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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6.25사변 때 13만 주민 학살

2006.05.16 11:04

관리자 조회 수:1252 추천:150

[김성욱, “빨치산, 6.25사변 기 13만 주민 학살,” 미래한국, 2006. 5. 6. 6쪽; 미래한국신문 기자.]

6.25사변 당시 빨치산들은 인민군 치하에서 ‘바닥빨갱이’로 불리며 양민학살을 주도했고, 북한 인민군 퇴각 이후에는 지리산을 거점으로 우익인사 살해 등을 벌여왔다.

빨치산들이 6.25사변 당시 인민재판을 통해 학살한 양민의 수는 13만. 남경대학살, 바르사바 게토(Warsaw Getto)의 유태인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던 바닥빨갱이들은 대개 총이 없었으므로 죽창이나 도끼, 쇠스랑, 괭이 곤봉 등으로 무장했고 곡괭이와 삽으로 우익인사들을 찔러 죽이는 원시적 학살행위를 자행했다.

전쟁사학자들은 6.25사변 당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13만 양민학살’이 세계적 학살로 기록되는 이유는 피해자 수는 물론 그 잔혹성(殘酷性)에 있다고 지적한다.

경남 남해군에서는 경찰관들을 살해해 배를 갈라 간을 꺼내 씹거나 절명한 경찰관의 배에 1척이나 되는 소나무 말뚝을 박기도 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는 반공인사 600여명이 철사줄로 묶어져 휘발유를 끼얹어 지고 웅덩이에 생매장됐다.

전주형무소에서는 감옥에 있던 우익인사들이 살해된 후 도랑에 던져졌고 도랑이 시체로 가득 차자 우물에 던져졌고 우물이 차자 뒤뜰에 버려졌다. 대전형무소에서는 수감돼 있던 1,742명의 우익인사와 가족들이 모두 학살됐다.

바닥빨갱이들에 의한 가장 큰 피해자집단 중 하나는 종교인들이었다.

지금까지 정리된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6.25사변 당시 인민군과 바닥빨갱이들에 의해 학살당한 목사·신부·장로·수녀들은 신원이 밝혀진 사람만 174명에 달한다. 또한 인민군이 퇴각하며 납북된 종교인들도 184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기독교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전남 영암읍 교회사건 등 3개월 이하의 인공치하 동안 조직적으로 전개됐다.

전남 영압읍 교회에서는 신도 24명이 집단 학살됐고, 옥구에서도 20여명의 신도가 학살됐다. 전남 서쪽 바다에 있는 임자도에서는 150여명이 구덩이를 파고 양민과 교인이 학살됐고, 충남 논산 병촌교회에서는 한 살짜리 어린아이부터 육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60여명의 교인들이 학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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