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진보 정권'이 어떻게 폴란드 우파 포퓰리스트 정권과 빼닮은 방식으로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가." 서양사학자 임지현(61) 서강대 교수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177석 거대 여당이 5·18을 부인·비방·왜곡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법안을 추진한다는 보도를 듣고서였다.
임 교수는 지난 4월 국가의 역사 기억 독점을 주제로 하는 국제 세미나를 준비 중이었다. 러시아·독일·폴란드·네덜란드·이탈리아 등 유럽 연구자들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취소했지만 국가 권력과 현대사 해석은 유럽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지난 5일 임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에서 만났다.
임 교수는 지난 4월 국가의 역사 기억 독점을 주제로 하는 국제 세미나를 준비 중이었다. 러시아·독일·폴란드·네덜란드·이탈리아 등 유럽 연구자들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취소했지만 국가 권력과 현대사 해석은 유럽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지난 5일 임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에서 만났다.
◇'폴란드인도 유대인 학살' 주장하면 처벌
―폴란드 독재 정권이 과거사를 다루는 방식이 우리와 닮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폴란드 정부가 2000년 설립한 '국가기억협회(IPN)'는 나치 독일과 공산정권 시절에 일어난 반(反)인도적 범죄를 조사하는 일을 맡았다. 기소권까지 가진 이 협회는 2016년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이 공산정권 시절 비밀경찰 정보원이었다고 폭로했다. 집권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이 정적인 바웬사를 공격하는 데 과거사를 활용한 것이다. 2018년 폴란드는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이를 부정하면 처벌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예드바브네 학살은 1941년 7월 폴란드 동부 예드바브네에서 인구 절반가량인 유대인 1600명을 이웃인 폴란드 주민들이 학살한 사건이다. 미국 유대계 역사학자 얀 그로스가 저서 '이웃들'에서 예드바브네 학살을 폭로하면서 나치의 희생자를 자처해오던 폴란드의 역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뒤따랐다.
―'유대인 학살은 없었다'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를 처벌하는 사례가 5·18특별법이나 양향자 의원 등이 낸 '역사왜곡금지법' 같은 과거사법 모델로 거론된다.
"유럽 사례를 과거사법 모델처럼 떠받들지만 여기도 한계는 많다.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대량 학살을 부정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런 사람들을 탄압받는 희생자 내지 영웅으로 주목받게 해 목소리를 더 키워주는 측면이 있다. 피에르 노라와 앙리 루소 같은 프랑스 저명 역사학자들은 이런 법에 반대했다. 역사 해석과 판단은 학문적 영역으로 남겨야지 법으로 처벌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원회의 역사 해석 독점, 납득못해"
―국내에선 4·3사건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정부 위원회가 진상 규명을 맡는 식의 과거사 청산이 관례가 됐다.
"정부 위원회가 역사의 진상을 밝힌다는 것 자체에 회의적이다. 독일도 나치 '강제노동'을 다루는 위원회가 있지만 자료를 수집하고 국민에게 제공하는 역할이지 역사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4·3, 5·18을 비롯, 위원회가 역사를 판단하고 이를 비판하면 처벌하겠다고 한다. '진보 정부'에서 할 일인가."
―5·18 처벌법은 일부 야당 의원과 지지자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제기한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나도 이런 주장은 역겹다. 하지만 특별법까지 만들어 처벌하면 이들을 탄압받는 희생자, 영웅으로 만들어줄 뿐이다. 어차피 극소수 주장인데, 사회 공론장에서 걸러내야 한다."
임 교수는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성숙한 대응의 한 예로 다큐 영화 '김군'을 들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용 트럭 위 무기를 든 청년 사진을 북한 특수군 '광수'로 지목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자극받은 1980년대생 영화감독이 사진 주인공을 찾아 나선 과정을 담은 영화다. 임 교수는 "80년 광주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새로운 광주 이야기를 쓰게 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고 이를 비판하면 처벌까지 한다면 국정교과서 사태보다 더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임 교수는 단호했다. "그렇다. 6·25 남침을 부정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지금 학계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폴란드 독재 정권이 과거사를 다루는 방식이 우리와 닮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폴란드 정부가 2000년 설립한 '국가기억협회(IPN)'는 나치 독일과 공산정권 시절에 일어난 반(反)인도적 범죄를 조사하는 일을 맡았다. 기소권까지 가진 이 협회는 2016년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이 공산정권 시절 비밀경찰 정보원이었다고 폭로했다. 집권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이 정적인 바웬사를 공격하는 데 과거사를 활용한 것이다. 2018년 폴란드는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이를 부정하면 처벌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예드바브네 학살은 1941년 7월 폴란드 동부 예드바브네에서 인구 절반가량인 유대인 1600명을 이웃인 폴란드 주민들이 학살한 사건이다. 미국 유대계 역사학자 얀 그로스가 저서 '이웃들'에서 예드바브네 학살을 폭로하면서 나치의 희생자를 자처해오던 폴란드의 역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뒤따랐다.
―'유대인 학살은 없었다'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를 처벌하는 사례가 5·18특별법이나 양향자 의원 등이 낸 '역사왜곡금지법' 같은 과거사법 모델로 거론된다.
"유럽 사례를 과거사법 모델처럼 떠받들지만 여기도 한계는 많다.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대량 학살을 부정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런 사람들을 탄압받는 희생자 내지 영웅으로 주목받게 해 목소리를 더 키워주는 측면이 있다. 피에르 노라와 앙리 루소 같은 프랑스 저명 역사학자들은 이런 법에 반대했다. 역사 해석과 판단은 학문적 영역으로 남겨야지 법으로 처벌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원회의 역사 해석 독점, 납득못해"
―국내에선 4·3사건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정부 위원회가 진상 규명을 맡는 식의 과거사 청산이 관례가 됐다.
"정부 위원회가 역사의 진상을 밝힌다는 것 자체에 회의적이다. 독일도 나치 '강제노동'을 다루는 위원회가 있지만 자료를 수집하고 국민에게 제공하는 역할이지 역사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4·3, 5·18을 비롯, 위원회가 역사를 판단하고 이를 비판하면 처벌하겠다고 한다. '진보 정부'에서 할 일인가."
―5·18 처벌법은 일부 야당 의원과 지지자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제기한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나도 이런 주장은 역겹다. 하지만 특별법까지 만들어 처벌하면 이들을 탄압받는 희생자, 영웅으로 만들어줄 뿐이다. 어차피 극소수 주장인데, 사회 공론장에서 걸러내야 한다."
임 교수는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성숙한 대응의 한 예로 다큐 영화 '김군'을 들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용 트럭 위 무기를 든 청년 사진을 북한 특수군 '광수'로 지목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자극받은 1980년대생 영화감독이 사진 주인공을 찾아 나선 과정을 담은 영화다. 임 교수는 "80년 광주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새로운 광주 이야기를 쓰게 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고 이를 비판하면 처벌까지 한다면 국정교과서 사태보다 더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임 교수는 단호했다. "그렇다. 6·25 남침을 부정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지금 학계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