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월북’ 주장 근거 가족에게도 숨기는 정부, 진실이 두려운가," 조선일보, 2020. 11. 4, A31쪽.]


국방부가 3일 북한군에게 총살당한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청구한 우리 군의 대북 감청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국가 기밀이라 비공개’라는 것이다. 이씨는 동생이 북에서 살해된 경위를 확인하려고 구조 골든타임 6시간 동안의 북한군 감청과 시신 소각으로 추정되는 40분간의 녹화 기록을 요청했다.


정부는 ‘월북’으로 단정하지만 이상한 점이 많다. 실종 지점 인근 어촌계장은 “당시는 유속도 매우 빠르고 추워서 물에 들어가면 (오래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바다를 잘 아는 해양 공무원이 “그런 날씨에 바다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같은 배를 탔던 동료는 해경에 “밀물로 (조류가)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북쪽으로 갈 수는 없다”고 진술했다. 이씨가 수영을 잘하지 못했고, 평소 북에 대해 말한 적도 없다는 동료와 가족 진술도 있었다. 실종 바다와 이씨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월북’을 부인했는데도 정부는 “월북 판단”이라고 못 박았다. 답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정부 여당이 내세운 ‘월북’ 핵심 증거가 군의 감청 기록이다. “월북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맥락과 뜻이었는지는 숨기고 있다. 사망 경위를 알 권리가 있는 가족이 월북을 부인하는 만큼 감청 기록을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군 주장대로 ‘감청 경로 유출’이 우려된다면 비공개 약속을 받고 가족에게만 내용을 알려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감췄다.


해경은 실종 직전 모습을 본 동료 선원들 진술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가족에게 통보했다. 진술 요약본에는 ‘월북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래진씨가 국감 증인을 자청했지만 여당 반대로 무산됐다. 그런데 정부는 이씨 통장을 뒤져 나온 채무 내용과 도박 정황은 범죄 일람표처럼 자세히 공개했다. ‘도박 빚을 감당 못 한 충동적 탈북’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부 조사를 어떤 가족이 믿을까. 만약 월북이 아니라면 피살 공무원과 가족의 한(恨)을 어떻게 달래주나. 차가운 바다에서 총살당하고, 소각된 것도 원통한데 ‘월북자’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으라는 건가. 정부는 유족에게라도 감청 기록을 알려줘야 한다. 아니면 진실을 감추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