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경영진은 월성 1호기 폐쇄 관련 경제성 분석을 은폐하고 이사회의 폐쇄 의결을 유도해 고의로 회사에 치명적 손실을 가했다. 모르거나 실수로 그런 게 아니라 알면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 한수원 최고 책임자가 주도했을 텐데, 그는 취임하자 한수원 이름에서 '원자력'을 떼내는 걸 검토했던 인물이다. 그런 사정이더라도 한수원 사내이사들이 저항 없이 시키는 대로 끌려갔다는 건 비겁하다. 허술한 안건 설명서를 읽고 거수기 역할을 한 사외이사들은 한심하다.
작년 6월 15일 열린 이사회 회의록을 야당 국회의원을 통해 입수해 읽어봤다. 이사회 날은 여당의 지방선거 압승(6월 13일) 이틀 뒤였다. 밀어붙여도 되겠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소집 절차 없이 긴급 개최한 것을 양해해 달라는 말부터 했다. '1주일 이전 소집 통보'가 상법상 원칙인데 당시 이사회는 하루 이틀 전 통보했다고 한다.
안건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삼척·영덕의 4개 신규 원전 건설 포기의 두 가지였다. 이사들이 겪어본 가장 중대 사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2명이 참석한 이사회는 10시 30분 시작해 11시 50분 끝났다. 호텔의 우아한 오찬으로 이어지는 각본대로의 진행이었을 것이다. 회의록은 A4 17장 분량인데 발언자는 '000 이사' 식으로 표기됐다. 이사들이 가장 관심 있었던 부분은 법률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월성 1호 경우 법무실장이 두 차례 등장해 "산업부 협조 공문을 받았고 그것이 사실상의 구속력을 갖는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행정청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어서 민사 책임 가능성은 낮고, 이사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어서 형사상 배임죄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들 자리 보전을 위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을 경우에도 개인 이해와 관계없다는 건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날 이사들에게 회계법인이 작성한 경제성 분석 보고서는 배포되지 않았다. 한수원 사내이사들은 '최근 에너지 정책과 규제 환경' 같은 추상적인 말로 월성 1호기의 이용률(가동률)이 손익분기점인 54.5%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제성 분석 보고서 원문엔 월성 1호기의 과거 평균 이용률이 79.5%, 월성 1~4호기 평균은 89.7%, 전체 23기 평균은 89.0%였다는 수치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2017년의 이용률이 40.6%밖에 안 됐고 향후 이용률도 불확실성이 높아 경제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2017년의 40.6%는 정부 출범 후 바로 가동 중단 상태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월성 1호기를 침몰 세월호에 비유했으니 가동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사외이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충분히 분석한 걸로 이해한다'고나 했을 뿐 경제성 분석 보고서 원문을 보여 달라고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회계법인의 경제성 분석 자체부터 '조기 폐쇄'에 유리하도록 원자력 전기 판매 단가를 낮게 잡았다. 예를 들어 MWh당 판매 단가를 2018년 5만5960원, 2019년 5만2670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2018년의 실제 판매 단가는 전망보다 10.9% 비싼 6만2092원이었다. 그렇게 낮은 단가를 적용했는데도 보고서는 (이용률은 60%로 잡고) '계속 가동이 경제성 있다'고 결론 내고 있었다.
문제의 경제성보고서는 일개 회사인 한수원의 장부상 손실·이익만 따진 것이다. 월성 1호기를 폐쇄하는 대신 석탄발전소를 가동하면 막대한 미세 먼지와 온실가스가 나온다. 국가 차원의 공공 경제성 분석에선 이런 '시장 바깥 외부 효과'까지 따져야 한다. 미세 먼지의 피해를 얼마로 계산할지는 확립된 이론이 없다. 반면 온실가스는 시장 거래 가격이 있다. 현재 국내 배출권 시장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분에 대한 가격 은 t당 4만원 수준이다. 월성 1호기보다 조금 큰 용량의 영흥화력 1·2호기에서 지난해 각각 482만·531만t 온실가스를 내뿜었다.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면 연 500만t 온실가스 배출을 막을 수 있고, 그 회피(回避) 이익은 매년 2000억이다. 월성 1호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결정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