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실험의 대비
2005.09.15 10:24
[제스퍼 베커, "北核실험의 대비," 미래한국, 2005. 6. 4, 4쪽; 제스퍼 베커, 前 BBC 방송 중국 특파원; Jasper Becker, "Preparing for North Korea`s Nuclear Test," Wall Street Journal, 25 May, 2005.]
우리는 지금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관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못을 박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NPT조약의 개정(뉴욕평가회의)과 관련해 가맹국간에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이 북한은 핵 실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란-유럽연합(EU)간 핵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만일 북한이 실제로 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주변국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중국의 경우 이에 대해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을 비난하면서 김정일 정권을 옹호하는 동시에 유엔 안보리에 의한 대북제재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은 북한의 핵 실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겠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북한과의 접촉을 유지하는 것과 상호신뢰의 구축이라는데 매달릴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핵 시설에서 일하다 북한을 탈출한 김대호씨는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북한의 핵개발 및 미사일 공장들은 생산이 전면적으로 중단되고 완전 붕괴에 직면하게 되었으나 남한의 지원으로 핵개발 및 미사일생산이 재가동되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핵 재무장을 심각하게 고려하겠지만 이는 국내·국제적으로 심한 반대여론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한편 미국 내 일각에서는 그동안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대북 포용정책을 따르지 않았던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이 북한으로 하여금 제네바기본합의를 어기고 비밀리에 핵 프로그램을 지속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 핵 프로그램의 진범(culprit·眞犯)은 지금은 지구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련이다. 실제로 소련이 붕괴하기 5년 전 모스크바는 북한의 핵 개발 지원 요청을 받아들이고 영변에 실험용 원자로를 공급했다. 이 사실은 최근 미국의 우드로 윌슨센터가 지난 17일 1962년부터 1986년까지 북한주재 구소련 외교관들이 본국에 보고한 문서 등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김일성은 한반도에서 다시금 남침을 야기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핵무기 보유에 있다고 믿고 공산권 동맹국들에게 핵무기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달라고 설득했다. 김일성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 1년 전인 1984년 소련을 방문해 보수파인 콘스탄틴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을 설득해 먼저 50mW급 실험용 흑연 감속 원자로를 공급받고, 그 후 440mW급 경수로 4기를 제공 받는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영변 핵 시설은 북한판 로스 알라모스(美 국립핵연구소)기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영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기지는 구소련의 지하 핵 개발 단지인 ‘크라스노야르스크-26’(Krasnoyarsk-26)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시베리아 지하 180미터 아래에 건설된 ‘크라스노야르스크-26’단지는 3,500여개의 방과 거대한 터널 시스템을 갖춘 소도시로 그 규모만 해도 모스크바 광장만 하다.
당시 소련은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기지에 플루토늄 원자로 3기와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방사화학시설, 탄도미사일 공장 등을 건설했다. 특히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크라스노야르스크-26단지에서 훈련받았으며 이들은 이 기지를 모방해 북한에 핵 시설을 건설했다.
영변에서 일했던 두 명의 탈북민은 필자에게 북한의 핵무기 시설이 대부분 영변 인근 산악지대의 지하 깊은 곳에 은닉되어 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들은 김정일이 지난 1994년 미북 제네바 핵합의를 체결하기 전부터 플루토늄 추출과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보유했고, 그 후로도 두 프로그램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제거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핵 제거가 아니라 북한이란 나라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일이 혼자서만 살려고 수백만의 이르는 사람들의 목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대안은 자명하다. 따라서 이제 북한과의 지지부진한 협상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지금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관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못을 박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NPT조약의 개정(뉴욕평가회의)과 관련해 가맹국간에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이 북한은 핵 실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란-유럽연합(EU)간 핵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만일 북한이 실제로 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주변국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중국의 경우 이에 대해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을 비난하면서 김정일 정권을 옹호하는 동시에 유엔 안보리에 의한 대북제재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은 북한의 핵 실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겠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북한과의 접촉을 유지하는 것과 상호신뢰의 구축이라는데 매달릴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핵 시설에서 일하다 북한을 탈출한 김대호씨는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북한의 핵개발 및 미사일 공장들은 생산이 전면적으로 중단되고 완전 붕괴에 직면하게 되었으나 남한의 지원으로 핵개발 및 미사일생산이 재가동되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핵 재무장을 심각하게 고려하겠지만 이는 국내·국제적으로 심한 반대여론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한편 미국 내 일각에서는 그동안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대북 포용정책을 따르지 않았던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이 북한으로 하여금 제네바기본합의를 어기고 비밀리에 핵 프로그램을 지속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 핵 프로그램의 진범(culprit·眞犯)은 지금은 지구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련이다. 실제로 소련이 붕괴하기 5년 전 모스크바는 북한의 핵 개발 지원 요청을 받아들이고 영변에 실험용 원자로를 공급했다. 이 사실은 최근 미국의 우드로 윌슨센터가 지난 17일 1962년부터 1986년까지 북한주재 구소련 외교관들이 본국에 보고한 문서 등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김일성은 한반도에서 다시금 남침을 야기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핵무기 보유에 있다고 믿고 공산권 동맹국들에게 핵무기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달라고 설득했다. 김일성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 1년 전인 1984년 소련을 방문해 보수파인 콘스탄틴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을 설득해 먼저 50mW급 실험용 흑연 감속 원자로를 공급받고, 그 후 440mW급 경수로 4기를 제공 받는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영변 핵 시설은 북한판 로스 알라모스(美 국립핵연구소)기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영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기지는 구소련의 지하 핵 개발 단지인 ‘크라스노야르스크-26’(Krasnoyarsk-26)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시베리아 지하 180미터 아래에 건설된 ‘크라스노야르스크-26’단지는 3,500여개의 방과 거대한 터널 시스템을 갖춘 소도시로 그 규모만 해도 모스크바 광장만 하다.
당시 소련은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기지에 플루토늄 원자로 3기와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방사화학시설, 탄도미사일 공장 등을 건설했다. 특히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크라스노야르스크-26단지에서 훈련받았으며 이들은 이 기지를 모방해 북한에 핵 시설을 건설했다.
영변에서 일했던 두 명의 탈북민은 필자에게 북한의 핵무기 시설이 대부분 영변 인근 산악지대의 지하 깊은 곳에 은닉되어 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들은 김정일이 지난 1994년 미북 제네바 핵합의를 체결하기 전부터 플루토늄 추출과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보유했고, 그 후로도 두 프로그램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제거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핵 제거가 아니라 북한이란 나라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일이 혼자서만 살려고 수백만의 이르는 사람들의 목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대안은 자명하다. 따라서 이제 북한과의 지지부진한 협상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