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을 지켜보며 '참 무서운 정권'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 정권 사람들은 피해자의 고소 사실을 실시간으로 빼돌리고 정권 지지자들은 '피해 호소인'이란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어가며 피해자를 향한 2차·3차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과 정권 사람들이 두려워진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 사건을 최초로 인지(認知)했던 검찰과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의 보고 라인에 위치했던 적지 않은 정권 사람들은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사건 정보를 공유(共有)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있었던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을 만류하지 않았다. 박 시장은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 연루됐던 부산시장이나 충남지사와는 살아온 길이 달랐던 사람이다.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쌓았고, 여성 권익 옹호에 앞장섰고, 성희롱 사건에 대한 최초의 법원 판례(判例)를 이끌어낸 주역 가운데 하나다.
정치 상황 판단으로 평생을 보냈던 청와대 사람들이 박 시장이 처한 처지를 몰랐을 리 없다. 그의 정치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왜 그들은 '극단적 행동'을 만류하지 않았을까. 퇴로(退路)가 끊긴 사람을 방치하는 것은 등을 떠미는 것과 같다. 박 시장의 행동은 '극단적'이었지만 그가 갔던 길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것은 '강요된 선택'이었다. 절벽 앞에 선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보다 '극단적 선택'을 '정치 득실(得失)의 저울대'에 올려놓고 계산했던 것이다.
박 시장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던 그들은 그의 사후(死後) 어마어마한 꽃다발과 무수한 찬양(讚揚)의 말로 '강요된 선택'을 덮었다. 죽음을 저울에 다는 그들의 계산법은 무엇이었고 그런 판단에 참고한 전례(前例)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수사를 계속 받기보다 죽음을 선택했기에 정치적으로 부활(復活)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죽음을 선택했기에 같은 진영 내에서 사람 됨됨이에 대한 소리가 이어지는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치 구호는 헛말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진영(陣營)의 이익이다. 박 시장에게 바쳐진 서울시장(葬)이란 과거에 없던 장의 절차나 박원순 문서 기록관 건립 추진은 박 시장 생애를 마지막까지 정치에 이용하는 처사다. 위선(僞善)을 뺨치는 도덕성의 타락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라는 이름의 폭력극(暴力劇)'은 박 시장의 죽음이란 렌즈를 통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 권력도 엄정(嚴正)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랐던 검찰총장은 무슨 일을 겪고 있는가. 따르던 후배들은 옷을 벗었거나 원도(遠島)에 유배(流配) 처분을 받았거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의 주체(主體)는 박 시장 고소 관련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고 권력 상부(上部)로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이다. 말이 검찰총장이지 머리·몸통·팔다리가 다 잘려나간 의자만 있는 자리다. 대통령의 말만 듣고 마음을 읽지 못한 죄(罪)다.
감사원장은 또 어떤가. 청와대는 그를 임명하면서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수호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걸 자신에 대한 대통령의 기대 사항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판사 출신이라 '감사원은 대통령에게 소속하되 그 직무(職務)는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감사원법 제2조도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겼을 법하다. 착각이었다. 감사원이 원전(原電) 폐쇄 결정의 타당성 여부를 '진짜' 감사하자 여당과 어용(御用) 언론은 벌떼처럼 일어섰다. 다음 단계는 감사원장을 감사원 내부에서 고립화(孤立化)하는 방식일 것이다.
백선엽 장군을 현충원에 묻은 다음 날 현충원 인터넷 게시판에 '친일부역자'라는 팻말을 다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반대편에 대한 가혹한 형벌(刑罰)로 보면 이 정권은 조선의 적통(嫡統)을 이은 세력이라 할 만하다.
건물에 내화벽(耐火壁)을 쌓는 것은 건물이 한꺼번에 불길에 휩싸여 붕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권력 분립(分立)이 정권에 불편한 것 같지만 이 역시 비상시(非常時) 정권의 총체적 붕괴를 막는 안전장치다. 이 정권은 권력분립이 아니라 원 팀(one team) 시스템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 대통령과 내각이 한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대법원' '대통령과 헌법재판소' '대통령과 검찰' '대통령과 감사원' '대통령과 KBS·MBC'가 한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무너지면 단번에 붕괴한다. 무서운 나라의 두려운 시대를 산다.
이 사건을 최초로 인지(認知)했던 검찰과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의 보고 라인에 위치했던 적지 않은 정권 사람들은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사건 정보를 공유(共有)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있었던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을 만류하지 않았다. 박 시장은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 연루됐던 부산시장이나 충남지사와는 살아온 길이 달랐던 사람이다.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쌓았고, 여성 권익 옹호에 앞장섰고, 성희롱 사건에 대한 최초의 법원 판례(判例)를 이끌어낸 주역 가운데 하나다.
정치 상황 판단으로 평생을 보냈던 청와대 사람들이 박 시장이 처한 처지를 몰랐을 리 없다. 그의 정치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왜 그들은 '극단적 행동'을 만류하지 않았을까. 퇴로(退路)가 끊긴 사람을 방치하는 것은 등을 떠미는 것과 같다. 박 시장의 행동은 '극단적'이었지만 그가 갔던 길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것은 '강요된 선택'이었다. 절벽 앞에 선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보다 '극단적 선택'을 '정치 득실(得失)의 저울대'에 올려놓고 계산했던 것이다.
박 시장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던 그들은 그의 사후(死後) 어마어마한 꽃다발과 무수한 찬양(讚揚)의 말로 '강요된 선택'을 덮었다. 죽음을 저울에 다는 그들의 계산법은 무엇이었고 그런 판단에 참고한 전례(前例)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수사를 계속 받기보다 죽음을 선택했기에 정치적으로 부활(復活)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죽음을 선택했기에 같은 진영 내에서 사람 됨됨이에 대한 소리가 이어지는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치 구호는 헛말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진영(陣營)의 이익이다. 박 시장에게 바쳐진 서울시장(葬)이란 과거에 없던 장의 절차나 박원순 문서 기록관 건립 추진은 박 시장 생애를 마지막까지 정치에 이용하는 처사다. 위선(僞善)을 뺨치는 도덕성의 타락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라는 이름의 폭력극(暴力劇)'은 박 시장의 죽음이란 렌즈를 통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 권력도 엄정(嚴正)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랐던 검찰총장은 무슨 일을 겪고 있는가. 따르던 후배들은 옷을 벗었거나 원도(遠島)에 유배(流配) 처분을 받았거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의 주체(主體)는 박 시장 고소 관련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고 권력 상부(上部)로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이다. 말이 검찰총장이지 머리·몸통·팔다리가 다 잘려나간 의자만 있는 자리다. 대통령의 말만 듣고 마음을 읽지 못한 죄(罪)다.
감사원장은 또 어떤가. 청와대는 그를 임명하면서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수호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걸 자신에 대한 대통령의 기대 사항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판사 출신이라 '감사원은 대통령에게 소속하되 그 직무(職務)는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감사원법 제2조도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겼을 법하다. 착각이었다. 감사원이 원전(原電) 폐쇄 결정의 타당성 여부를 '진짜' 감사하자 여당과 어용(御用) 언론은 벌떼처럼 일어섰다. 다음 단계는 감사원장을 감사원 내부에서 고립화(孤立化)하는 방식일 것이다.
백선엽 장군을 현충원에 묻은 다음 날 현충원 인터넷 게시판에 '친일부역자'라는 팻말을 다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반대편에 대한 가혹한 형벌(刑罰)로 보면 이 정권은 조선의 적통(嫡統)을 이은 세력이라 할 만하다.
건물에 내화벽(耐火壁)을 쌓는 것은 건물이 한꺼번에 불길에 휩싸여 붕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권력 분립(分立)이 정권에 불편한 것 같지만 이 역시 비상시(非常時) 정권의 총체적 붕괴를 막는 안전장치다. 이 정권은 권력분립이 아니라 원 팀(one team) 시스템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 대통령과 내각이 한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대법원' '대통령과 헌법재판소' '대통령과 검찰' '대통령과 감사원' '대통령과 KBS·MBC'가 한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무너지면 단번에 붕괴한다. 무서운 나라의 두려운 시대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