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우, "고향에는 가지 말라더니," 조선일보, 2020. 9. 21, A34쪽.]
서울에 사는 직장인 황모(40)씨는 이번 추석 연휴 때 광주광역시 부모님 집을 찾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정부 당부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우한과 인천을 오가는 항공편을 정부가 재개했다는 소식에 황씨는 “민족 최대 명절에 고향 방문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코로나 진원지 항공편을 허가한 정부의 방역 원칙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가 100명 안팎의 코로나 감염 확산세가 이어지자 추석 연휴 이동 자제를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전남 보성군은 거리 곳곳에 ‘아들, 딸, 며느리야!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안 와도 된당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벌초 대행업체 이용을 권장하는 지자체들도 나오고 있다. 민족 대이동에 따른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14일 티웨이항공의 인천~우한 노선 운항 재개를 허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발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전문가들 주장에도 문을 열어뒀다가 “모기장을 열어두고 모기를 잡으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우리 정부다. 17일날 첫 비행기가 들어왔다.
다른 때도 아니고 전 세계 확진자가 3000만명을 넘어섰고, 국내선 4명 중 1명꼴로 감염 경로가 확인 안 된 이른바 ‘깜깜이 환자’가 나오고 있는 시기다. 질병관리청이 “세계 3차 대전 상황”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16일 “중국 코로나 발생 동향이 안정적이고, 또 중국을 통한 (환자) 유입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조치였고, 질병관리청도 이견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틀 뒤 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중국과의 활발한 대외 무역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했다”고 했다. 과학적 판단으로 항공편을 재개했다고 하더니 경제도 고려했다는 것인데 “어느 나라 방역과 경제를 걱정하는 정부냐”는 말이 나온다. 배달, 포장을 제외한 수도권 식당 밤 9시 이후 영업을 제한한 보름간의 수도권 2.5단계를 묵묵히 지키며 피로감을 느낀 국민들이다.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한철 장사를 망친 수도권의 2.5단계 거리 두기가 28일 재개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지금 생각하면 그때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지 않은 것을) 참 잘했다고 자평한다”고 하더니 같은 날 페이스북에 ‘이번 추석엔 총리를 파세요’라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부모가 자녀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 총리가 그러더구나. 추석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건 위험하다고. 용돈을 두 배로 부쳐다오”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황씨는 “정부가 ‘방역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요즘은 덕담이 아니라 책임 떠넘기기 같다”며 “문제가 터지면 ‘국민 때문에’라고 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