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시무 7조," 조선일보, 2020. 8. 28, A30쪽.]


1583년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10만 군병을 양성해야 한다고 충언했다. 율곡은 함경도를 침공한 여진족을 물리친 뒤 "앞으로 10년 내에 나라가 무너지는 큰 화가 있을 것이니 10만 병졸을 미리 양성해 한양 도성에 2만명, 각 도에 1만명씩 두고 변란이 일어나면 그 모두를 합쳐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이 '십만양병설'을 담은 상소가 '시무 6조'다. 율곡은 상소를 올린 이듬해 숨졌고 선조는 이 진언을 간과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터져 온 나라가 피바다가 됐다.


▶시무(時務)란 당대에 중요하게 다뤄야 할 시급한 일을 뜻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뜻의 '사의(事宜)'와 비슷한 말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조'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내용은 남아있지 않다. 그의 증손인 최승로가 고려 초 불교계를 비판하는 '시무 28조'를 왕에게 올린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이처럼 시무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소(疏)의 일종이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진인(塵人) 조은산'이란 사람이 올린 '시무 7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임금에게 아뢰어 청한다'는 뜻의 주청(奏請)이라는 말을 제목에 썼다. 문체는 왕조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극진한 경어투이지만 내용은 이 정권의 무능과 부패, 내로남불, 혹세무민을 일곱 가지로 나눠 낱낱이 질타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를 게시판에서 숨겼다가 비판이 일자 공개로 전환했다.


▶200자 원고지 64장 분량의 이 글은 문학적이면서도 논리적이다. "경상의 멸치와 전라의 다시마로 육수를 낸 국물은 아이의 눈처럼 맑았고 할미의 주름처럼 깊었다"는 감성적 묘사, "간신이 쥐 떼처럼 창궐하여 역병과도 같다"는 시의적절한 수사가 어우러진 명문이다. 김현미 장관을 겨냥해 "현/ 시세 11프로가 올랐다는 미/ 친소리", 이해찬 대표에 대해 "해/ 괴한 말로 찬/ 물을 끼얹고", 추미애 장관을 향해 "미/ 천한 백성들의 애/ 간장"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조선의 왕들은 수시로 '구언(求言)'을 했다. 세상이 흉흉할 때 임금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숨기거나[隱] 꺼리지[忌] 말고 다 말하라고 했다. 일종의 소원 수리였다. 민생이 도탄에 빠졌는데도 왕이 구언을 하지 않으면 신하들은 시무를 올렸다. 구언은커녕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뿌리는 심정으로" 썼다는 '시무 7조'를 이 정권 실세들이 거들떠보기나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