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회담이 남북관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순간부터 한국은 비(非)핵화, 대북제재, 한미 연합훈련 같은 이슈들과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는 점이다. 평양 정권이 처한 여건을 종합할 때, 그들이 한국과 국제사회가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그래서 한국의 입장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북한은 6차 핵실험 후 대북제재 강화로 정권 안정성 문제에 절박성을 느끼던 작년 10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를 주재한 김정은 위원장은 "미제(美帝)가 추종세력을 규합하여 안보리 제재를 조작하면서 우리의 자주권·생존권·발전권 말살을 위해 발악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핵무력 고수'와 '경제구조의 자립성 향상'을 '현 정세에 대응하는 당의 활동방향'으로 채택했다. 즉, 핵무기는 자주권과 생존권을 담보하는 '정의의 보검(寶劍)'이기에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과 자력갱생을 통해 제재를 극복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평창 올림픽 관련 남북 대화도 북한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노동당의 실질적 최고의결기구가 채택·선포한 '핵무력 고수'와 '제재 극복'이라는 2대 전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 수단일 뿐이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핵무력 완성'과 '핵단추'를 과시한 것은 자신들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였고, 남쪽을 향해 동계올림픽 참가를 시사하고 '우리 민족'과 '외세 배격'을 강조한 것은 2대 전략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을 이용하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그래서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대화 공세를 '한국을 겨냥한 함정(trap for South Korea)'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대화를 주시하는 미국의 속내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은 한국이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이 핵을 고수하면 제재를 강화함은 물론 군사행동도 불사(不辭)한다는 경고를 전달해주기를 바랄 것이고, 일시적인 남북 해빙의 대가로 연합훈련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할 것이며, 한·미·일 안보 공조를 통해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 지지"를 표방한 배경일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에는 동맹 중시를 표방하고 중국에는 친중(親中)적인 발언을 하면서 양 대국과의 관계를 꾸려왔다. 문제는 조만간 등거리 외교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선택의 갈림길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며, 남북대화는 그 순간을 재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남북 화해의 계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집착해 북한의 핵포기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의 요구에 순응한다면, 한국은 동맹도 잃고 중국으로부터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처지를 자초할 수 있다. 그래서 홀로 비대칭 핵위협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는 한국이 택할 길이 아니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성의를 다하되 안보 현실을 먼저 생각해야 하며, 비적대·우호적 대중(對中)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함에 있어서도 동맹이 수행하는 안보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에 최선을 다하되 그 이후 도래할 수 있는 북한의 도발과 안보 위기에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북한이 2003년부 터 6자 회담을 하는 동안 뒤로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건설했듯, 이번에도 남북대화를 하면서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 문제에 있어서는 뜨거운 가슴으로 대화에 임해도 좋다. 그러나 안보·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북한이 주겠다는 것과 얻겠다는 것 사이의 등가(等價)성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정론대로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