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2017.09.13 07:45
오래된 미래
[김대중, "오래된 미래," 조선일보, 2017. 9. 12, A38쪽.]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비로소 북핵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냉엄한 현실 앞에 마주 앉았다. 사드 배치에 살라미 전술을 써 단계마다 시간을 끌었던 그는 그동안 주변 4강국(미·일·중·러) 수장(首長)을 만나 설명하고 호소하고 버텨보려고 했지만 결론은 자신이 토로한 대로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를 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자신의 '선의'를 믿어주기는커녕 노력의 고비마다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해 대놓고 면박을 주어온 북한이 실망을 넘어 원망스럽고, 원유 공급 중단 등 강공책을 거절한 중국과 러시아에 분노가 치밀었다는 말일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은 알았을 것이다. 누가 우리 편(便)에 서 있고 누가 그 반대편에 있는가를 알았을 것이다. 한·미·일 대(對) 북·중·러 6자 회담 구도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특히 원인 제공자인 북한의 핵실험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한국의 마지못한 사드 배치를 두고 "한국이 김치 먹고 멍청해졌느냐?"며 '삼전도(三田渡)의 치욕'을 연상시키는 중국의 오만은 극에 달했다. 국제사회를 살아가는 데 편 가르기가 위험할 수 있다. 또 오늘의 우리 편이 언제까지 우리 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편이 아닌 쪽 눈치를 보느라 우리 편을 잃는 일은 더 위험하다. 그것이 국제사회에서의 선택과 집중이다. 문 정부는 이제 그간의 페인트 모션에서 벗어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집중할 때다.
문 대통령은 '대화론자'로서 할 일도 충분히 했다. 애당초 대화의 설정 자체가 너무 나이브하고 감성적인 접근이었지만 그래도 그로서는 두드려 볼 것은 다 두드려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곧 유엔에 간다. 거기서 또 한 차례 자신의 '대화론'을 꺼내겠지만 그 실효성은 물 건너갔다. 이제는 전략을 바꿔 북한의 호전성과 한반도 전쟁 위험에 초점을 맞춘 현실론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반대편의 기(氣)를 꺾는 길이며 전쟁을 막는 길이다.
문 대통령은 좌파 정부 대통령으로서 모습을 보일 만큼 보였다. 북한과 더불어 같이 사는 길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을 걷어찬 것은 북한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그는 일차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전쟁의 참화를 입지 않도록 할 책임자이지 핵과 미사일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북한을 돕기 위해 선출된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지지'에 함몰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가서는 안 된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참으로 위중한 시기이다. 정권을 담당한 세력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후세에 이 땅의 역사학자는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당시 대통령 문재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리는 국난의 시기였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의 조선 병탄을 뒤돌아보며 그때 조정(朝廷)의 무능과 무기력을 개탄해왔다. 오늘날 일부 학자와 평가자들은 지금의 사태를 과거 우리의 어두운 역사와 비교하며 '오래된 미래'라고 표현하고 있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에서 역사학자 한명기는 "병자호란은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고 '현재'일 수 있으며, 결코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반추해야 한다"고 썼다. 사회학자 송호근은 일본과 강화도수호조규를 체결한 신헌(申櫶)의 심행일기를 기초로 쓴 '강화도'에서 명·청(明·淸) 교체기에 존화론(尊華論)과 주화론(主和論)이 맞부딪쳐 존화론에 집착한 조선이 엄청난 전화를 입은 것이 병자호란이며, 240년 후 강화도수호조규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고 보았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내부 분열이고 싸움이었다. 그는 책 서문에서 "2017년, 갈피를 못 잡는 정치권과 내부 싸움에 여념이 없는 한국 사회와 어딘가 닮지 않았는가?"라면서 '강화도'의 이야기 역시 '오래된 미래'라고 썼다.
오늘날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에서 우리가 나라와 국민을 온전하게 보존하려면 내부의 분열과 싸움을 극복해야 한다. 과거 정권에 대한 복수는 물론 건국연도 논쟁 등 역사 인식의 대립, 좌우 이념적 갈등 등은 과거 사색당파 등 사대부 유림의 대립, 존화론과 주화론의 갈등 그리고 근대사에서 개화와 척화의 싸움 연장 선상에 있는 것 같다.
마침내 67년 이어온 동맹 구조의 균열, 남북한 공멸의 전쟁 위기, 그리고 우리 내부의 좌우 대립 구도가 부각되면서 한반도의 정세는 '오래된 미래'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좌파·진보를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어느 날 보수·우파적 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옵션을 되도록 빨리 시도해 본 뒤 어떤 것이 좌파적이냐보다 어느 것이 대한민국적이냐는 것을 판단의 준거로 삼는 길로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오래된 미래'를 답습하지 않는 길이다.
이제 문 대통령은 알았을 것이다. 누가 우리 편(便)에 서 있고 누가 그 반대편에 있는가를 알았을 것이다. 한·미·일 대(對) 북·중·러 6자 회담 구도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특히 원인 제공자인 북한의 핵실험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한국의 마지못한 사드 배치를 두고 "한국이 김치 먹고 멍청해졌느냐?"며 '삼전도(三田渡)의 치욕'을 연상시키는 중국의 오만은 극에 달했다. 국제사회를 살아가는 데 편 가르기가 위험할 수 있다. 또 오늘의 우리 편이 언제까지 우리 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편이 아닌 쪽 눈치를 보느라 우리 편을 잃는 일은 더 위험하다. 그것이 국제사회에서의 선택과 집중이다. 문 정부는 이제 그간의 페인트 모션에서 벗어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집중할 때다.
문 대통령은 '대화론자'로서 할 일도 충분히 했다. 애당초 대화의 설정 자체가 너무 나이브하고 감성적인 접근이었지만 그래도 그로서는 두드려 볼 것은 다 두드려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곧 유엔에 간다. 거기서 또 한 차례 자신의 '대화론'을 꺼내겠지만 그 실효성은 물 건너갔다. 이제는 전략을 바꿔 북한의 호전성과 한반도 전쟁 위험에 초점을 맞춘 현실론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반대편의 기(氣)를 꺾는 길이며 전쟁을 막는 길이다.
문 대통령은 좌파 정부 대통령으로서 모습을 보일 만큼 보였다. 북한과 더불어 같이 사는 길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을 걷어찬 것은 북한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그는 일차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전쟁의 참화를 입지 않도록 할 책임자이지 핵과 미사일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북한을 돕기 위해 선출된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지지'에 함몰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가서는 안 된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참으로 위중한 시기이다. 정권을 담당한 세력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후세에 이 땅의 역사학자는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당시 대통령 문재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리는 국난의 시기였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의 조선 병탄을 뒤돌아보며 그때 조정(朝廷)의 무능과 무기력을 개탄해왔다. 오늘날 일부 학자와 평가자들은 지금의 사태를 과거 우리의 어두운 역사와 비교하며 '오래된 미래'라고 표현하고 있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에서 역사학자 한명기는 "병자호란은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고 '현재'일 수 있으며, 결코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반추해야 한다"고 썼다. 사회학자 송호근은 일본과 강화도수호조규를 체결한 신헌(申櫶)의 심행일기를 기초로 쓴 '강화도'에서 명·청(明·淸) 교체기에 존화론(尊華論)과 주화론(主和論)이 맞부딪쳐 존화론에 집착한 조선이 엄청난 전화를 입은 것이 병자호란이며, 240년 후 강화도수호조규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고 보았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내부 분열이고 싸움이었다. 그는 책 서문에서 "2017년, 갈피를 못 잡는 정치권과 내부 싸움에 여념이 없는 한국 사회와 어딘가 닮지 않았는가?"라면서 '강화도'의 이야기 역시 '오래된 미래'라고 썼다.
오늘날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에서 우리가 나라와 국민을 온전하게 보존하려면 내부의 분열과 싸움을 극복해야 한다. 과거 정권에 대한 복수는 물론 건국연도 논쟁 등 역사 인식의 대립, 좌우 이념적 갈등 등은 과거 사색당파 등 사대부 유림의 대립, 존화론과 주화론의 갈등 그리고 근대사에서 개화와 척화의 싸움 연장 선상에 있는 것 같다.
마침내 67년 이어온 동맹 구조의 균열, 남북한 공멸의 전쟁 위기, 그리고 우리 내부의 좌우 대립 구도가 부각되면서 한반도의 정세는 '오래된 미래'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좌파·진보를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어느 날 보수·우파적 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옵션을 되도록 빨리 시도해 본 뒤 어떤 것이 좌파적이냐보다 어느 것이 대한민국적이냐는 것을 판단의 준거로 삼는 길로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오래된 미래'를 답습하지 않는 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1/20170911027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