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착각,미국의 오해
2016.07.28 17:24
[강천석,“중국의 착각,미국의 오해,”조선일보,2015.3.14,A30.]
요즘 한국처럼 중국이 하는 말이 곧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나라는 세계에 드물다.'이웃을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고 평화롭게 일어서겠다'는 화평굴기(和平屈起)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중국은 2003년 후진타오 시대 이래 '화평굴기'를 대외 정책의 기본 노선으로 내걸었다.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주도한다'는 '주동작위(主動作爲)'라는 표현을 곧 잘 사용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세계의 분위기가 '
미국 부활,중국 감속(減速)'으로 바뀌자 '화평굴기'를 다시 전면에 세웠다. 미국․유럽․일본은 '화평굴기'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부터 '평화롭게 일어서고 난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중국에 묻고 그에 대비한 전략도 함께 구상했다. 그들은 중국 이야기를 그대로 곧이듣는 한국더러 '순진하다'고 했다.'순진하다'는 말을 뒤집으면 '어리석다'는 뜻이다.일본 아베 정권 인사들의 망언(妄言)에는 그런 느낌이 묻어난다. 미군은 6․25전쟁에서 국군과 어깨동무하며 중국․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전사(戰死)3만6940명,부상 9만2134명,실종 3737명,포로 4439명이란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다.이런 동맹국 미국의 말은 씹고 되씹으며 미국의 숨은 뜻,감춰진 국익(國益)을 캐내려 하는 한국이 중국의 이야기는 두드려보지도 않고 덥석 삼키는 듯한 모습에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성인군자(聖人君子)의 나라다.리퍼트 미국 대사의 피습 사건은 그래서 더 등골이 서늘하다.대사 본인은 비 온뒤 땅이 더 굳어진다 했지만 비 왔다고 저절로 땅이 굳어지는 건 아니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한국 배치 여부를 둘러싼 논란 과정은 이제껏 중국을 대해온 한국 태도가 미국의 오해만 불러온 것이 아니라 중국의 착각을 키워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작년과 올해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한국을 향해 우려․경고․압박을 계속하고 있다.사드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려는 여러 선택 가운데 하나다.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이 대한민국을 과녁으로 삼지 않고 중국을 노렸다면 중국은 사드 배치와 같은 방어적 선택이 아니라 보다 공격적 대응책을 세우고 즉각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그것은 중국과 중국 국민의 생존권을 지켜야 하는 중국의 안보적 주권(主權)에 속하는 문제다.중국이 이 논리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사드배치 여부를 놓고 한국에 대해 도를 넘어선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사드가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주장은 사드의 성능과 작동 범위에 비춰보면 전혀 근거가 없다.중국 미사일은 한국 배치가 거론되는 사드 레이더의 유효(有效)탐지 거리 밖에 있기 때문이다.의문
이 있다면 한국의 설명을 요청하면 될 일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가 왜 나왔는가부터 살펴야 한다.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이 아니라면 한국 땅의 사드 배치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을 터이다.중국이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에 확실한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기에 사태가 여기에 이르렀다.
중국에 관한 한 한국은 순진한 나라도,어리석은 나라도 아니다.국경을 접해 5000년을 부대끼며 은원(恩怨)을 쌓은 사이다.한국만큼 중국의 안과 밖을 들여 다볼 수 있는 나라도 없다.중국은 1949년에서 1985년까지 11번의 대외 분쟁에서 7회에 걸쳐 무력을 사용했다. 무력 사용 비율이 72%에 달한다.미국의 18%,소련27%,영국 12%보다 훨씬 높다.미국이 경계하고 일본이 두려워하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또 중국이 대부분의 분쟁을 무력을 통해 해결하려 시도했으나 최종적으론 외교 협상으로 결말을 지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한국이 다른 나라들처럼 중국의 '화평굴기'라는 말의 뒤를 캐지 않은 것은 순진해서가 아니라 중국 역사의 안팎을 함께 읽고 '화평굴기'가 두 나라 공동의 이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당당해져야 한다.'미국의 요청이 없었기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는 청와대 발표나 '사드 문제에 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대응은 입장을 궁색하게 하고 사태를 꼬이게 할 뿐이다.'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무(無)전 략적 혼돈(混沌)'에 지나지 않는다.북한 핵과 미사일문제가 해결된다면 배치된 사드도 언제든 철거할 수 있다는 명쾌한 논리로 국민에게 설명하고 중국의 과민(過敏)반응을 다스리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냉전(冷戰)초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초대 사무총장은 나토에 대한 공격과 시비를 'KeeptheAmericansIn,theRussiansOut,andtheGermansDown(미국을 유럽에 붙잡아두고,소련이 유럽을 침공하지 못하게 하고,독일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이란 명쾌한 한마디로 잠재웠다. 사드 문제에 관한 우리 입장은 이보다 몇 배 당당하고 명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