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기자회견 때 한 기자가 허리에 손을 짚은 채 질문을 했다가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다. '어디 대통령 앞에서 자세가 그 모양이냐' '싸가지가 없다'는 인터넷 댓글이 쏟아졌다. 평소 '친문' 성향이라던 기자였다. 당시 문 대통령에게 지지자들의 악성 댓글 문제를 질문한 다른 기자도 문자 폭탄 세례를 받았다.
▶그제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라디오 방송의 한 기자는 지명을 받자 당황한 듯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말하는 걸 잊었다. 그러나 "여론이 굉장히 냉랭하다는 걸 대통령이 알고 계실 것"이라고 질문을 시작했다. "현실 경제가 얼어붙어 있고 국민이 힘들어한다. 희망을 버린 건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현 기조를 바꾸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 얼굴이 굳어졌다.
▶미국에선 이 정도는 공격적인 질문 축에도 끼지 못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기자로부터 "르윈스키 드레스에 묻은 액체는 당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외국 정상과의 회담 뒤에도 섹스 스캔들 질문만 쏟아졌다. 대통령과 기자가 보는 사람이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심한 설전도 벌인다.
▶문 대통령은 이 기자의 질문에 "30분 내내 말씀드린 것이다.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고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다. 이 광경을 보고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곧 이 기자를 공격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여성인 기자를 향해 "무례하고 막돼먹었다"라는 등 욕설이 시작됐다. "역대급 기레기" "공부 더해라" 같은 인신공격이 줄을 이었다. 일부 정치인도 비난에 가세했다. 이 기자는 인터넷에 개인 신상까지 모두 털렸다. 소셜 미디어 계정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독자와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독자와 시청자는 결국 국민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답변 할 의무가 있다. 이 기자의 질문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많은 신문이 대통령 회견 기사 제목으로 '경제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것을 뽑았다. 그 이유와 근거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선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이 대통령을 왕(王)처럼 떠받들고는 한다. '기자 따위가 왕에게 감히'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필요할 때는 '민주주의' '언론 자유'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