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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양민학살 주장, 北선전戰 따라가는 꼴

2005.11.12 16:26

관리자 조회 수:926 추천:137

[허용범 특파원, “맥아더 양민학살 주장, 北선전戰 따라가는 꼴: 미 맥아더기념관 사료실장 제임스 조벨 인터뷰” 조선일보, 2005. 9. 15, A4쪽.]

“일부 한국인들이 맥아더가 직접 양민학살을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런 논리라면 수만명의 한국 민간인들을 미국 배에 실어 피란시킨 흥남철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15일) 55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시에 있는 맥아더 기념관 사료실장이자 역사학자인 제임스 조벨(Zobel․42)씨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맥아더 동상 철거시위에 대해 '한마디로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는 6․25 전쟁을 미국이 일으켰다거나, 맥아더를 '살인마''분단의 원흉'으로 부르는 동상철거 주장자들의 논리를 3시간 동안 수많은 자료를 동원해 반박했다. 조벨 실장은 이곳에서 13년 동안 일해왔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한국 내 일부 역사학자들의 잘못된 한국전쟁관이다. 지난 몇년간만해도 5~6명의 한국 역사학자들이 이 곳을 다녀갔다. 그 중 최소 3명은 한국전은 '북한의 방어적 전쟁'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전을 그대로 쫓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국이 한국전쟁을 촉발시켰거나 일으켰다는 주장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 주장은 이미 역사학계에서 끝난 논쟁이다. 마오쩌둥(毛澤東)과 스탈린이 김일성을 지원해 남한을 침공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한국전쟁관(觀)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나?

“여기 온 한국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관심이 없다."

―인천의 맥아더 동상은 지금 시대에 무엇을 상징한다고 보나?

“그 동상은 1957년 건립 당시 한국의 자유를 수호해 준 군인에 대한 감사의 뜻이 담겨있었다. 거기엔, 맥아더가 한국을 지배하거나 점령하러 간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갔다는 분명한 의식이 담겨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맥아더가 남의 집안싸움인 통일내전에 개입해 한 달 만에 끝날 전쟁이 3년으로 연장됐고, 맥아더가 미국 정부에 개입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맥아더는 한국전 개입을 요구한 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 정부가 현장 사령관과의 사전 협의 없이 한국전 개입을 결정한 데 대해 비판했다. 그런데 1950년 12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쟁은 길어졌다. 그렇다면 누가 이 전쟁의 연장에 책임이 있는가. 만일 중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은 1년 내에 끝날 수 있었고 희생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일부에선 미국이 1950년 1월 이른바 ‘에치슨 라인'을 통해 한국을 동아시아 방어선에서 제외한 것에 한국전 발발의 한 원인이 있다고 보는데….

“역사학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다. 1948년에서 1950년까지 남북간의 군사분쟁은 38도선에 걸쳐져 있었다. 소련이 북한에 T-34탱크와 야크기, 군사고문단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남한 전체를 목표로 침공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맥아더가 ‘양민학살과 강간, 약탈'을 지시했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가 있나?

“중공군 개입 후 보급기지에 대한 폭격으로 민간인이 숨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맥아더가 직접 양민학살을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런 논리라면, 수만명의 한국인을 구한 흥남철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맥아더는 아칸사주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 출생지인 노퍽시에 자주 들렀고 고향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에 노퍽시는 1960년, 유서 깊은 옛 시청 건물을 맥아더에게 기념관으로 제공했고, 1964년 1월 맥아더가 84세로 숨지기 3개월 전 개관했다. 맥아더 부부의 무덤이 기념관내 입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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