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은 올해 중국의 광군제를 크게 다뤘다. 중국의 할인 행사를 이렇게 다룬 것은 한국 제품이 기대 이상으로 잘 팔렸기 때문이다. 한류 스타 전지현이 다시 중국 광고에 나온 것도 화제였다. 이번 광군제를 '사드 해빙'의 출발점으로 보는 언론도 있었다. 중국 관광객이 자주 찾는 명동의 상가 임대료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因爲理解 所以等待)'란 간절한 중국어 안내판까지 붙였던 백화점들도 중국 인력을 찾는다고 한다. 정부도, 기업도, 일부 상인도 신났다.
한·중 '사드 갈등'은 16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중·일 '동중국해 갈등'은 3년 걸려 끝났다. 바꿔 말하면 한국은 16개월 버텼고 일본은 3년 버텼다. 누가 현명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옳은지는 안다. 한국은 타협을 위해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 MD 불참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정책을 공개했다. 동맹이 아닌 상대를 위해 안보 주권에 족쇄를 채우는 나라는 없다. 일본 역시 주권을 담보로 중국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3년이나 걸렸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이 가장 큰 손해를 입었다. 국내에서 큰 손해를 입은 곳도 주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과 면세점, 화장품 매장, 호텔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이들을 얼마나 배려했다고 주권을 들고 협상에 나선 것일까. 중국의 보복이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예상보다 약했다. 우리 경제는 중국에 대한 내성(耐性)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버틸 수 있을 때 구조조정을 서둘러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자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몇몇 기업의 상처를 감수해야 한다. 일본은 인내하면서 이 길을 갔다. 정도(正道)다.
한국과 중국의 이런 태도는 유래가 깊다. 병자호란이라고 하면 인조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삼배구고두례' 굴욕을 떠올린다. 하지만 두고두고 나라를 괴롭힌 것은 당시 강제로 맺은 11개 항목의 정축약조(丁丑約條)였다. 국방에 대한 항목은 이렇다. '신구(新舊)의 성벽을 수리하거나 신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공성전(攻城戰)이 기본이던 때였으니 국방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의 집착은 대단했다. 청 태종은 "사신을 끝없이 보내 조선이 (국방에) 손을 쓸 수 없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어이없는 장면이 68년 후 실록에 나온다. 무너진 도성(都城) 담장을 쌓는 데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를 두고 조정이 시끄럽다. 우의정은 "쌓고 난 다음 발각되면 어쩌느냐"고 걱정한다. 그러자 좌의정이 "천천히 쌓으면 눈치를 못 챌 수 있다"고 잔꾀를 부린다. 병조판서는 "다른 의견을 두루 듣고 결정하자"고 발을 뺀다. 전투에 필요한 산성(山城)도 아니고 궁궐 경비와 도읍지 경계를 위한 담장 수리하는 데 이랬다. 호란 이후 조선은 사실상 무방비 국가였다. 그 결과가 1910년 망국의 경험이다. 일본만 조선을 말아먹은 게 아니다.
핵무장을 완성한 북한이 우리 수도권을 위협할 날은 멀지 않다. 사드 추가 배치 논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때 정부는 312년 전 조선 조정처럼 시끄러울 것이다. "일단 중국에 알리고 설득하자." "반대할 게 뻔하니 몰래 들여오자." "공론조사를 통해 두루 듣고 결정하자." "추가 배치를 포기하고 중국에 중재를 요청하자." 이 정부라면 이런 말들이 오갈 듯하다. 물론 상상이다. 조선은 살기 위해 안보 주권을 포기했다. 지금은 북핵이 위기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핵을 막는 데 필요한 안보 주권을 유보했다.
중국 관광 객이 몰려오고 위안화가 거리에 쏟아지면 사람들은 '안보의 대가'를 금방 잊을 것이다. 돈은 모든 시름을 덮는다. "좋은 게 좋다"는 대중 심리는 모든 비판을 땅속에 묻을 것이다. 경제 만능주의가 이렇게 막강한 힘을 떨치는 나라가 별로 없다. 게다가 지금 정부는 일부 국민의 이런 성향을 활용하는데 탁월하다. 모든 게 맞물려 이 나라가 어디론가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