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가 성사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제재가 먹힌 덕분이라는 문 대통령의 말은 가감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마치, 대화가 사실은 문 대통령의 외교력으로 성사된 것인데 문 대통령이 기지를 발휘해서 트럼프에게 공을 돌린 것처럼 칭송을 하고 있다. 사실은 '성사'랄 것도 없이 숨통이 막힌 김정은이 필사적으로 휘젓는 손을 문 대통령이 부여잡은 것이 아닌가. 그런데 횡재라도 한 듯 마냥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정의용 안보실장이 막내아들뻘인 김정은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학생처럼 일어서서 발표(?)하는 모습은 민망함을 넘어 불길함을 주었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유엔군 측 대표였던 C 터너 조이 제독(提督)의 저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를 보면 공산주의자들은 인도주의의 개념이 없고 상호주의의 개념도 없어서 그들과는 선의의 협상이 불가능하다. 자유 진영에서 한 가지를 양보하면 공산 진영은 더 큰 양보를 받아내려고 온갖 억지를 부린다.
조이 제독은 결국 전쟁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시작한 휴전협정이, 공산주의자들의 시간 끌기, 떼쓰기 협상전략 때문에 2년을 끌어서, 총력전으로 전쟁을 종식했더라면 사상자와 피해가 오히려 적었을 것이라고 유감스러워한다. 그러니까 공산주의자들과는 인도적인, 상식적인 협상을 할 수가 없으니 협상을 할 때도 힘의 압박을 늦춰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인도적 후의나 양보는 그들에게 이쪽의 입지가 약화되었다는 믿음을 줄 뿐 이라는 것이다.
자국민을 향한 '적폐 청산'에는 그리도 모진 문 대통령이 어째서 김정은과 그의 수하들에게는 그리도 자애로울까? 문 대통령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 김정은과 통쾌한 합의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기필코 버리기를 바란다. 김정은은 북한 동포 몇백만이 죽어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밥상에 찬밥과 짠지만 오르게 되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