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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회계 비공개가 이상한 일이다

[김신영, "노조 회계 비공개가 이상한 일이다," 조선일보, 2022. 12. 24, A30쪽.]

정부가 노동조합의 회계를 더 투명하게 운영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민간단체에 들고 나는 돈을 정부가 통제해 탄압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한다. 이들은 노조의 재정을 조합원에게만 알리면 되지 왜 대중이 들여다보도록 공시해야 하느냐고 주장한다. 반대로 묻고 싶다. 하지 않을 근거는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 회계를 개혁하려는 이유로 부패 척결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인 명분이 있다고 말한다. 노조 유지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는 사실이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밝힌 연간 국가보조금 37억원은 일부에 불과하다. 노조 조합원이 회비라고 생각하고 내는 조합비는 세법상 기부금으로 분류돼 연말정산 때 20%씩(2021~2022년 기준) 세액공제를 해준다. 2000년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도입하면서 다른 세금은 조금씩 깎아줬는데 그때 함께 도입된 제도다. 많은 직장인이 인식 못 하지만, 노조 조합비를 내면 정부가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환불해주고 있다. 민주노총이 걷는 연간 조합비는 약 1000억원으로 추정된다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200억원을 세금에서 지원해준다는 뜻이다.

역시 기부금으로 꾸려가는 다른 공익법인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매년 공시해야 한다. 정부의 세금 혜택, 기부자들의 선의(善意) 등을 감안한 견제 장치다. 조합비에 대해 기부금 세액공제 혜택을 똑같이 받는데도 노조는 “공익법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장부 공개를 거부한다. 비영리법인 세제 전문가인 배원기 홍익대 교수는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사회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공익법인이어야 하고, 그 경우 재정을 공개하는 것이 한국 세법의 원칙이다. 하지만 노조는 혜택은 받고 의무가 없는 어중간한 상태로 유지되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 노조가 얼마나 ‘어중간한 상태’인지는 미국과 비교하면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도 노조를 세금으로 지원한다. 조합비를 내면 일정액을 환급해준다. 대신 노조에 대한 공시 의무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까다롭다. 노조가 연간 1만달러(약 1280만원) 이상을 주는 임직원의 이름·급여·직무와 연간 250달러 넘는 지출의 용처를 세세하게 밝혀야 한다. 임원 연봉 정도만 공개하면 되는 상장사보다도 공시 규정이 훨씬 엄하다.

미국 최대 노조 중 하나인 ‘팀스터(Teamsters)’의 공시 자료를 찾아보았다. 미 노동부의 노조 공시 전용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니 간단히 나왔다. 연례 보고서는 분량이 415쪽에 달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의 자세하기로 이름난 연례 보고서가 80쪽 수준인데 이보다도 훨씬 두껍다. 위원장부터 미화원까지, 노조에 속한 임직원 약 500명에 대한 연봉 및 노조가 지출한 비용이 짜글짜글 적혀 있다.

이해 충돌 소지가 있는 노조 간부의 경제 활동도 공시 대상이다. 조합원의 돈을 모아 사업이나 행사를 하면서 내부자가 개인적인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팀스터의 한 노조 간부가 공시한 내역은 이렇다. ‘노조 관련 금융사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25달러짜리 화분 받음, 노조 행사를 연 호텔이 25달러 상당의 과일 바구니를 선물로 보냄….’

노조 회계 장부의 철저한 공시를 명시한 미국의 ‘노사 보고 및 공시에 관한 법’은 그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수백만명의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조와 사용자(회사)의 관계는 국가의 상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의회 조사 결과 조합원과 대중의 이익을 해치는 다수의 노조 비리가 발각되었다.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위해 노동단체 및 임직원에 대해 최고 수준의 책임과 윤리적 기준을 요구한다.’ 노조가 썩어 들어가면 국가 경제로 독이 번질 수 있다는 경계가 담겨 있다. 비슷한 이유로 프랑스, 독일 같은 국가들은 전문가에 의한 독립적인 회계 감사 의무화 등의 견제 장치를 두고 있다. 한국은 그조차도 아니다. 노조 회계 감사는 자격 요건이 없다. 세금은 어느 나라보다 많이 지원하는데 납세자는 ‘셀프 투명성’만 믿어야 하는 처지다.

노동운동에 대해 한국 사회는 그동안 참 너그러웠다. 출근길을 막고 시내를 마비시켜도 대체로 견뎠다. ‘전태일’로 상징되어온, 노동계의 민주화에 대한 기여를 어느 정도 인정해준 결과일지 모른다. 언제까지 그런 접근이 먹힐까. 기업은 상장사·비상장사 할 것 없이, 비영리단체도 점점 많은 대상이 전보다 엄격한 회계 공시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번거로운 건강검진이 결국 건강에 도움이 되듯이 철저한 회계 감사와 공개가 조직의 미래에 득이 된다는 것을 선진화된 자유시장경제 참가자들은 이미 안다. 노조만 이를 ‘무단통치’라며 과격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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