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저지,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2013.03.21 13:44
[김대중, “北核 저지,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조선일보, 2013. 3. 5, A38.]
북핵(北核)은 이제 천하무적(天下無敵)이다.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 이후 북핵은 세계의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막가파'적(的) 존재로 변모했다. 핵무기의 위력이 커서가 아니라 핵으로 가는 길을 막을 도리가 없어서다.
미국과 오바마는 속수무책이다.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돈줄을 막아도 봤다. 북핵은 그래도 '고(go)'였다. 중국이 말리면 말을 듣지 싶었다. 그런데 중국은 체면상 말리는 척했을 뿐 큰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설혹 중국이 화를 낸대도 북한은 말을 들을 자세가 아니다. 그동안 비켜 서 있는 듯했던 러시아까지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말자"며 참견하고 나섰다. 미국은 대북(對北) 제재보다 자기들이 판매(?)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의 시장성(市場性)에 더 마음이 있는 듯하다. 북핵의 직접적 목표가 미국이 아니라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사정이기에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에 뭉그적거릴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월 26일자에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전 세계의 분노와 질책은 유엔의 적절한 보복책을 불러오는 듯했으나 '슬로 모션 외교'와 미․중․러 등의 불협화음으로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제재가 이뤄지면 미국은 '비참한 파괴'에 직면할 것이라는 북한의 협박이 주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이 단골로 거론하고 있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러시아가 새로 꺼낸 '협상이 유일한 선택' 등은 국제사회가 북핵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말자는 암묵적 의사 표시다. 그나마 안보리 의장국이 3월 들어 한국에서 러시아로 넘어간 마당에 안보리의 어떤 '조치'는 물 건너간 셈이다.
그러면 북핵의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타깃인 한국은 무슨 독자적 대책이라도 있는가? 한마디로 한국도 속수무책이다. 그저 믿느니 미국이고, 혹시나 기대하는 곳이 중국인데 그들이 속수무책이니 한국은 주저앉아서 한숨만 쉴 뿐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여전히 '태도를 바꾸면 도와주겠다'는 식의 대북 수사(修辭․레토릭)를 연발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수없이 해본 '흘러간 옛 노래' 이상의 효과는 없다.
우리 쪽이 속수무책인 만큼 북한은 기고만장이다. 근자에 북한 당국은 한국의 종북(從北) 세력에게 북한의 핵을 기정사실로 용인한 상황에서 남북 대화를 종용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좌파 진영에서는 북핵과 남북 대화를 별개로 다뤄야 한다면서 북핵은 6자회담 등에서 논의하고 대화는 남북 간에 병행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꿩은 이미 먹었으니 이제는 알을 먹자는 심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이 올바른 선택으로 변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우리는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것"이라며 "북한이 '신뢰의 길'로 나오기 바란다"고 대화 여지를 남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흐지부지되는 쪽으로 가고 있고, 대화는 북핵을 인정하는 전제하에 하자는 것이고 보면, 한국은 결국 외통수에 빠져있는 상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과, 때마침 통합진보당이 깃발을 올리며 박 정부를 야멸차게 매도하고 야당의 강경파가 정부 조직 개편으로 박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우연의 소치만은 아니라는 관점에서 보면 박 정부를 향한 북한의 대남 공세는 점차 강도를 더해갈 것으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극단적인 경우,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핵 도발 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이번 핵실험은 그 내용 면에서 북핵이 소형화, 경량화, 다발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소형 핵무기를 국지적으로 사용했을 때 중국과 충돌, 핵전쟁의 전면화 등을 우려한 미국으로서는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들은 미국과 중국의 손발을 묶은 상태에서 핵무기를 대남 협박용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핵을 막지 못하고 미국이 핵 보복을 못 할 것이면 우리는 '북핵의 들판'에 나앉는 꼴이 된다.
그런 경우 우리의 선택은 정말 비참해진다. 북핵과 더불어 사는 것이 첫째 옵션이다, 말이 '더불어'이지 굴복해 사는 것이다. 저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달라는 대로 주며 사는 것이다. 다른 옵션은 북과 대결하는 길로 나서는 것이다. 그것이 자체적인 핵 개발일지, 김정은 정권의 붕괴 즉 '레짐 체인지'를 겨냥한 공작일지는 국민적 합의와 지도자의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누군가는 북의 핵무기를 없애는 것보다 북한 정권을 바꾸는 것이 수월하다고 했다.
우리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더 이상의 말장난과 허망한 기대로 북쪽에 시간을 보태며 허송세월할 수 없다.
북핵(北核)은 이제 천하무적(天下無敵)이다.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 이후 북핵은 세계의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막가파'적(的) 존재로 변모했다. 핵무기의 위력이 커서가 아니라 핵으로 가는 길을 막을 도리가 없어서다.
미국과 오바마는 속수무책이다.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돈줄을 막아도 봤다. 북핵은 그래도 '고(go)'였다. 중국이 말리면 말을 듣지 싶었다. 그런데 중국은 체면상 말리는 척했을 뿐 큰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설혹 중국이 화를 낸대도 북한은 말을 들을 자세가 아니다. 그동안 비켜 서 있는 듯했던 러시아까지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말자"며 참견하고 나섰다. 미국은 대북(對北) 제재보다 자기들이 판매(?)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의 시장성(市場性)에 더 마음이 있는 듯하다. 북핵의 직접적 목표가 미국이 아니라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사정이기에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에 뭉그적거릴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월 26일자에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전 세계의 분노와 질책은 유엔의 적절한 보복책을 불러오는 듯했으나 '슬로 모션 외교'와 미․중․러 등의 불협화음으로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제재가 이뤄지면 미국은 '비참한 파괴'에 직면할 것이라는 북한의 협박이 주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이 단골로 거론하고 있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러시아가 새로 꺼낸 '협상이 유일한 선택' 등은 국제사회가 북핵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말자는 암묵적 의사 표시다. 그나마 안보리 의장국이 3월 들어 한국에서 러시아로 넘어간 마당에 안보리의 어떤 '조치'는 물 건너간 셈이다.
그러면 북핵의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타깃인 한국은 무슨 독자적 대책이라도 있는가? 한마디로 한국도 속수무책이다. 그저 믿느니 미국이고, 혹시나 기대하는 곳이 중국인데 그들이 속수무책이니 한국은 주저앉아서 한숨만 쉴 뿐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여전히 '태도를 바꾸면 도와주겠다'는 식의 대북 수사(修辭․레토릭)를 연발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수없이 해본 '흘러간 옛 노래' 이상의 효과는 없다.
우리 쪽이 속수무책인 만큼 북한은 기고만장이다. 근자에 북한 당국은 한국의 종북(從北) 세력에게 북한의 핵을 기정사실로 용인한 상황에서 남북 대화를 종용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좌파 진영에서는 북핵과 남북 대화를 별개로 다뤄야 한다면서 북핵은 6자회담 등에서 논의하고 대화는 남북 간에 병행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꿩은 이미 먹었으니 이제는 알을 먹자는 심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이 올바른 선택으로 변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우리는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것"이라며 "북한이 '신뢰의 길'로 나오기 바란다"고 대화 여지를 남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흐지부지되는 쪽으로 가고 있고, 대화는 북핵을 인정하는 전제하에 하자는 것이고 보면, 한국은 결국 외통수에 빠져있는 상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과, 때마침 통합진보당이 깃발을 올리며 박 정부를 야멸차게 매도하고 야당의 강경파가 정부 조직 개편으로 박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우연의 소치만은 아니라는 관점에서 보면 박 정부를 향한 북한의 대남 공세는 점차 강도를 더해갈 것으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극단적인 경우,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핵 도발 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이번 핵실험은 그 내용 면에서 북핵이 소형화, 경량화, 다발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소형 핵무기를 국지적으로 사용했을 때 중국과 충돌, 핵전쟁의 전면화 등을 우려한 미국으로서는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들은 미국과 중국의 손발을 묶은 상태에서 핵무기를 대남 협박용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핵을 막지 못하고 미국이 핵 보복을 못 할 것이면 우리는 '북핵의 들판'에 나앉는 꼴이 된다.
그런 경우 우리의 선택은 정말 비참해진다. 북핵과 더불어 사는 것이 첫째 옵션이다, 말이 '더불어'이지 굴복해 사는 것이다. 저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달라는 대로 주며 사는 것이다. 다른 옵션은 북과 대결하는 길로 나서는 것이다. 그것이 자체적인 핵 개발일지, 김정은 정권의 붕괴 즉 '레짐 체인지'를 겨냥한 공작일지는 국민적 합의와 지도자의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누군가는 북의 핵무기를 없애는 것보다 북한 정권을 바꾸는 것이 수월하다고 했다.
우리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더 이상의 말장난과 허망한 기대로 북쪽에 시간을 보태며 허송세월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