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결과가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혹평을 넘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김정은과 중국이 승리한 회담"이라고 평했고, 만평을 통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꼬았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 거래를 하듯 협상에 나섰지만, 초라한 결과를 얻었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statesman)라기보다는 영업사원(salesman)처럼 행동했다"며 "공동성명은 정상회담이 호화찬란했던 만큼 초라했다. 비핵화 시간표도,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위한 세부 사항도 없었다"고 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NYT에 "이게 처음부터 북한이 원했던 것"이라며 "몇 달간 협상해서 내놓은 게 이렇게 적다니 놀랍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더 이상 양보는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싱가포르 회담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승리였다"며 "김정은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북한 정권의 범죄 행위에 대한 어떤 변화도 약속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약속은 "정말 빈약하다(meager)"고 했다.
북한 김정은에게 농락당했다는 표현도 나왔다. USA 투데이는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대실패, 준비도 안 됐고 농락당했다(got played)"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김정은과 조건 없이 만났고 인권은 언급조차 안 했다"며 "CVID 하나라도 못 박았으면 가치가 있었겠지만 없었다. 이런 우유부단한 모호함이야말로 큰 실패"라고 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도 협상 결과에 대해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압도했다"고 했다.
이번 회담의 진정한 승자는 중국이란 평가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데 대해 중국은 의심의 여지 없이 기뻐할 것"이라며 "앞으로 이 문제를 다루자고 요구하고, 그러지 않으면 (비핵화) 협상을 훼방 놓을 능력도 있다"고 했다. 타임지도 "장기적으로 진정한 승자는 중국일 것"이라고 했고, 시사잡지 뉴요커도 "김정은이 엄청난 정당성을 얻었고, 북한의 가장 큰 동맹국인 중국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고 했다.
이날 WP는 미·북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만평을 따로 모은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WP는 '북한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제목의 만평에서 "내가 이겼다"는 깃발을 든 트럼프 대통령 머리 위에 김정은이 올라선 모습을 그렸다.
이번 정상회담이 오히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꼴이 됐다는 지적도 많았다. 비핀 나랑 MIT 교수는 NYT 칼럼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교훈은 미국을 위협하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 사일(ICBM)을 만들면 당신도 싱가포르 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핵보유국 지위를 향한 지름길"이라고 했다.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이날 기자들에게 "(정상회담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등장하는 행사 같았다"며 "북한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봤을 때도 북한이 새로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인상을 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