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을 다녀갔다. 코로나 감염증으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울 때 방한을 강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일단 방한 중 북한 접촉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비건 방한 사흘 전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며 찬물을 끼얹었다.
비건 부장관은 동맹국 한국을 만나러 왔을 뿐 "북한에 만나자고 한 적도 없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두 사람을 실명 비판했다. 그중 한 명이 최선희 부상, 또 한 명이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다. 비건은 "나는 최선희 부상이나 볼턴 대사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옛 사고방식에 갇혀 있고, 부정적이고 불가능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이 발언에선 사람 좋기로 유명한 비건 부장관답지 않게 뭔가 분한 마음이 느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오래전 모욕을 주며 해임한 볼턴을 비건은 왜 굳이 언급했을까.
볼턴이 최근 출간한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비건은 볼턴의 책에 30번도 넘게 등장한다. 비건을 바라보는 볼턴의 시선은 의심과 불신에 차 있다. 그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보다 비건을 더 경계했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비건의 장악력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볼턴은 북한과 벌이는 협상에서 '행동 대(對) 행동' 접근 방식을 말한 비건의 스탠퍼드대 연설을 비판했다. 뉴욕타임스에 트럼프 정부가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을 검토 중이란 기사가 나오자, 볼턴은 그 뒤에 비건이 있다고 믿었다. 볼턴은 비건이 마련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발표문 초안을 북한이 쓴 것 같았다고 했고, 트럼프 마음에도 들지 않았다고 썼다. 트럼프가 이 초안을 비판한 다음 날 아침 비건을 보고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까지 굳이 괄호 안에 기록해 놓았다.
볼턴은 근본적인 북한 비핵화가 아닌 모든 시도는 미국 정부가 지난 30년 동안 해온 대북 정책 실패를 한 번 더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그래서 북한과 협상을 통해 어떻게든 합의를 도출하려 했던 비건과 국무부의 노력을 의심의 눈초리로 봤다. 볼턴은 그런 국무부의 노력을 피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트럼프의 머릿속에 깊이 새긴 것을 중요한 성과로 생각했다.
비건의 방한은 볼턴 회고록의 일방적 주장에 맞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담당자인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한 미 대사관이 낸 비건 발언 보도 자료엔 '북한 비핵화'란 단어가 없었다. '한반도의 핵무기 제거'란 애매한 표현과 평화, 관계 개선에 대한 언급이 있을 뿐이다. 대북정책 특별대표로서 비건의 역할도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제네바 합의, 부시 대통령의 6자회담에 이어, 진전인 듯 보이는 합의가 결국 헛된 약속이었음이 드러나고 그 사이 북한의 핵 능력만 신장되는 도돌이표가 다시 작동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비건 부장관 방한 기간에 김정은과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슬쩍 비쳤다. 하지만 '쇼'에 불과한 정상회담이나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선택을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미 대선에서 북한 정책이 판세를 흔들 '10월의 깜짝쇼'급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 다. 북한은 현재로선 트럼프 재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지금 미국과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11월 미 대선이 끝나고 다음 행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국제사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할 주체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는 다시 국제사회의 미아(迷兒)가 되었다. 북한은 핵 능력을 키울 시간을 또 벌고 한국이 직면할 안보 위기는 그만큼 깊어진다는 뜻이다.
비건 부장관은 동맹국 한국을 만나러 왔을 뿐 "북한에 만나자고 한 적도 없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두 사람을 실명 비판했다. 그중 한 명이 최선희 부상, 또 한 명이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다. 비건은 "나는 최선희 부상이나 볼턴 대사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옛 사고방식에 갇혀 있고, 부정적이고 불가능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이 발언에선 사람 좋기로 유명한 비건 부장관답지 않게 뭔가 분한 마음이 느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오래전 모욕을 주며 해임한 볼턴을 비건은 왜 굳이 언급했을까.
볼턴이 최근 출간한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비건은 볼턴의 책에 30번도 넘게 등장한다. 비건을 바라보는 볼턴의 시선은 의심과 불신에 차 있다. 그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보다 비건을 더 경계했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비건의 장악력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볼턴은 북한과 벌이는 협상에서 '행동 대(對) 행동' 접근 방식을 말한 비건의 스탠퍼드대 연설을 비판했다. 뉴욕타임스에 트럼프 정부가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을 검토 중이란 기사가 나오자, 볼턴은 그 뒤에 비건이 있다고 믿었다. 볼턴은 비건이 마련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발표문 초안을 북한이 쓴 것 같았다고 했고, 트럼프 마음에도 들지 않았다고 썼다. 트럼프가 이 초안을 비판한 다음 날 아침 비건을 보고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까지 굳이 괄호 안에 기록해 놓았다.
볼턴은 근본적인 북한 비핵화가 아닌 모든 시도는 미국 정부가 지난 30년 동안 해온 대북 정책 실패를 한 번 더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그래서 북한과 협상을 통해 어떻게든 합의를 도출하려 했던 비건과 국무부의 노력을 의심의 눈초리로 봤다. 볼턴은 그런 국무부의 노력을 피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트럼프의 머릿속에 깊이 새긴 것을 중요한 성과로 생각했다.
비건의 방한은 볼턴 회고록의 일방적 주장에 맞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담당자인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한 미 대사관이 낸 비건 발언 보도 자료엔 '북한 비핵화'란 단어가 없었다. '한반도의 핵무기 제거'란 애매한 표현과 평화, 관계 개선에 대한 언급이 있을 뿐이다. 대북정책 특별대표로서 비건의 역할도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제네바 합의, 부시 대통령의 6자회담에 이어, 진전인 듯 보이는 합의가 결국 헛된 약속이었음이 드러나고 그 사이 북한의 핵 능력만 신장되는 도돌이표가 다시 작동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비건 부장관 방한 기간에 김정은과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슬쩍 비쳤다. 하지만 '쇼'에 불과한 정상회담이나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선택을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미 대선에서 북한 정책이 판세를 흔들 '10월의 깜짝쇼'급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 다. 북한은 현재로선 트럼프 재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지금 미국과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11월 미 대선이 끝나고 다음 행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국제사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할 주체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는 다시 국제사회의 미아(迷兒)가 되었다. 북한은 핵 능력을 키울 시간을 또 벌고 한국이 직면할 안보 위기는 그만큼 깊어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