들인 교인들 간의 목양적 관계를 부서뜨리고 있습니다. 장로의 자격이 없는 자들을 리더로 많이 세우는 것은 교회를 망치는 일입니다. 또 그런 유의 제자훈련 방식은 공공연하게 인간 목자 혹은 상급 리더에게 절대복종, 맹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선전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온유와 겸손을 본보이신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이 외에도, 안수기도하고 방언하고 치유실습을 하는 은사주의적 문제와 CCM, 열린예배 등의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 목회방식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인본주의적 방식입니다. 성경은 목회자들의 목회사역에 있어서도 유일한 지침입니다.
마치는 말
저는 여러분처럼 오늘날 혼란스러운 교회 현실 앞에서 교회 갱신은 바른 말씀을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는 설교의 부흥에서 올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바른 설교라는 말에만 머물지 말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과 실천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분별하며 또 이 시대를 분별하고(롬 12:2) 이 시대의 문제들을 바르게 파악하고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또 바른 설교는 지식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실천의 영역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자들과 교제하고 협력하며 또 잘못된 자들에 대해 지적하고 책망해야 하고 또 협력을 중단하고 절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단에 잘못들이 있을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바른 설교자는 교단의 문제들에 대해 질의하고 헌의서를 올려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부패하고 해이해졌다고 보입니다. 그것은 20세기에 이미 세계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보수적 장로교회들은 20세기 초 진리의 싸움을 싸웠던 J. 그레셤 메이천이나 미국의 초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수들인 코넬리우스 반틸, 에드워드 J. 영, 존 머레이 등의 입장을 잃어버렸습니다. 진정한 개혁주의는 성경적 교훈에 절대복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권징의 시행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부패하고 권징이 없어지고 신학교들이 부패하고 넓어지고 바른 입장과 분별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날 교회 문제들의 원인들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설교의 변질, 신앙의 해이, 교리 교육의 부재, 불경건, 성경 읽기의 부족, 기도의 부족, 진지함이 없음, 성화에 대한 불성실, 게으름, 물질적 부요, 돈 사랑, 육신적 쾌락의 사랑, 세속주의, 인본주의, 형식주의, 교만, 교권주의, 마귀의 시험 등은 다 그 원인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원인들과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교제의 원리를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악이 누룩같이 퍼진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교리적 오류나 윤리적 오류에 다 적용됩니다. 교회나 단체들이 처음에는 진지하게 시작하겠지만, 세상과 친해지고 또 세상과 친해진 자들, 양심이 무디어진 자들이 교회 속에 하나 둘 들어와 교제의 반경을 넓혀가면 교회는 점점 혹은 급속히 부패되고 해이해지는 것입니다. 순결한 교회의 부패는 작은 오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날 개혁교회들은 무분별한 교제로 자유주의 교회들을 포용하고 여러 교리적, 윤리적 오류들에 대해 비평의식이 무디어지고 넓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가르친 교제의 원리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는 천주교회의 이단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들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는 이런 분명한 입장과 분별력을 가지지 않고 넓게 교제하고 활동하는 자들에 대해 책망하고 그들과 교제하는 것도 조심하고 그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6, 14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라 하더라도 사도적 교훈을 어기고 규모 없이,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과도 교제를 끊어야 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이단을 멀리하고 이단자들을 권징하라는 것은 사도들을 통해 밝히 교훈된 말씀입니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요한이서 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개혁교회는 성경에 밝히 명령된 사도적 교훈을 어기고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행위를 책망하고 그들로부터 교제를 끊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갱신은 바른 교제와 권징의 회복을 매우 필요로 합니다.
2013년 2월 20일, 양의문교회,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모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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