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일본 정치인이 찾아왔다. 변호사 출신의 40대 유력 정치인인 그는 야당인데도, 북핵도 중요하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를 우선하는 아베 총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요코다 메구미 등 납치 피해자의 부모들이 이미 고령이므로 그들이 죽기 전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중생이던 요코다 메구미는 1997년 북한 공작원에게 집 근처에서 납치되었다.
나도 모르게 1978년 여름 서해 해수욕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실종된 한국 고등학생이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었다고 말해버렸다. 북한은 납치된 한국 고교생과 일본 여중생을 부부로 만들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는 "한국은 납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질문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압축된 민주화 과정으로 개인 인권을 잘 챙기지 못했지만 한국의 인권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핵심 존재 이유는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불확실한 생존에서 벗어나 삶의 보장을 얻기 위해 우리는 국가라는 절대 권력을 탄생시켰다. 국가라는 울타리 아래 사람들은 생존을 보호받는다. 국민 보호는 국가의 책무다. 어떤 나라든 국민을 보호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는 총력을 기울인다.
우리 언론에서는 아베 일본 총리가 북핵 협상에 초를 치려고 납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민주국가의 지도자로서 자국민 보호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핵 문제의 시급성에도 우선 억류 미국인 3명의 신병을 확보한 후 북한과 협상에 나섰다.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면 카터, 클린턴 전 대통령도 마다하지 않고 평양을 방문했다. 미·북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미군 유해 송환 노력을 멈춘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비핵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 인권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거침없이 개진된다. 비핵화, 남북 관계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소수 인권은 희생해도 된다는 발상이다.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이 6명 있다. 공식 납북 피해자는 490명이지만, 일본 사례를 본다면 실종자 중 적지 않은 수가 북한에 납치됐을 개연성이 크다. 생사가 확인된 국군 포로 546명과 1000만 이산가족도 있다.
우리는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비전향 장기수 64명 전원을 북한에 송환하는 통 큰 인권 정책을 취했지만, 정작 남북 관계를 위해 자국민의 인권과 그 가족 인권은 외면해 왔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의무를 진다'고 적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더는 나라가 아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보는 우리 시각은 더 문제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에드 로이스 미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은 "북한 인권 운동가들을 침묵시키려 하는 서울의 움직임은 충격적"이라고까지 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 아래 인권 존중을 최고 가치로 하며 출범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는 북한 앞에 서면 꿀 먹은 벙어리다. 북한 정권이 적대적 외부 환경으로 인해 인권유린을 하기 때문에 우선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잘못된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과거 북한 위협 탓에 국민 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 정권의 논리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인권과 민주화 없이는 성립할 수 없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 '인권'이라는 단어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 민주화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권위주의 정권의 반(反)인권적 행동을 견제하고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중요한 기제였다. 국제사회의 지속적 관심과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 지도자들의 생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경험은 독재 정권이 자발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바깥의 관심이 해결 열쇠가 됐음을 말해준다. 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은 북한 당국의 반인권적 행동을 견제하는 한편 내부에서 인권 인식이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외면이 아닌 지속적이고 일관된 관심과 문제 제기다. 북한보다 인권이 먼저인 대한민국이기를 강력히 바란다.
나도 모르게 1978년 여름 서해 해수욕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실종된 한국 고등학생이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었다고 말해버렸다. 북한은 납치된 한국 고교생과 일본 여중생을 부부로 만들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는 "한국은 납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질문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압축된 민주화 과정으로 개인 인권을 잘 챙기지 못했지만 한국의 인권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핵심 존재 이유는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불확실한 생존에서 벗어나 삶의 보장을 얻기 위해 우리는 국가라는 절대 권력을 탄생시켰다. 국가라는 울타리 아래 사람들은 생존을 보호받는다. 국민 보호는 국가의 책무다. 어떤 나라든 국민을 보호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는 총력을 기울인다.
우리 언론에서는 아베 일본 총리가 북핵 협상에 초를 치려고 납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민주국가의 지도자로서 자국민 보호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핵 문제의 시급성에도 우선 억류 미국인 3명의 신병을 확보한 후 북한과 협상에 나섰다.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면 카터, 클린턴 전 대통령도 마다하지 않고 평양을 방문했다. 미·북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미군 유해 송환 노력을 멈춘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비핵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 인권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거침없이 개진된다. 비핵화, 남북 관계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소수 인권은 희생해도 된다는 발상이다.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이 6명 있다. 공식 납북 피해자는 490명이지만, 일본 사례를 본다면 실종자 중 적지 않은 수가 북한에 납치됐을 개연성이 크다. 생사가 확인된 국군 포로 546명과 1000만 이산가족도 있다.
우리는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비전향 장기수 64명 전원을 북한에 송환하는 통 큰 인권 정책을 취했지만, 정작 남북 관계를 위해 자국민의 인권과 그 가족 인권은 외면해 왔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의무를 진다'고 적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더는 나라가 아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보는 우리 시각은 더 문제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에드 로이스 미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은 "북한 인권 운동가들을 침묵시키려 하는 서울의 움직임은 충격적"이라고까지 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 아래 인권 존중을 최고 가치로 하며 출범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는 북한 앞에 서면 꿀 먹은 벙어리다. 북한 정권이 적대적 외부 환경으로 인해 인권유린을 하기 때문에 우선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잘못된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과거 북한 위협 탓에 국민 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 정권의 논리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인권과 민주화 없이는 성립할 수 없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 '인권'이라는 단어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 민주화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권위주의 정권의 반(反)인권적 행동을 견제하고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중요한 기제였다. 국제사회의 지속적 관심과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 지도자들의 생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경험은 독재 정권이 자발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바깥의 관심이 해결 열쇠가 됐음을 말해준다. 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은 북한 당국의 반인권적 행동을 견제하는 한편 내부에서 인권 인식이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외면이 아닌 지속적이고 일관된 관심과 문제 제기다. 북한보다 인권이 먼저인 대한민국이기를 강력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