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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北보다 우위라는 포용정책의 전제가 무너졌다

3년간 61발 미사일 도발 이걸 대화 재개하자는 北의 메시지로 본다면
그야말로 ‘특등 머저리’ 압도적 北核 억지력 갖춰야 협상에도 나설 수 있어

[윤덕민, "우리가 北보다 우위라는 포용정책의 전제가 무너졌다," 조선일보, 2022. 4. 2, A26쪽.]

화성17호 불기둥을 보면서 분노했다. 지난 3년간 61발의 미사일 도발을 목격하고도 이것이 협상을 재개하고자 하는 대화 메시지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김여정 지적대로 특등 머저리임에 틀림없다. 지난 30년간 역대 정부가 관성처럼 해왔던 대북 정책의 조전(弔電)이다. 냉전 이후 정부들은 보수든 진보든 진정성 있게 대북 포용 정책을 추진했지만 북한 핵 무장은 현실화되었고 우리가 바라던 북한의 긍정적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포용 정책 30년 동안 개방, 비핵화, 시장화, 자유, 인권 그 어떤 지표를 동원해도 북한에서 전향적 변화가 있다는 객관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가한 ‘등소평 같은 끈질긴 개혁가’ 김정일과, 유시민씨가 평가한 ‘계몽 군주’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은 핵무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고질적 경제 식량난은 방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리얼리티쇼는 화려했지만, 연락사무소는 폭파되고 남북 관계는 교류조차 없는 최악이며 북한군은 한반도 전역을 정확하게 핵 공격할 수 있는 신형 전력으로 탈바꿈했다. 통일부 남북 합의서 총람의 707페이지에 달하는 지켜지지 않는 방대한 남북 합의문만 남았다. 지금까지 대북 정책의 적실성에 관한 철저한 재검토와 함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같은 정책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란다면 미친 짓이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에 대한 냉철한 자기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포용 정책을 지탱하던 전제들이 무너졌다. 포용 정책은 탈냉전의 산물이었다. 공산주의권이 연일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냉전 붕괴 상황에서 우리는 체제 경쟁에서 이겼고, 포용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협력을 얻어 북한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전승기념일에 서방국가 중 유일하게 대통령이 천안문에 서기까지 했지만, 바라던 중국의 협력은 없었다.

탈냉전 시대는 이미 종식되었다.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말한다. 북·중·러 연대의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4번이나 발사했음에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언론 발표문조차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로 발표하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든든한 뒷배가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향후 효율적인 대북 국제 공조가 가능한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더욱이 ‘우리가 북한보다 우위’라는 포용 정책의 가장 큰 전제도 흔들리고 있다. 가장 원초적인 군사 균형에 있어서 전술 핵으로 무장한 북한군의 등장은 더 이상 우리가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세대·젠더·지역·이념 등 극도로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체제 우위를 논하기 어렵게 되었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 의식이 없었다. 국민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한반도 정치·군사 문제를 미·북 간에 맡겼다. 주권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대신 역대 정부 모두 남북 협력이나 대화에 매달려 왔다. 지난 30년의 경험은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북 협력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국제 제재로 인해 누구도 북한에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도 투자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조차 단 한 개의 협력 사업도 할 수 없었다. 북한 체제의 내구성에 대한 과대평가도 피해야 한다. 북한붕괴론도 문제지만, 절대 붕괴되지 않는다고 믿는 것도 잘못이다. 잘못된 정책과 폭정이 지속되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차기 정부는 대북 정책의 철저한 재검토를 통해 적실성 있는 최적의 대북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선, 대북 정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대화와 정상회담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중재자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한다. 주권과 국민을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기본 자세다. 동맹은 중요하지만 한·미의 이해가 모든 면에서 같을 순 없다. 미국의 고립주의 성향을 유념해야 한다. 힘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주인이 되어야만 북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끝으로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압도적이고 효과적인 대북 억제력을 시급히 갖추어야 한다. 북한 전술핵 부대가 실전에 배치된 상황에서 효과적인 억제력이 있어야만, 북핵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압도적 억제력이 있어야만 시간을 두고 과감한 인센티브를 결합한 대담하고 유연한 협상이 가능하다. 그것이 없다면 대북 정책은 탁상공론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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