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양서도 못 봤다는 서울 광화문 재인산성과 철책 미로," 조선일보, 2020. 10. 12, A35쪽.]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 경찰이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설치한 바리케이드 사이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고운호 기자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 경찰이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설치한 바리케이드 사이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고운호 기자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인 9일도 서울 광화문 광장이 다시 봉쇄됐다. 경찰 버스가 동원돼 ‘재인산성’이라 불리는 차벽이 다시 쳐졌고, 인도에 철제 펜스로 만들어진 미로식 통행로가 등장했다. 경찰관들이 버티고 선 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수차례 신분증을 요구했다. 1980년대 군사정부 시절에도 못 보던 장면이다. 한 외신 기자는 “평양의 군사 퍼레이드도 두 번 가봤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고 했다. 또 다른 외신 기자는 “지금 서울은 완전히 우스꽝스럽다. 미쳤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광화문 광장 인근 지상 주차장에선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은 채 50여 명이 모여 모 방송사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경찰은 “우리는 집회를 차단할 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시위대만 코로나에 위험하고 다른 일로 모이면 위험하지 않다는 건가. 경찰은 길을 건너면 5분밖에 안되는 거리를 막아 놓고선 시민들에게 밀폐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도록 했다. 코로나 방역이 진짜 목적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광화문을 철저히 봉쇄한 그 시각 전국 놀이공원과 산, 쇼핑몰은 연휴를 즐기러 온 시민들로 어김없이 붐볐다. 놀이공원에는 입장을 하거나 기구를 타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지만 거리 두기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가을 산행에 나선 시민들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광화문에만 존재하고 반정부 시위대만 골라서 감염·전파되기라도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선택적 대응을 할 수 있나.


정부는 코로나 재확산 책임을 모두 광복절 집회 탓으로 돌렸지만 둘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런데도 군사독재 뺨치는 방식으로 집회를 잇달아 봉쇄했다. 정권 비판 시위를 ‘반사회적 범죄'로 몰기까지 했다. 과거 정부 경찰 차벽에 대해선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반헌법”이라던 대통령은 ‘재인산성’에 대해선 “경찰이 최선을 다했다”며 칭찬했다. 방역을 잘해서가 아니라 정부 비판을 잘 막았다고 칭찬한 것 아닌가. 같은 사람이 모이는 일이지만 시위만 코로나에 위험하다는 듯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코로나 계엄’ ‘정치 방역’이란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