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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예로 사육됐다

2007.11.20 11:26

관리자 조회 수:1367 추천:95

[김성욱, “우리는 노예로 사육됐다,” 미래한국, 2007. 11. 03, 11쪽.]

신동혁 씨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중 하나인 개천14호 관리소 완전통제구역에서 수용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죄수의 삶을 시작했다. 1996년 11월 29일 어머니와 형이 탈출 시도를 하여 공개처형을 당했으며, 본인은 14세 나이로 불고문 등 온갖 만행을 겪었다.

2005년 1월 2일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는 같은 해 2월 2일 중국으로 탈출해 이듬해 8월 10일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하나원 수료 이후에도 정치범수용소 경험과 충격 등으로 심각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2007년 1월부터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운영하는 ‘고문 및 PTSD상담팀’의 보호 하에 들어와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을 탈출한 신동혁 씨의 수기 ‘세상 밖으로 나오다’출판기념 세미나가 23일 북한인권정보센터 주최로 서울 배재빌딩에서 개최됐다. 신 씨는 ‘개천14호관리소’ 출생자로서, 수용소 탈출 후 중국으로 도망쳐 지난해 8월 한국에 들어왔다. 정치범수용소는 출소가 가능한 ‘혁명화구역’과 출소가 불가능한 ‘완전통제구역’으로 구분된다. 탈북민 중 강철환 씨 등은 모두 혁명화구역에 있었던 이들이다. 신동혁 씨는 완전통제구역을 탈출해 수기까지 출판한 국내 최초의 인물이다.

억울하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통상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연애, 결혼, 임신, 출산 등이 금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20- 30년 간 ‘노동량향상을 위한 보상책’으로 결혼제도가 이용돼 왔다. 신 씨는 수용소 내 결혼제도에 대해 “일을 잘 하게 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며 “수용소 관리(보위지도원)가 일 잘하는 사람을 추천한 뒤, 수용소 소장(보위부장)이 승인하고, 결혼 한 부부는 5일 동안 함께 지낸 뒤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숙소에 살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 씨는 배우자 선택의 자유조차 박탈된 결혼의 결실로 태어나 ‘죄 없는 죄수의 삶’을 살아 온 케이스이다. 그는 오전 5시에서 생활총화를 마치는 오후 10시까지 18시간의 강제노역은 물론 일상적인 폭행, 구타, 고문을 어린 시절부터 겪어야했다.

신 씨는 이날 세미나에서 “수용소 안에선 ‘북한’조차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는 말을 들어 본적도 없고, 그 의미를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며 “우리는 덧셈과 뺄셈 그리고 작업지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와 감정만을 학습한 채 노동현장에서 주먹과 몽둥이 아래 노예로 사육되었다”고 했다.

성적노리개가 되는 여자 수감자들

신 씨는 또“수용소 안에선 위계질서가 철저하다”며 “수용소 관리(보위지도원)에 대한 절대복종을 정점으로 수용소 출신 가운데 ‘총반장,’ ‘작업반장’을 임명해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게 한다”고 증언했다. 또 그는 “수용소 주민들은 수용소 관리들의 기분에 따라 생사, 화복이 결정되며, 그로 인해 보위지도원에 의한 임의적 살인이 자행된다고”고 말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저질러지는 만행 중 하나는 성적 유린이다. 보위원들은 여성들을 건드리고, 임신 등 문제가 생기면 그 여성은 ‘사라진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순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임신한 처녀가 사라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 신 씨의 설명이다.

보위원들은 처녀들에 대한 강간․추행 등을 저지르고 문제가 되면 죽여 버린다. 신 씨는 1996년 9월 억울하게 죽어간 사촌누나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어느 날 숙모와 사촌누나 신혜숙이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올라갔다. 그러던 중 경비대 눈에 들켰다(허가 없는 도토리 줍기는 금지돼 있다). 그들은 숙모와 사촌누나를 불러놓고 경계선까지 올라왔다고 하면서 말을 시키다가 사촌누이에게로 눈길이 쏠렸다. 누나는 맨 알몸으로 성폭행을 당한 채 기절하였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숙모는 정신이 돌아서 그 다음날 경비대 새끼들이 내 딸을 죽였다며 통곡을 하다 어디론가 잡혀갔다. 그리고는 소식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하나 둘씩 사라졌다.”

억울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신 씨는 “수용소 주민들은 모든 것을 일종의 신분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죄인이라는 죄책감이 주입돼 살기 때문에 억울하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며 “불만이 있더라도 관리소 체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같은 수용소 주민인 작업반장이 나를 때리는 것에 대한 것 등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수용소 안에서 저항이 없는 이유’에 대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외에도 수용소의 소위 교화(敎化)로 인하여 “죄인이라는 죄책감이 주입돼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고발해 생기는 보상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정일정권이 주민들을 육체적 노예뿐 아니라 정신적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신 씨는 “지금도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밥 한 끼 더 얻어 먹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고 짐승 같은 싸움도 서슴지않는다. 나 역시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남의 잘못을 찾아내 고발하고 그 사람 밥을 대신 먹는 짓을 했었다”며 “우선 탈북민들이 힘을 합쳐 김정일정권에서 모든 정치범 수용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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