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에 노후 소득 보장이 부족한 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
최근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는 국민연금 개편 논의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노후 소득 보장을 확대해 나가는 게 우리 정부 복지 정책의 중요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더 내고 덜 받는' 정부의 연금 개편안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진화(鎭火)에 나선 것이다. 이 발언은 노후 불안에 떠는 장년층과 연금 세대에게는 복음(福音)일 수 있다.
하지만 하늘에서 돈이 장대비처럼 쏟아지지 않는 한, '덜 내고 더 받는 연금'은 환상이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총인구에서 65세 이상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대였다. 그러나 이후 고령화는 쓰나미처럼 몰려와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2008년 10%를 돌파한 고령화율은 2025년 20%, 2044년 35%를 각각 넘어설 전망이다. 갓난아기들이 30대가 되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은퇴 세대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은퇴 세대 부양이라는 큰 짐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 입장에서 연금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선진국들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연금 개혁을 단행한 것도, 자식 세대와 우리 노후를 지키기 위한 중대사라는 절박감에서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10년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추는 개혁안을 추진했다. 그는 항만·철도를 마비시킨 노조의 총파업을 극복하고 개혁안을 관철시켰다.
노조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사민당 출신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연금 개혁 없이 국가의 미래가 없다"며 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그는 총선에선 졌지만 독일 부흥을 견인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포퓰리즘의 끝판왕'이라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조차 올 6월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을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단계적으로 늘리는 연금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당시 그에 대한 지지율은 13% 폭락했다.
개혁을 미루는 것은 세대 간의 불공평 부담을 방치하는 일이다. 일본 경제사회종합연구소의 세대별 연금 생애수지(生涯收支) 보고서(2012년)를 보면, 일본의 27세 젊은이가 평생 부담하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평균 1978만엔이지만, 지급받을 수 있는 평균 연금은 1265만엔이다. 713만엔의 손해를 보는 구조다. 반대로 62세인 실버 세대는 평생 보험료로 1436만엔을 내고 1938만엔을 받는다. 낸 돈보다 502만엔을 더 받는다.
국내에서 '연금 고갈론'이 나오자 적립인 현행 방식을 부과 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온다. 적립 방식은 현역 당시 낸 돈을 적립한 기금의 범위 안에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퇴자가 크게 늘어 지불해야 할 돈이 폭증하면 적립금이 고갈된다. 그 대안으로 보험료를 걷은 만큼 은퇴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이 꼽히고 있다.
이 방식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세금을 낼 젊은 세대가 급감하고 복지 혜택을 받는 은퇴 세대가 급증하는 핵심을 간과하고 있다. 노령자 증가는 복지·의료비 급증을 낳고 이는 또 재정·건강보험 적자를 눈덩이처럼 키운다. 노동 인구 감소는 경제성장률도 낮춘다.
고령화율이 1%포인트 높아지면 GDP(국내총생산)가 약 0.97%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부과 방식으로 바꾸면 연금 고갈 대신 국가 재정이 파탄 난다. 고령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데도 연금 개혁을 미루는 것은 갓난아기들에게 빚 폭탄을 떠넘기는 일이다. 고령화와 성장 정체, 고용 참사 같은 과제를 세금으로만 땜질해서는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