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이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기다려왔다. 이번 회담이 지난 25년 동안 한반도를 무겁게 짓눌러온 핵 공포를 걷어내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의 핵무기를 빠른 시일 내에 없앨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고 이번 회담 준비를 총괄해온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가 회담의 목표"라고 회담 하루 전까지 못 박듯이 다짐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서명이 담긴 6·12 합의문은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만큼 어이없고 황당하다. 이번 회담의 목표는 오로지 한 가지, 북한 핵을 폐기하는 것이었다. 이번 회담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합의문 속에 핵 폐기 시한(時限)과 CVID라는 핵 폐기 원칙이 명확히 담기느냐 두 가지였다. 북한이 늦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말까지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 이행을 검증할 사찰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반드시 담겨야 했다.
그러나 합의문 속에 담긴 비핵화 관련 내용은 '북한은 4·27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성명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는 것이다. 판문점 성명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문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판문점 성명 합의 내용 자체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정부는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것"이라고 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이해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반 만에 나온 미·북 핵 담판 결과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추상적 한마디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몇 달간 "빠른 시일 내에 핵 폐기"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는데 언제까지 핵 폐기를 한다는 시한은 아예 합의문에서 실종됐다.
더구나 북한 측의 비핵화 약속은 미·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체제라는 미국 측 약속에 이어 세 번째 순서로 합의문에 담겼다. 또 서문에는 미·북 간의 신뢰 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면서 미국 측의 대북 관계 개선 및 평화 체제 구축 노력이 북한의 핵 폐기 약속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처럼 돼 있다.
2005년 9월 19일 채택한 6자회담 공동성명의 첫 번째 합의 내용은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한다'였다. 이 합의 이행을 위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 9·19 성명은 완전한(Complete) 비핵화의 대상을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 포기'라고 구체화했고 '검증 가능한(verifiable)'이라는 원칙을 담았으며 검증을 위한 NPT, IAEA 복귀라는 행동 계획도 포함했다. 이번 미·북 정상 합의문은 13년 전 6자회담 공동성명보다도 더 뒷걸음친 것이다. 충격적이기에 앞서 어처구니가 없다.
합의문에 담지는 못했지만 회담에서 오간 다른 얘기가 있는지 기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더 걱정스러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1993년 1차 핵위기 때 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해 한·미가 연합훈련을 재개하기로 하자 북은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반발했었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을 그만큼 고통스럽게 하는 확실한 북한 비핵화 압박 카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폐기에 시동도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선물을 북에 안겨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곧 미사일 실험장을 폐쇄할 것을 약속했다고 했다. 핵 실험장 폐쇄에 이은 김정은의 대미 선심 공세다.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면 미 본토에 대한 핵 공격 위험은 사라진다. 그 대가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북은 핵무기를 감추고 있으면 우리로서는 최악의 결과다.
북한 김씨 왕조는 미국 현직 대통령과 마주 앉는 것이 3대에 걸친 숙원 사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30대 초반의 북한 지도자를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김정은에게는 엄청난 성과다. 그래서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막대한 대가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속을 챙긴 쪽은 김정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손해 보는 거래를 하려고 싱가포르까지 날아가 불량 국가 독재자를 만났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이번 회담 합의 내용 이행을 위해 폼페이오 장관과 북 고위 관계자를 양측 대표로 하는 후속 회담이 곧 열릴 것이라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을 두 차례나 만났고 미·북 실무진은 회담 하루 전까지 합의 내용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느냐 깨지느냐 하는 긴장 국면에서도 북한 압박에 실패했다면 정상회담이 끝난 마당에 무슨 진전된 비핵화 합의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북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모두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워싱턴과 평양을 오가며 김정은과 계속 만나겠다고 했는데 그 회담은 핵보유국 사이의 핵 군축 회담 성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노려왔던 구도 그대로다.
이런 회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적인 북·미 회담 성공을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정말 '뜨거운 마음'인지 그런 척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벌써 많은 것이 어그러졌다. 이제 남은 것은 대북 제재밖에 없다. 김정은은 미·북 회담을 이어가며 집요하게 제재를 허물어뜨리려 할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 결과를 보니 김정은이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게 되면 북은 핵보유국이다. 대북 제재만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한·미 양국 정부의 의지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국민들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냉철한 눈으로 앞으로의 북핵 협상을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서명이 담긴 6·12 합의문은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만큼 어이없고 황당하다. 이번 회담의 목표는 오로지 한 가지, 북한 핵을 폐기하는 것이었다. 이번 회담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합의문 속에 핵 폐기 시한(時限)과 CVID라는 핵 폐기 원칙이 명확히 담기느냐 두 가지였다. 북한이 늦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말까지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 이행을 검증할 사찰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반드시 담겨야 했다.
그러나 합의문 속에 담긴 비핵화 관련 내용은 '북한은 4·27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성명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는 것이다. 판문점 성명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문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판문점 성명 합의 내용 자체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정부는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것"이라고 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이해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반 만에 나온 미·북 핵 담판 결과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추상적 한마디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몇 달간 "빠른 시일 내에 핵 폐기"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는데 언제까지 핵 폐기를 한다는 시한은 아예 합의문에서 실종됐다.
더구나 북한 측의 비핵화 약속은 미·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체제라는 미국 측 약속에 이어 세 번째 순서로 합의문에 담겼다. 또 서문에는 미·북 간의 신뢰 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면서 미국 측의 대북 관계 개선 및 평화 체제 구축 노력이 북한의 핵 폐기 약속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처럼 돼 있다.
2005년 9월 19일 채택한 6자회담 공동성명의 첫 번째 합의 내용은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한다'였다. 이 합의 이행을 위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 9·19 성명은 완전한(Complete) 비핵화의 대상을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 포기'라고 구체화했고 '검증 가능한(verifiable)'이라는 원칙을 담았으며 검증을 위한 NPT, IAEA 복귀라는 행동 계획도 포함했다. 이번 미·북 정상 합의문은 13년 전 6자회담 공동성명보다도 더 뒷걸음친 것이다. 충격적이기에 앞서 어처구니가 없다.
합의문에 담지는 못했지만 회담에서 오간 다른 얘기가 있는지 기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더 걱정스러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1993년 1차 핵위기 때 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해 한·미가 연합훈련을 재개하기로 하자 북은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반발했었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을 그만큼 고통스럽게 하는 확실한 북한 비핵화 압박 카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폐기에 시동도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선물을 북에 안겨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곧 미사일 실험장을 폐쇄할 것을 약속했다고 했다. 핵 실험장 폐쇄에 이은 김정은의 대미 선심 공세다.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면 미 본토에 대한 핵 공격 위험은 사라진다. 그 대가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북은 핵무기를 감추고 있으면 우리로서는 최악의 결과다.
북한 김씨 왕조는 미국 현직 대통령과 마주 앉는 것이 3대에 걸친 숙원 사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30대 초반의 북한 지도자를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김정은에게는 엄청난 성과다. 그래서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막대한 대가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속을 챙긴 쪽은 김정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손해 보는 거래를 하려고 싱가포르까지 날아가 불량 국가 독재자를 만났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이번 회담 합의 내용 이행을 위해 폼페이오 장관과 북 고위 관계자를 양측 대표로 하는 후속 회담이 곧 열릴 것이라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을 두 차례나 만났고 미·북 실무진은 회담 하루 전까지 합의 내용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느냐 깨지느냐 하는 긴장 국면에서도 북한 압박에 실패했다면 정상회담이 끝난 마당에 무슨 진전된 비핵화 합의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북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모두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워싱턴과 평양을 오가며 김정은과 계속 만나겠다고 했는데 그 회담은 핵보유국 사이의 핵 군축 회담 성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노려왔던 구도 그대로다.
이런 회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적인 북·미 회담 성공을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정말 '뜨거운 마음'인지 그런 척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벌써 많은 것이 어그러졌다. 이제 남은 것은 대북 제재밖에 없다. 김정은은 미·북 회담을 이어가며 집요하게 제재를 허물어뜨리려 할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 결과를 보니 김정은이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게 되면 북은 핵보유국이다. 대북 제재만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한·미 양국 정부의 의지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국민들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냉철한 눈으로 앞으로의 북핵 협상을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