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법원이 이태종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른바 ‘사법농단’ 관련 사건으로 네 번 연속, 사람으로는 여섯 명째 무죄다. 이 전 법원장 혐의는 판사를 시켜 법원 집행관 비리 수사 내용을 대법원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실제론 감사 지시였다. 설령 수사 상황을 알아보라 했더라도 기관장이 직원 단속을 한 게 어떻게 죄가 되나. 당연히 무죄다.
지난 2월 무죄판결을 받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에겐 영장 업무를 하면서 검찰 수사 기밀을 대법원에 누설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영장 판사의 흔한 업무 보고를 수사 방해로 몰았다. 판사가 후배에게 의견을 제시했다고 ‘재판 개입’으로 걸고, 퇴직할 때 사건 당사자들 인적 사항이 담긴 자료를 가져갔다고 ‘개인 정보 유출’로 걸었다. 결국 모두 무죄다.
이 사건으로 아직 전·현직 고위 법관 8명이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법원행정처 전 차장이 후배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보고받은 걸 직권 남용이라고 했다. 행정처 차장은 ‘범죄 사실’이 100건도 넘는다. 벌써 2년 가까이 재판했지만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업무 지시·보고는 보고한 직원의 절차 위반이 없는 한 직권 남용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재판 거래’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허구일 뿐이다. 정상적 재판이라면 계속 무죄가 나올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수사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광풍(狂風)이 왜 시작됐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의혹을 밝히라’고 지시하자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검찰을 끌어들였다. ‘사법 적폐 청산’은 허울이고, 실제 목적은 전 대법원장을 따르는 판사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자기 말을 듣는 판사들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재판이 곧 정치’라고 믿는 부류의 판사들 말이다.
그렇게 ‘개혁된’ 법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대법원장의 측근 판사들이 법복을 벗자마자 청와대 비서관이 됐다. 사법 농단의 내부 고발자를 자처하던 판사들은 총선에서 여당 공천을 받고 줄줄이 의원 배지를 달았다. ‘사법 독립’을 외치던 이들이 판사 인사권을 법원 외부로 넘기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법원을 청와대와 여당의 출장소로 만들려고 한다.
‘우리법’과 ‘인권법’, 민변이 장악한 대법원은 해직자 노조 가입을 금지한 노동조합법과 대법원·헌법재판소의 종전 판례를 뒤집고 전교조를 합법화했다. ‘선거 TV 토론 거짓말은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판결로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사직을 유지시키고, 검찰이 항소장을 부실 기재했다는 지엽적 형식논리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면죄부를 줬다.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한 다큐멘터리에 대해선 “사료에 기초”한 것이라며 역사도 뒤집는다. 대통령이 뽑은 대법관들이 판결로 대통령에게 아부한다. 이게 진짜 재판 거래 아닌가.
대통령을 비판한 변호사가 명예훼손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조국 동생의 심부름을 한 브로커는 징역 1년 6개월인데 교사 채용 뇌물 1억4700만원을 챙긴 조국 동생은 겨우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이 역시 이 정권 사법부 신주류라는 우리법과 인권법 판사가 내린 판결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번 주말 임기(6년) 반환점을 돌아 취임 4년 차를 맞는다. 지난 3년 ‘김명수 코트(court·법원)'를 돌이켜보면 끝없는 적폐 몰이와 그에 따라 누명을 쓴 사람들의 고통, 정권 코드에 맞춘 억지 판결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판사들이 웰빙만 추구하면서 법원의 사건 처리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적폐가 갈수록 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