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경 인권 항의하러 가는 부모들
2006.05.16 10:48
[사설: “인권위원회에 전·의경(戰·義警) 인권 항의하러 가는 부모들,” 조선일보, 2006. 1. 5, A31쪽.]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국립경찰병원 5층 전·의경 병동의 527·531·551호에는 작년 11월 15일 여의도 농민 시위 때 다친 전·의경 12명이 아직도 입원해 있다. 두 전경은 턱이 깨졌고, 다섯 전경은 손가락과 팔이 부러졌고, 네 전경은 무릎과 발목이 골절됐고, 한 전경은 어깨 근육이 뒤틀린 것이다.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던 김한영 상경은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져 지난 3일 뇌수술을 받았다. 여의도 농민 시위 때 부상해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전·의경은 모두 220명, 그 중 52명이 장(長)·단기(短期) 입원치료를 받았다.
시위 때마다 이렇게 부상을 당하는 전·의경들의 부모들이 오는 7일 서울의 경찰청 앞에서 폭력시위 추방을 위한 집회를 열고 인권위원회까지 행진을 하기로 했다. 인생이 구만리(九萬里) 같은 나이에 팔 부러지고 다리 으스러지고 턱뼈가 산산조각이 난 전·의경들의 부모가 인권위원회의 ‘인권’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항의하러 나선 것이다.
경찰병원 551호에 입원 중인 1기동대 소속 장우진 일경은 맨 앞줄에 섰다가 시위대에 끌려들어가 고립된 채 수십명에게 두들겨 맞았다. 쇠파이프에 팔을 맞고는 방패까지 놓친 상태였다. 경찰병원에 입원해 보니 왼쪽 팔을 빼고는 온 몸이 망가졌고 오른쪽 다리는 뼈가 부러졌다. 최동훈 이경의 경우는 날아온 돌멩이에 오른쪽 턱뼈가 으스러졌다.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 죽만 먹는 바람에 체중은 10㎏이나 줄었다. 방석모(防石帽)도 쇠파이프 앞에선 스무 살 젊은이를 보호하지 못한다. 이재성 상경은 방석모의 아크릴 보호대가 쇠파이프에 깨지면서 아크릴 조각이 눈을 찔러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각막 이식수술까지 받았다.
여의도 농민 시위가 있었던 작년 11월 15일 밤의 경찰병원 응급실은 야전병원이나 다름없었다. 응급실 시설이 밀려드는 전·의경 부상자들을 감당하지 못해 간호사들은 부상자들 가슴에 번호표를 붙여놓고는 등받이도 없는 기다란 의자에 누이고 응급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의경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대나무 중간을 가로로 분질러 끝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대나무창이다. 경기경찰청 소속 김두현 상경은 지난 7월 10일 경기도 평택에서 벌어진 ‘미군기지 확장반대 시위’ 때 이 대나무창이 얼굴의 방석 철망을 뚫고 들어오면서 눈을 찔러 두 차례 수술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게 됐다. 스무 살에 한쪽 눈을 잃은 이 전경과 그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전체 4만 7000명의 전·의경 중에서 작년 한 해 동안 747명이 시위현장에서 이렇게 다쳤고 그중 540명이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여의도 시위 때 돌멩이에 턱뼈가 으스러진 최동훈 이경의 아버지 최성규씨는 “국가에 충성할 생각 말고 제발 뒤로 빠져서 몸이나 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의도 폭력시위가 남긴 결과는 쇠파이프에 팔다리가 망가진 젊은이들과 그런 젊은이를 지휘했다고 쫓겨난 경찰청장뿐이다.
전·의경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우리 아들이고 우리 이웃의 아들이다. 이 아들들이 무슨 이유로 소한(小寒)·대한(大寒) 찬바람 속에서 거리에 쭈그려 앉아 식은 도시락밥을 먹어야 하고 온몸을 시위대의 쇠파이프 앞에 내놓아야 하는가. 눈이 멀고 팔다리가 병신 되면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이니 그 책임은 일반 국민과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옳은 말씀을 하신 대통령이 보상해줄 것인가. 폭력시위 주동자로 몇 년 징역을 살고 나온 사람들은 그게 훈장이 돼 국회의원·장관이 되는 게 이 나라 실정이다.
과연 이 정부의 대통령 아들, 장·차관 아들, 인권위원장의 아들들이 폭력시위대의 쇠파이프에 맞아 팔다리 뼈가 으스러져도 높은 분들은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이니’ 하는 공자(孔子)님 같은 말씀을 읊조릴 수 있을까.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국립경찰병원 5층 전·의경 병동의 527·531·551호에는 작년 11월 15일 여의도 농민 시위 때 다친 전·의경 12명이 아직도 입원해 있다. 두 전경은 턱이 깨졌고, 다섯 전경은 손가락과 팔이 부러졌고, 네 전경은 무릎과 발목이 골절됐고, 한 전경은 어깨 근육이 뒤틀린 것이다.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던 김한영 상경은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져 지난 3일 뇌수술을 받았다. 여의도 농민 시위 때 부상해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전·의경은 모두 220명, 그 중 52명이 장(長)·단기(短期) 입원치료를 받았다.
시위 때마다 이렇게 부상을 당하는 전·의경들의 부모들이 오는 7일 서울의 경찰청 앞에서 폭력시위 추방을 위한 집회를 열고 인권위원회까지 행진을 하기로 했다. 인생이 구만리(九萬里) 같은 나이에 팔 부러지고 다리 으스러지고 턱뼈가 산산조각이 난 전·의경들의 부모가 인권위원회의 ‘인권’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항의하러 나선 것이다.
경찰병원 551호에 입원 중인 1기동대 소속 장우진 일경은 맨 앞줄에 섰다가 시위대에 끌려들어가 고립된 채 수십명에게 두들겨 맞았다. 쇠파이프에 팔을 맞고는 방패까지 놓친 상태였다. 경찰병원에 입원해 보니 왼쪽 팔을 빼고는 온 몸이 망가졌고 오른쪽 다리는 뼈가 부러졌다. 최동훈 이경의 경우는 날아온 돌멩이에 오른쪽 턱뼈가 으스러졌다.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 죽만 먹는 바람에 체중은 10㎏이나 줄었다. 방석모(防石帽)도 쇠파이프 앞에선 스무 살 젊은이를 보호하지 못한다. 이재성 상경은 방석모의 아크릴 보호대가 쇠파이프에 깨지면서 아크릴 조각이 눈을 찔러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각막 이식수술까지 받았다.
여의도 농민 시위가 있었던 작년 11월 15일 밤의 경찰병원 응급실은 야전병원이나 다름없었다. 응급실 시설이 밀려드는 전·의경 부상자들을 감당하지 못해 간호사들은 부상자들 가슴에 번호표를 붙여놓고는 등받이도 없는 기다란 의자에 누이고 응급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의경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대나무 중간을 가로로 분질러 끝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대나무창이다. 경기경찰청 소속 김두현 상경은 지난 7월 10일 경기도 평택에서 벌어진 ‘미군기지 확장반대 시위’ 때 이 대나무창이 얼굴의 방석 철망을 뚫고 들어오면서 눈을 찔러 두 차례 수술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게 됐다. 스무 살에 한쪽 눈을 잃은 이 전경과 그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전체 4만 7000명의 전·의경 중에서 작년 한 해 동안 747명이 시위현장에서 이렇게 다쳤고 그중 540명이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여의도 시위 때 돌멩이에 턱뼈가 으스러진 최동훈 이경의 아버지 최성규씨는 “국가에 충성할 생각 말고 제발 뒤로 빠져서 몸이나 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의도 폭력시위가 남긴 결과는 쇠파이프에 팔다리가 망가진 젊은이들과 그런 젊은이를 지휘했다고 쫓겨난 경찰청장뿐이다.
전·의경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우리 아들이고 우리 이웃의 아들이다. 이 아들들이 무슨 이유로 소한(小寒)·대한(大寒) 찬바람 속에서 거리에 쭈그려 앉아 식은 도시락밥을 먹어야 하고 온몸을 시위대의 쇠파이프 앞에 내놓아야 하는가. 눈이 멀고 팔다리가 병신 되면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이니 그 책임은 일반 국민과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옳은 말씀을 하신 대통령이 보상해줄 것인가. 폭력시위 주동자로 몇 년 징역을 살고 나온 사람들은 그게 훈장이 돼 국회의원·장관이 되는 게 이 나라 실정이다.
과연 이 정부의 대통령 아들, 장·차관 아들, 인권위원장의 아들들이 폭력시위대의 쇠파이프에 맞아 팔다리 뼈가 으스러져도 높은 분들은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이니’ 하는 공자(孔子)님 같은 말씀을 읊조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