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정상회담이 소문난 잔치로 끝났다. 비핵화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기대했던 북핵 폐기 로드맵은 찾아볼 수 없다. 한반도 정세를 바꿀 역사적 계기를 기대했는데, 북한이 아닌 한국의 안보 우려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북한의 핵 능력은 고도화되었는데 비핵화 합의문은 퇴보하고 있다.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 목표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포기'에 합의했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올해 4·27 판문점 선언과 6·12 공동 합의문은 '완전한 비핵화'뿐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의미가 이중적(二重的)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간 한·미(韓·美)가 생각했던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포기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 해소로 규정해왔다.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가 보장되면 비핵화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늘 하던 말인데, 그걸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로 믿고 거래를 붙이니 값이 잘못 매겨지고 있다.
혹자는 한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며 후속 협상을 통해 풀자고 한다. 물론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임기도 많이 남아 있고 대북(對北) 경제 제재가 그나마 작동하는 현 상황에서 얻어낸 것이 이 정도인데, 임기가 줄고 제재 이행이 약화된 이후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빨간불이 켜진 한·미 동맹도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시사했다. 비핵화 협상 카드를 제멋대로 소진한 경솔함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조율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도 튼튼한 동맹이 있으면 억제력이 유지되는데, 비핵화보다 동맹의 형해화(形骸化)가 먼저 찾아올지 걱정된다.
우리는 왜 이런 상황을 맞았는가? 미국이나 북한도 문제지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먼저 우리의 역할을 몰랐다. 북핵 위협의 당사자가 제3자인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같은 편에는 불만이 쌓이고 상대편은 돌아서서 웃는다. 그렇게 마련된 장(場)에서 북한은 맘껏 한·미 동맹 약화를 이야기하고, 미국은 우리에게 합의 이후에야 통보하고 있다. 중재한다고 나서다가 소외될까 걱정이다.
때(時)를 몰랐다. 정부의 선(善)한 의지는 믿지만 시기가 나빴다. 드디어 제대로 된 제재가 막 작동하려던 차에 대화 국면을 조성했다. 남북 관계 개선에 시간이 모자란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행보가 급했다. 북한의 고립이 그나마 우리가 가진 협상의 지렛대였는데 너무 쉽게 써버렸다.
일의 순서를 몰랐다. 운전자로서 상황을 주도하려 했다면 우리의 협상안을 만들고 미·중(美·中)과 먼저 공조한 후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했어야 했다. 5000만 국민의 생명을 건 협상인데도 우리의 비핵화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국과 합의된 대안 없이 남북 관계를 터놓으니 북한이 물 만난 고기처럼 미·중 사이를 헤집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안보 우려를 예방하고자 한다면 비핵화와 한·미 동맹을 동시에 지켜내야 한다. 비핵화는 우리의 문제다. 조속한 비핵화를 위해 핵무기와 핵물질을 먼저 빼내는 '초기 적재(front loaded)' 방식과 북한의 의심 시설에 대한 조건 없는 사찰을 담은 로드맵을 만들고 주변국과 공조해야 한다.
다양한 남북 대화가 연이어 개최되지만 남북 관계가 비핵화에 앞서나가는 것을 삼가야 한다. 핵문제 진전 없이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면 우리는 비핵화 국제 공조의 약한 고리가 된다. 혹시 모를 북한의 '핵 있는 평화' 전술의 사냥감이 된다.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에 따른 체제 보장은 결국 한·미 동맹을 얼마만큼 약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연합 군사훈련 중단, 전략 자산 비배치, 핵우산 철폐 등이 결국 그것이다. 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미래 상황에서 어떻게 동맹을 강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포괄적인 비전과 창의적 훈련 방식 그리고 한반도를 넘어서는 전략 협력의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
한때 '한국은 열심히 뛰는데 북한은 목숨 걸고 뛴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외교가에 새로운 말이 회자되고 있다. '북한은 속이고, 중국은 (비핵화) 의지가 없으며, 한국은 무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국익을 재단하는 미·북 정상회담을 지켜본 심정은 한마디로 만시지탄(晩時之嘆·때 늦은 한탄)이다. 정부의 각성과 선전(善戰)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