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이 4·15 총선을 휩쓸자 정권 앞날에 관해 두 가지 추측이 나왔다. 대부분은 정권의 생각·버릇·행태가 어디 가겠느냐는 비관론(悲觀論) 쪽에 섰다. 입법권이라는 날개까지 달았으니 더 극단으로 치달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사법부는 무릎을 꿇고 대통령의 수하(手下) 권력이 된 지 오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면 브레이크 없는 권력이 완성된다. 운전수의 폭주(暴走)를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너무 답답하고 우울한 전망이라서 그랬을까. 비관론의 그늘 아래서도 작은 목소리지만 실낱같은 기대가 없진 않았다. 정권을 대표하는 정책 상품인 소득 주도 성장이나 탈(脫)원전 에너지 정책은 역(逆)효과와 부작용이 의도했던 정책 효과를 압도하는 걸로 드러났다. 그걸 덮어보려고 2018년 8월 느닷없이 통계청장을 교체하고 통계 산출 방식을 바꾸는 꾀를 써보기도 했다.
원전(原電)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선 경제성 평가 숫자에 분(粉)칠을 하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를 고의로 지연시키는 수법도 동원했다. 겉으론 이런 억지를 써도 정권 내부에선 귓속말로라도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비판에 떠밀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뻗대왔지만 선거도 이겼으니 소리 소문 없이 은근슬쩍 정책을 변경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일부의 희미한 기대, 실낱같은 희망의 근거였다.
며칠 안 가 이런 근거 없는 희망과 기대는 박살이 났다. 실패한 정책들을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밀고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코로나 대감염(大感染)이란 비상사태를 맞아 힘을 모아줄 테니 '잘 대처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었다. 이걸 실패한 정책에 대한 지지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 정권 출범 이후 국민이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한 분야가 '경제'였다. 경제 불황·경기 침체·고용 악화를 초래한 경제정책을 시정하라는 요구였다. 엊그제 통계청 조사에서도 경제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는 더 악화된 걸로 나타났다. 저(低)소득층은 '일해서 번 수입'은 줄고 '배급받은 복지 혜택'에 갈수록 의존하고 있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OECD 국가에선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자국(自國) 기업의 고향 귀환을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지원 기금을 마련하고 각종 유인(誘引)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정권의 보복만 두렵지 않다면 크든 작든 진작 해외 망명(亡命)의 이삿짐을 꾸렸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구호를 선창(先唱)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불신과 의혹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자체가 정상(正常)이 아니라는 표시다. 2011년 그리스 통계청장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는 EU(유럽연합) 본부에 다급한 목소리로 구명(救命) 요청 신호를 보냈다. 검찰이 자신을 '직무 유기' '허위 진술' '공문서 위조' '국익 배반죄'로 기소했다는 것이다. 국익 배반죄는 종신형(終身刑)이 선고될 수 있는 죄목(罪目)이다. 정권의 지시를 어기고 GDP 대비(對比) 재정 적자 비율을 곧이곧대로 작성한 것이 탈을 냈다. 이 소동을 겪고 얼마 안 가 그리스는 국가 부도(不渡) 사태를 맞았다.
어제 현대판 탐관오리(貪官汚吏)라는 전 부산 경제부시장이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났다. 다음은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一家), 그다음은 울산지방선거 부정 개입 혐의로 재판받는 여당 의원과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에 대한 무죄 선고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확정판결 뒤집기도 시동(始動)을 걸었다.
'희미한 기대'와 '실낱같은 희망'을 짓밟고 왜 모든 것이 걱정했던 대로 굴러가는 것일까. 답은 심리학에 있다.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 끼리끼리 집단은 '대책회의' '확대대책회의' '비상대책회의'를 거듭할수록 같은 생각이 더 굳어진다. 이것이 '내부 이견(異見)을 허락하지 않는 집단(Team of Unrivals)'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통령 생각이 달라진 게 없고 둘러싼 사람 생각이 그대로인데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영화 '판도라'를 보고 원전 폐기 결심을 굳혔다는 대통령께 넷플릭스 프로 '인사이드 빌 게이츠(Inside Bill Gates)'를 한번 시청(視聽)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세계 최대 자선 재단을 이끄는 게이츠가 지구온난화 문제와 다음 세대 에너지원(源)을 찾아 씨름하면서 인기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원전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 있다. 무식한 기자는 이걸 보고 원전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너무 답답하고 우울한 전망이라서 그랬을까. 비관론의 그늘 아래서도 작은 목소리지만 실낱같은 기대가 없진 않았다. 정권을 대표하는 정책 상품인 소득 주도 성장이나 탈(脫)원전 에너지 정책은 역(逆)효과와 부작용이 의도했던 정책 효과를 압도하는 걸로 드러났다. 그걸 덮어보려고 2018년 8월 느닷없이 통계청장을 교체하고 통계 산출 방식을 바꾸는 꾀를 써보기도 했다.
원전(原電)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선 경제성 평가 숫자에 분(粉)칠을 하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를 고의로 지연시키는 수법도 동원했다. 겉으론 이런 억지를 써도 정권 내부에선 귓속말로라도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비판에 떠밀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뻗대왔지만 선거도 이겼으니 소리 소문 없이 은근슬쩍 정책을 변경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일부의 희미한 기대, 실낱같은 희망의 근거였다.
며칠 안 가 이런 근거 없는 희망과 기대는 박살이 났다. 실패한 정책들을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밀고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코로나 대감염(大感染)이란 비상사태를 맞아 힘을 모아줄 테니 '잘 대처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었다. 이걸 실패한 정책에 대한 지지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 정권 출범 이후 국민이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한 분야가 '경제'였다. 경제 불황·경기 침체·고용 악화를 초래한 경제정책을 시정하라는 요구였다. 엊그제 통계청 조사에서도 경제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는 더 악화된 걸로 나타났다. 저(低)소득층은 '일해서 번 수입'은 줄고 '배급받은 복지 혜택'에 갈수록 의존하고 있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OECD 국가에선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자국(自國) 기업의 고향 귀환을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지원 기금을 마련하고 각종 유인(誘引)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정권의 보복만 두렵지 않다면 크든 작든 진작 해외 망명(亡命)의 이삿짐을 꾸렸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구호를 선창(先唱)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불신과 의혹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자체가 정상(正常)이 아니라는 표시다. 2011년 그리스 통계청장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는 EU(유럽연합) 본부에 다급한 목소리로 구명(救命) 요청 신호를 보냈다. 검찰이 자신을 '직무 유기' '허위 진술' '공문서 위조' '국익 배반죄'로 기소했다는 것이다. 국익 배반죄는 종신형(終身刑)이 선고될 수 있는 죄목(罪目)이다. 정권의 지시를 어기고 GDP 대비(對比) 재정 적자 비율을 곧이곧대로 작성한 것이 탈을 냈다. 이 소동을 겪고 얼마 안 가 그리스는 국가 부도(不渡) 사태를 맞았다.
어제 현대판 탐관오리(貪官汚吏)라는 전 부산 경제부시장이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났다. 다음은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一家), 그다음은 울산지방선거 부정 개입 혐의로 재판받는 여당 의원과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에 대한 무죄 선고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확정판결 뒤집기도 시동(始動)을 걸었다.
'희미한 기대'와 '실낱같은 희망'을 짓밟고 왜 모든 것이 걱정했던 대로 굴러가는 것일까. 답은 심리학에 있다.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 끼리끼리 집단은 '대책회의' '확대대책회의' '비상대책회의'를 거듭할수록 같은 생각이 더 굳어진다. 이것이 '내부 이견(異見)을 허락하지 않는 집단(Team of Unrivals)'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통령 생각이 달라진 게 없고 둘러싼 사람 생각이 그대로인데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영화 '판도라'를 보고 원전 폐기 결심을 굳혔다는 대통령께 넷플릭스 프로 '인사이드 빌 게이츠(Inside Bill Gates)'를 한번 시청(視聽)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세계 최대 자선 재단을 이끄는 게이츠가 지구온난화 문제와 다음 세대 에너지원(源)을 찾아 씨름하면서 인기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원전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 있다. 무식한 기자는 이걸 보고 원전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