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기에 4,700명 전사(戰死)!
2005.11.11 10:09
[조갑제, “휴전기에 4,700명戰死! 냉전이 끝났다?,” 미래한국, 2005. 8. 6, 4쪽; 趙甲濟, 月刊朝鮮 기자.]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 보았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것들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미공군의 전략폭격기 B-52이다. 1980년 대 말 퇴역한 이 전폭기를 한국으로 가져올 때 미국 정부는 당시 소련의 양해를 얻었다고 한다. 실전용이 아니란 것을 설명해야 했다는 것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은 규모나 전시품의 질에 있어서 세계적이다. 6·25 남침전쟁과 월남전쟁을 치렀던 나라이고 상무(尙武)정신이 되살아난 나라이니까 이 거대한 공간을 꽉 채울 수 있는 전시품이 생긴 것이다. 이 전쟁기념관 건설의 책임자였던 고(故) 이병형(李秉衡) 장군의 노심초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6·25 전쟁 때 한국의 일선 지휘관중 가장 잘 싸운 분으로 기록되는 이 장군(육사4기)은 전쟁과 전투의 본질에 대해서 철학 있는 말씀을 많이 남겼다. 그가 쓴 ‘대대장'이란 책은 문학적인 장면을 많이 담고 있다. 서울의 명물이 된 이 기념관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이병형이란 이름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전쟁기념관의 핵심은 회랑에 새겨진 전사자의 이름들일 것이다. 이런 통계표가 붙어 있었다.
* 한국군 전사자(戰死者)
6·25 전 창군기(創軍期) : 8,824명
6·25 전쟁기 : 152,279명
월남전 : 4,770명
휴전 이후 : 4,712명
합계 : 170,585명
이 표는 한국이 아직 김정일 정권과 전쟁중이란 현실을 잘 보여준다. 1953년 7월 28일 이후 국군 4,712명이 침투하는 북한군과 전투를 벌여 죽었다.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미군의 약 3.5배이다. 한국은 휴전기에 다른 나라의 전쟁기보다 더 많이 싸운 셈이다.
국제법적으로도 한국은 휴전중일 뿐이다. 축구에 비교하면 우리는 하프타임에 와 있다. 전반전에서는 남북한이 1-1로 비겼지만 후반전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운데서 불안한 유혈 속 평화인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는 6·25 남침전쟁은 언제 종료되는가. 이 표가 말해주고 있다. 북한정권이 무너질 때 전쟁은 한국과 자유진영의 최종승리로 끝난다. 6·25는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소련의 꼭두각시인 김일성 정권이 등장하여 대남 적화공작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6·25 전에 이미 북한군 및 남한 내 좌익반역세력과 싸우면서 국군이 8,824명의 전사자를 낸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6·25전쟁, 지금도 계속되는 6·25열전(熱戰). 그 무대인 한반도에서 냉전이 이미 끝났으니 대북(對北)경계태세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집권세력이 되었다. 소련과 미국이 대결한 냉전이 끝났다고 해서 남북한이 대결하는 6·25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불과 3년 전에도 서해상에서 전투가 발생하여 한국군 수십 명과 북한군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전쟁중인 조국의 상황을 평화시기라고 속이려드는 자들은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으니 조심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을 냉전세력, 반통일세력, 반민족세력이라고 매도한다.
이들은 영하 30도의 혹한이 계속되고 있는 한겨울인데도 “사하라 사막은 지금 영상 40도라고 하니 우리도 속옷 벗고 바깥으로 나가자"고 어리석은 자들을 선동하여 집단 동사(凍死)로 몰고 가려고 한다. 냉전세력이란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자는 지극히 당연한 사람들인데 그들을 수구(守舊)라고 매도하는 자들은 북극에서 웃통을 벗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일종의 정신질환자들이다.
이런 선동세력의 지지를 받는 노 정권은 드디어 국회와 국민의 동의도 받지도 않고 교전중인 주적(主敵)에 대해 핵무기보다 더 전략적인 전기를 공짜로 대주겠다고 선언했다. 내 호주머니에서 세금으로 빠져나간 돈이 좌파정권의 역모에 의해서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 김정일의 비자금과 대남(對南) 공작비 및 핵 개발자금으로 쓰여도 체제수호정당이란 한나라당은 침묵한다.
6자 회담에서 김정일정권은 미국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맺자고 나왔다. 평화협정이란 말의 뒷장에는 주한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란 말이 쓰여 있다. 핵무장한 남침정권이 북한지역에 살아 있는데 평화협정을 백 번 맺은들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인가.
김정일 무장집단은 1995년부터 4년 간 비무장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식량배급을 끊어버리는 ‘아사(餓死)전쟁'을 벌여 북한 주민쪽에서 300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김정일 정권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의 평화는 공동묘지의 평화일 뿐이다.
우리는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북한독재정권의 해체, 북한의 실질적 민주화, 핵무기 폐기, 미사일 폐기, 생화학무기 폐기,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대한항공 폭파 및 아웅산 테러범 처벌과 보상 등을 요구해야 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공존하고, 노예와 자유인이 붙어사는 가운데서 맺는 평화협정은 전쟁이나 내전(內戰)의 초대장이 될 뿐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 보았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것들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미공군의 전략폭격기 B-52이다. 1980년 대 말 퇴역한 이 전폭기를 한국으로 가져올 때 미국 정부는 당시 소련의 양해를 얻었다고 한다. 실전용이 아니란 것을 설명해야 했다는 것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은 규모나 전시품의 질에 있어서 세계적이다. 6·25 남침전쟁과 월남전쟁을 치렀던 나라이고 상무(尙武)정신이 되살아난 나라이니까 이 거대한 공간을 꽉 채울 수 있는 전시품이 생긴 것이다. 이 전쟁기념관 건설의 책임자였던 고(故) 이병형(李秉衡) 장군의 노심초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6·25 전쟁 때 한국의 일선 지휘관중 가장 잘 싸운 분으로 기록되는 이 장군(육사4기)은 전쟁과 전투의 본질에 대해서 철학 있는 말씀을 많이 남겼다. 그가 쓴 ‘대대장'이란 책은 문학적인 장면을 많이 담고 있다. 서울의 명물이 된 이 기념관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이병형이란 이름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전쟁기념관의 핵심은 회랑에 새겨진 전사자의 이름들일 것이다. 이런 통계표가 붙어 있었다.
* 한국군 전사자(戰死者)
6·25 전 창군기(創軍期) : 8,824명
6·25 전쟁기 : 152,279명
월남전 : 4,770명
휴전 이후 : 4,712명
합계 : 170,585명
이 표는 한국이 아직 김정일 정권과 전쟁중이란 현실을 잘 보여준다. 1953년 7월 28일 이후 국군 4,712명이 침투하는 북한군과 전투를 벌여 죽었다.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미군의 약 3.5배이다. 한국은 휴전기에 다른 나라의 전쟁기보다 더 많이 싸운 셈이다.
국제법적으로도 한국은 휴전중일 뿐이다. 축구에 비교하면 우리는 하프타임에 와 있다. 전반전에서는 남북한이 1-1로 비겼지만 후반전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운데서 불안한 유혈 속 평화인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는 6·25 남침전쟁은 언제 종료되는가. 이 표가 말해주고 있다. 북한정권이 무너질 때 전쟁은 한국과 자유진영의 최종승리로 끝난다. 6·25는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소련의 꼭두각시인 김일성 정권이 등장하여 대남 적화공작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6·25 전에 이미 북한군 및 남한 내 좌익반역세력과 싸우면서 국군이 8,824명의 전사자를 낸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6·25전쟁, 지금도 계속되는 6·25열전(熱戰). 그 무대인 한반도에서 냉전이 이미 끝났으니 대북(對北)경계태세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집권세력이 되었다. 소련과 미국이 대결한 냉전이 끝났다고 해서 남북한이 대결하는 6·25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불과 3년 전에도 서해상에서 전투가 발생하여 한국군 수십 명과 북한군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전쟁중인 조국의 상황을 평화시기라고 속이려드는 자들은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으니 조심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을 냉전세력, 반통일세력, 반민족세력이라고 매도한다.
이들은 영하 30도의 혹한이 계속되고 있는 한겨울인데도 “사하라 사막은 지금 영상 40도라고 하니 우리도 속옷 벗고 바깥으로 나가자"고 어리석은 자들을 선동하여 집단 동사(凍死)로 몰고 가려고 한다. 냉전세력이란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자는 지극히 당연한 사람들인데 그들을 수구(守舊)라고 매도하는 자들은 북극에서 웃통을 벗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일종의 정신질환자들이다.
이런 선동세력의 지지를 받는 노 정권은 드디어 국회와 국민의 동의도 받지도 않고 교전중인 주적(主敵)에 대해 핵무기보다 더 전략적인 전기를 공짜로 대주겠다고 선언했다. 내 호주머니에서 세금으로 빠져나간 돈이 좌파정권의 역모에 의해서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 김정일의 비자금과 대남(對南) 공작비 및 핵 개발자금으로 쓰여도 체제수호정당이란 한나라당은 침묵한다.
6자 회담에서 김정일정권은 미국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맺자고 나왔다. 평화협정이란 말의 뒷장에는 주한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란 말이 쓰여 있다. 핵무장한 남침정권이 북한지역에 살아 있는데 평화협정을 백 번 맺은들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인가.
김정일 무장집단은 1995년부터 4년 간 비무장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식량배급을 끊어버리는 ‘아사(餓死)전쟁'을 벌여 북한 주민쪽에서 300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김정일 정권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의 평화는 공동묘지의 평화일 뿐이다.
우리는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북한독재정권의 해체, 북한의 실질적 민주화, 핵무기 폐기, 미사일 폐기, 생화학무기 폐기,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대한항공 폭파 및 아웅산 테러범 처벌과 보상 등을 요구해야 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공존하고, 노예와 자유인이 붙어사는 가운데서 맺는 평화협정은 전쟁이나 내전(內戰)의 초대장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