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은 검찰 인사(人事)에서 이성을 잃었다. 노골적인 줄 세우기, 편 가르기를 하면서 “검찰 개혁”이라고 한다. 분명 정상이 아니다. 정권 겨눈 수사를 한 검사는 좌천시키고, 친(親)정권 검사 승진시키는 게 무슨 개혁인가. 그렇게 둘러대는 뻔뻔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검찰 장악이 정권 속성이라지만 이전 정권들은 국민 눈치 보느라 어느 정도 안배라도 했는데 이 정권은 그런 것도 없다. 폭주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측근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런 인사는 하지 않았다.
사실 검찰 장악이 목적이라면 이렇게까지 무리한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핵심 요직 몇 자리만 바꿔도 눈치 빠른 검사들은 알아서 줄을 서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검사장부터 평검사까지 입맛에 맞는 검사들로 중요 부서나 핵심 요직을 싹 채웠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 초인 2003년 3월 취재를 위해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 집을 밤늦게 찾아간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에서 “이쯤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해 청와대와 검찰 관계가 살얼음판을 걸을 때였다. 앞으로 검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자, 문 수석은 검찰과 연락 안 한다면서 “나중에 검찰 칼 맞을 일 있냐”고 했다. 그 피해의식이 지금의 검찰 인사 학살로 이어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정권은 초반엔 ‘윤석열 검찰’을 이용해 전(前) 정권 적폐 수사를 벌이다 검찰이 칼을 거꾸로 잡고 ‘조국(전 법무장관) 수사’를 하자 인사 학살을 시작했다. 이후 울산 선거 공작 사건 등 정권을 겨눈 수사팀을 줄줄이 좌천시켰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대통령과 정권 안전을 위해 수사의 싹을 미리부터 자르겠다는 것인데, 이는 검찰에 당하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피해의식 아니면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슷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쓴 책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노 대통령은 검찰과 손잡으면 청와대에서 걸어서 못 나온다 생각했다”고 했다. “(노 대통령 생각은) 검찰을 장악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손잡지 않는다는 거였다”고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장악은 비교적 절제된 형태로 나타났다. 입맛에 맞는 검사를 일부 요직에 두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피해의식을 최악의 형태로 표출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그 속에서 검찰은 완전히 망가졌다. 이젠 자정 기능까지 잃었다. 문 대통령을 ‘달님’으로 부르며 각종 찬양글을 소셜미디어에 쏟아낸 여검사는 서울로 발탁됐다. 검사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인데, 징계는 고사하고 경고받았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하긴 대통령 앞에서 받아쓰기 하던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라 실세가 되고 검찰 요직이 친정권 인사들로 가득 찼으니 누가 누굴 징계하겠나. 검찰 제도가 시작된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검사의 정치적 발언은 금기시된다. 이제 우리 검찰은 후진국 검찰로 전락했다.
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갖는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에서 “정치검찰로부터 벗어나는 게 개혁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스스로 정치검찰을 만들면서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구(舊)적폐 없앤다고 했지만 더 심각한 신(新)적폐를 쌓고 있을 뿐이다. 지금대로라면 이 정권은 검찰을 망친 역대 최악의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