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보도가 나온 이후, 한국 사회는 장밋빛 물결과 희망으로 넘쳐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북한의 비핵화(非核化)가 이루어질 전망이 밝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종전(終戰) 선언이나 평화 체제, 또는 상징적 조치가 북한을 '보통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의 비핵화는 여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을 움직이는 엘리트 계층 처지에서, 비핵화는 '집단 자살'과 다를 바 없는 이유가 많다.
먼저 역사의 교훈 때문이다. 그들은 이라크 후세인이 핵 개발에 실패했고, 미국의 공격에 타도당하고 처형된 것을 잊지 못할 것이다. 역사상 비핵화에 동의한 유일한 독재자, 리비아 카다피 대령의 운명도 그렇다. 혁명이 발발했을 때, 카다피는 서방국가의 간섭으로 우월한 공군력을 쓰지 못했고 혁명군을 폭격하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패전했고 비참하게 살해됐다. 북한은 카다피가 핵을 보유했더라면 서방국가들이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함으로써 리비아 공군력을 마비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둘째, '미국이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할 경우에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미국이 북한 정권 안전을 보장할 능력은 없다. 물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내에서 혁명이 발발할 경우, 미국이 불가침 약속을 지킴으로써 북한 정권을 도와줄 수 있을까? 특히 북한 정권이 공군력이나 중무장 병력을 동원해 혁명 세력을 참혹하게 진압하고, 혁명 세력이 리비아처럼 국제사회의 지원과 개입을 요구한다면 미국이나 한국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셋째, 강대국들의 국제 보장도 믿을 수 없다. 영토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컸던 우크라이나는 미국·영국·러시아의 안전 보장 및 국경 보장 약속을 받고, 구(舊)소련 해체 이후 자국에 남아 있던 핵무기를 반환했다. 그러나 2014년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기습적으로 합병해 버렸다. 미국이나 영국은 말로만 자기들의 불만을 표시했을 뿐이다.
넷째,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그들의 '기본 외교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북한이 강대국들에 필요한 양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핵무기뿐이다. 핵을 포기한 북한은 수많은 약소국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래서 김정은도, 그 측근들도 '비핵화의 길'을 '죽음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여길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평화 공세를 시작하고, 정상회담도 제안하고, 동시에 중국에도 대표단을 파견했을까? 기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박 외교' 때문이다. 트럼프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암시를 많이 보냈다. 진짜 이러한 계획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북한도 공포가 많아졌다. 북한은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 자기들이 결정적 타격을 받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압박 때문에 중국까지 참여하는 대북 제재가 가까운 미래에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하기 어려운 위협이다.
지난 26일 오후 이뤄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방중(訪中)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사전 협의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중국을 관리하기 위해 '양보 가능성을 암시'하는 평화 공세를 펴고 있지만 이는 결코 '진짜 비핵화 의지'를 뜻하지 않는다. 회담을 통해 시간을 벌 희망을 품은 북한은 핵을 동결할 수 있으나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다. 가능한 양보는 핵·미사일 동결이나 부분적 감축이다.
미국·중국·러시아를 비롯한 핵보유국들도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결 당시 언젠가 핵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강대국들의 비핵화 약속은 립서비스일 뿐이다. 북한도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중요시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비핵화가 가능 하다'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은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으로 이뤄질 합의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회담이 실패할 수도 있다. 타협을 이루지 못한다면 한반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아주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섣부른 기대감을 가지기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