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바꿀 수 없는 한 반일(反日) 정서는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대로라면 누군가의 말처럼 가해와 피해의 역사는 천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진리다. 그런데 이상하다. 조선은 300년 동안 왜란(倭亂)을 곱씹으며 이미 망한 명나라의 혼령까지 모셨다. 그렇게 과거를 기억했는데 왜 미래가 없었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한국의 역사 공간은 성역에 가깝다. '친일(親日) 탓에 나라가 망했고, 반일 덕에 나라가 일어섰다'는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신념일 뿐이다. 숭명(崇明)과 반일은 동전의 양면이었고 19세기 후반에도 반일 정서는 역사를 움직이는 강력한 에너지로 작동했다. 메이지유신 직후 서계(書契) 사건, 개항 파동,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아관파천 등 중대 사건의 배후엔 이 정서가 있었다. 친일도 있었다. 일본을 따라 자강(自强)을 추진한 개화파다. 이들은 19세기가 끝나기 전 조선에서 씨가 말랐다. 그런데 왜 조선은 다시 피해자로 전락했을까.
한국사엔 어려운 문제가 있다. 19세기 동북아 판도에 대한 세계사와의 시각 차이다. 한국사는 이 시기 동북아를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침략 공간으로 해석한다. 20세기 초 국권 상실에 기초한 선악(善惡)의 이분법을 19세기 세계사로 소급·확대해 적용한 결과다. 하지만 세계사의 시각에서 당시 동북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중화주의의 퇴조와 연해주를 삼킨 러시아의 대두였다. 적어도 세계 열강은 그렇게 인식했다.
지금 동북아를 둘러싼 한국과 세계의 부조화도 독특한 반일 정서에 기초한다. 21세기 동북아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중국 패권주의의 부활과 북핵(北核)이다. 이 도전에 한국과 미국, 미국과 일본이 동맹 관계로 얽혀 응전하고 있다. 중학생도 이 구도를 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미국 안보의 중요한 축인 일본과 싸우고 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동맹을 보완하는 협정도 깼다. 세상을 거꾸로 읽는다. 손바닥 뒤집듯 안보 지형을 바꾼다. 매스컴은 그것이 정의(正義)인 양 떠들면서 권력에 아부한다. '윤치호 일기'에 기록된 19세기 미국 외교관의 말이 떠오른다. "조선 관리는 꿈결 속에 있는 듯하다."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은 동북아로 지배권을 넓혔다. 미국도 태평양을 건넜다. 아편전쟁과 페리의 흑선(黑船)이 상징하는 역사다. 두 강국의 이해는 한 지점에서 일치했다. 러시아의 남하(南下)를 막는 것이다. 영·미 편에서 시간을 벌면서 개혁으로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 당시 조선이 가야 할 현명한 길이었다. 일본이 방해하면 국왕이 선봉에 서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길을 택해야 했다. 그랬다면 이탈리아를 물고 늘어진 에티오피아처럼 불완전한 독립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집권자들은 반일을 명목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한반도 안보 지형을 일거에 뒤집었다. 세계 최강 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반일'한 것이다. 조선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이 공백을 일본이 파고들었다. 그때 영·미는 '실망과 우려'를 말로 하지 않았다.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했다.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용인했다. 이것이 19세기 세계사의 맥락에서 본 망국의 원인이다. 반일을 안 해서 망한 게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반일을 해서 망한 것이다. 오직 친일을 해서 망한 게 아니라 강자에게 빌붙어 친중·친일·친미·친러로 정신없이 안보 지형을 바꾸다가 망한 것이다.
조선의 집권자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일본처럼 개혁하기도 싫었고 일본과 목숨 걸고 싸우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개혁은 나라와 백성을 가산(家産)으로 취급한 절대 왕권의 약화를 뜻했다. 국왕과 척족은 나라에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국익을 외면하고 정파(政派) 이익과 사익을 앞세웠다. 반일조차 그런 식으로 했다. 지금 문 정권의 반일은 국익을 위한 것인가, 사익을 위한 것인가.
중국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당시 조선을 이렇게 기록했다. '중국당이 일본당으로 바뀌고, 러시아당으로 바뀌었다가 또 일본당으 로 바뀌었다. 오직 강한 것을 바라보고, 오직 나를 비호해줄 수 있는 것을 따랐다.' 이렇게 덧붙인다. '(조선은) 한번 모욕당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나지만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19세기 역사는 백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경고한다. 반일을 해도 문 정권처럼 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한국의 역사 공간은 성역에 가깝다. '친일(親日) 탓에 나라가 망했고, 반일 덕에 나라가 일어섰다'는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신념일 뿐이다. 숭명(崇明)과 반일은 동전의 양면이었고 19세기 후반에도 반일 정서는 역사를 움직이는 강력한 에너지로 작동했다. 메이지유신 직후 서계(書契) 사건, 개항 파동,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아관파천 등 중대 사건의 배후엔 이 정서가 있었다. 친일도 있었다. 일본을 따라 자강(自强)을 추진한 개화파다. 이들은 19세기가 끝나기 전 조선에서 씨가 말랐다. 그런데 왜 조선은 다시 피해자로 전락했을까.
한국사엔 어려운 문제가 있다. 19세기 동북아 판도에 대한 세계사와의 시각 차이다. 한국사는 이 시기 동북아를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침략 공간으로 해석한다. 20세기 초 국권 상실에 기초한 선악(善惡)의 이분법을 19세기 세계사로 소급·확대해 적용한 결과다. 하지만 세계사의 시각에서 당시 동북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중화주의의 퇴조와 연해주를 삼킨 러시아의 대두였다. 적어도 세계 열강은 그렇게 인식했다.
지금 동북아를 둘러싼 한국과 세계의 부조화도 독특한 반일 정서에 기초한다. 21세기 동북아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중국 패권주의의 부활과 북핵(北核)이다. 이 도전에 한국과 미국, 미국과 일본이 동맹 관계로 얽혀 응전하고 있다. 중학생도 이 구도를 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미국 안보의 중요한 축인 일본과 싸우고 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동맹을 보완하는 협정도 깼다. 세상을 거꾸로 읽는다. 손바닥 뒤집듯 안보 지형을 바꾼다. 매스컴은 그것이 정의(正義)인 양 떠들면서 권력에 아부한다. '윤치호 일기'에 기록된 19세기 미국 외교관의 말이 떠오른다. "조선 관리는 꿈결 속에 있는 듯하다."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은 동북아로 지배권을 넓혔다. 미국도 태평양을 건넜다. 아편전쟁과 페리의 흑선(黑船)이 상징하는 역사다. 두 강국의 이해는 한 지점에서 일치했다. 러시아의 남하(南下)를 막는 것이다. 영·미 편에서 시간을 벌면서 개혁으로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 당시 조선이 가야 할 현명한 길이었다. 일본이 방해하면 국왕이 선봉에 서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길을 택해야 했다. 그랬다면 이탈리아를 물고 늘어진 에티오피아처럼 불완전한 독립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집권자들은 반일을 명목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한반도 안보 지형을 일거에 뒤집었다. 세계 최강 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반일'한 것이다. 조선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이 공백을 일본이 파고들었다. 그때 영·미는 '실망과 우려'를 말로 하지 않았다.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했다.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용인했다. 이것이 19세기 세계사의 맥락에서 본 망국의 원인이다. 반일을 안 해서 망한 게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반일을 해서 망한 것이다. 오직 친일을 해서 망한 게 아니라 강자에게 빌붙어 친중·친일·친미·친러로 정신없이 안보 지형을 바꾸다가 망한 것이다.
조선의 집권자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일본처럼 개혁하기도 싫었고 일본과 목숨 걸고 싸우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개혁은 나라와 백성을 가산(家産)으로 취급한 절대 왕권의 약화를 뜻했다. 국왕과 척족은 나라에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국익을 외면하고 정파(政派) 이익과 사익을 앞세웠다. 반일조차 그런 식으로 했다. 지금 문 정권의 반일은 국익을 위한 것인가, 사익을 위한 것인가.
중국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당시 조선을 이렇게 기록했다. '중국당이 일본당으로 바뀌고, 러시아당으로 바뀌었다가 또 일본당으 로 바뀌었다. 오직 강한 것을 바라보고, 오직 나를 비호해줄 수 있는 것을 따랐다.' 이렇게 덧붙인다. '(조선은) 한번 모욕당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나지만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19세기 역사는 백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경고한다. 반일을 해도 문 정권처럼 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