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당한 북한 기독교인 모두 3만명 넘어
2008.12.24 13:55
[김창범, “순교당한 북한 기독교인 모두 3만명 넘어,” 미래한국, 2008. 11. 1, 2쪽; 편집위원.]
6․25전쟁이 끝난 후 현재까지 최소 1만 5,000여 명의 북한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처형당한 것으로 최근 월간조선(10월호)이 보도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반석 목사(모퉁이돌 선교회 총무)의 미국 풀러신학대 목회학박사 학위 논문인 “북한 지하교회에 대한 선교학적 이해”란 제목의 글에서 밝혀진 것으로 지난 9월 말 미국 선교학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있다.
이반석 목사는 이 논문에서 모퉁이돌 선교회 총무로서 사역하면서 북한 지하교회와 관련한 여러 문헌과 국방부 자료, 탈북민들의 증언 등을 종합한 결과 1953년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북한에서 처형된 북한 기독교인 수가 모두 1만 5,657명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제한된 경로를 통해 일부를 확인한 것일 뿐 파악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보여 최소한 3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순교했을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1958년 ‘중앙당집중지도사업’을 통해 처형된 기독교인을 비롯하여 파악되지 않은 처형 사례가 상당수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1953년부터 1972년까지 교회말살정책을 전개했고 이 기간에 희생된 기독교인이 1만897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후 북한에서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자취가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중앙당집중지도사업’ 등 북한의 혹독한 종교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기독교의 생명이 아주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신앙의 생명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음을 1972년 이후 북한 지하교회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확인된 바에 의하면 1972년부터 1988년까지 은밀한 지하교회 활동이 계속되었고 이 기간에 모두 299명이 처형을 당해 지하교회는 더욱 지하로 숨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5년까지 7년간 기독교인 순교자수는 두 배 이상 증가해 741명에 이르렀는데 소위 ‘네트워크’ 조직으로 지하교회가 다시 성장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트워크’란 지도자 아래 개별적 라인을 구성하여 그룹별로 조직화된 것을 말한다.
1995년부터 북한 지하교회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기독교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화교와 조선족에 의한 성경보급과 복음전도가 활발했다. 이 기간에 순교당한 기독교인은 3,720명에 달했는데 순교자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북한 기독교의 교세도 커졌다는 반증이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적발된 지하교인들은 대부분 잔인하게 처형되었다고 한다. 1973년 11월 30일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벌어진 공개처형 장면은 차마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안전원들이 달려들어 세 명의 노인들을 끌어다 철판 위에 눕히고 머리를 압축판 쪽으로 밀어 넣었다. 군중 속에서 선정적인 외침이 나왔다. ‘저 인간쓰레기들을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라!’ 작동 구령과 함께 25톤급 프레스가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압축판이 노인들의 머리를 향해 조여들고 있었다. 잠시 후, 두개골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뇌수와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논문은 지역별 순교자 통계를 통해 지하교회가 북한 전역에 걸쳐 퍼져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가장 많은 기독교인이 적발된 곳은 평안북도로서 총 9,444명이 처형됐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1958년 ‘중앙당집중지도사업’ 시기 전후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함경북도의 경우는 초기에 32명에 불과했던 순교자가 1995년 이후 2,111명으로 급증했다. 이것은 중국 접경지역을 통해 기독교가 유입되었다는 증거이다. 특히 평균 150명 단위의 ‘네트워크’ 규모로 적발된 수가 1,31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볼 때 지하교회의 조직화가 상당히 진전됐음을 알 수 있다.
지하교회 네트워크는 현재 꾸준히 확장되고 있으며 개인과 가족 중심의 기독교 신앙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209명의 개인이 적발된 반면 그룹이나 네트워크를 통해 적발된 지하교인은 각각 6,677명과 8,628명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사회에서 기독교의 대중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반석 목사는 논문에서 북한 기독교를 역사적으로 볼 때 1995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으로 평가했다. 1995년 이전에는 6․25전부터 신앙을 지켜온 고(高)연령층이 지하교회의 주축을 이루었으나 1995년 이후는 중국을 여행하고 온 40대 미만의 젊은 세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1995년은 ‘폐쇄’를 지향하는 북한체제에도 불구하고 ‘개방’의 욕구로 가득한 젊은 세대에 의해 북한 기독교의 중심축이 교체된 시기였다는 말이다.
또 논문은 북한의 기독교 인구에 대해 현재 나타난 기독교인은 모두 1,000여 지하교회에서 13만 5,000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것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이 공식 발표한 1만 2,000명을 훨씬 넘는 숫자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수는 추정에 불과할 뿐 단정할 수는 없으나 급속히 증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북한에서의 전도는 은밀한 개인전도가 가장 많고 중국여행이나 라디오, 비디오, 성경책, 직접 계시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종교말살을 획책하지만 중국을 통한 문화의 접촉을 통해 전해지는 기독교 복음의 물줄기는 결코 막을 수 없음을 다시 확인시켜준 셈이다.
월간 조선은 미래한국신문이 특종 보도한 남포 기독교인 처형사건(7월 23일자)을 보도하면서 북한 지하교회의 수난과 지하교인들의 울부짖음을 전했다. 특히 모퉁이돌 선교회의 이삭 목사는 “오늘도 북한 지하교인들은 ‘우리 여기 있어요.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대한민국을 향해 부르짖고 있다”고 했다.
6․25전쟁이 끝난 후 현재까지 최소 1만 5,000여 명의 북한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처형당한 것으로 최근 월간조선(10월호)이 보도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반석 목사(모퉁이돌 선교회 총무)의 미국 풀러신학대 목회학박사 학위 논문인 “북한 지하교회에 대한 선교학적 이해”란 제목의 글에서 밝혀진 것으로 지난 9월 말 미국 선교학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있다.
이반석 목사는 이 논문에서 모퉁이돌 선교회 총무로서 사역하면서 북한 지하교회와 관련한 여러 문헌과 국방부 자료, 탈북민들의 증언 등을 종합한 결과 1953년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북한에서 처형된 북한 기독교인 수가 모두 1만 5,657명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제한된 경로를 통해 일부를 확인한 것일 뿐 파악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보여 최소한 3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순교했을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1958년 ‘중앙당집중지도사업’을 통해 처형된 기독교인을 비롯하여 파악되지 않은 처형 사례가 상당수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1953년부터 1972년까지 교회말살정책을 전개했고 이 기간에 희생된 기독교인이 1만897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후 북한에서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자취가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중앙당집중지도사업’ 등 북한의 혹독한 종교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기독교의 생명이 아주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신앙의 생명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음을 1972년 이후 북한 지하교회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확인된 바에 의하면 1972년부터 1988년까지 은밀한 지하교회 활동이 계속되었고 이 기간에 모두 299명이 처형을 당해 지하교회는 더욱 지하로 숨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5년까지 7년간 기독교인 순교자수는 두 배 이상 증가해 741명에 이르렀는데 소위 ‘네트워크’ 조직으로 지하교회가 다시 성장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트워크’란 지도자 아래 개별적 라인을 구성하여 그룹별로 조직화된 것을 말한다.
1995년부터 북한 지하교회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기독교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화교와 조선족에 의한 성경보급과 복음전도가 활발했다. 이 기간에 순교당한 기독교인은 3,720명에 달했는데 순교자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북한 기독교의 교세도 커졌다는 반증이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적발된 지하교인들은 대부분 잔인하게 처형되었다고 한다. 1973년 11월 30일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벌어진 공개처형 장면은 차마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안전원들이 달려들어 세 명의 노인들을 끌어다 철판 위에 눕히고 머리를 압축판 쪽으로 밀어 넣었다. 군중 속에서 선정적인 외침이 나왔다. ‘저 인간쓰레기들을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라!’ 작동 구령과 함께 25톤급 프레스가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압축판이 노인들의 머리를 향해 조여들고 있었다. 잠시 후, 두개골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뇌수와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논문은 지역별 순교자 통계를 통해 지하교회가 북한 전역에 걸쳐 퍼져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가장 많은 기독교인이 적발된 곳은 평안북도로서 총 9,444명이 처형됐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1958년 ‘중앙당집중지도사업’ 시기 전후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함경북도의 경우는 초기에 32명에 불과했던 순교자가 1995년 이후 2,111명으로 급증했다. 이것은 중국 접경지역을 통해 기독교가 유입되었다는 증거이다. 특히 평균 150명 단위의 ‘네트워크’ 규모로 적발된 수가 1,31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볼 때 지하교회의 조직화가 상당히 진전됐음을 알 수 있다.
지하교회 네트워크는 현재 꾸준히 확장되고 있으며 개인과 가족 중심의 기독교 신앙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209명의 개인이 적발된 반면 그룹이나 네트워크를 통해 적발된 지하교인은 각각 6,677명과 8,628명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사회에서 기독교의 대중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반석 목사는 논문에서 북한 기독교를 역사적으로 볼 때 1995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으로 평가했다. 1995년 이전에는 6․25전부터 신앙을 지켜온 고(高)연령층이 지하교회의 주축을 이루었으나 1995년 이후는 중국을 여행하고 온 40대 미만의 젊은 세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1995년은 ‘폐쇄’를 지향하는 북한체제에도 불구하고 ‘개방’의 욕구로 가득한 젊은 세대에 의해 북한 기독교의 중심축이 교체된 시기였다는 말이다.
또 논문은 북한의 기독교 인구에 대해 현재 나타난 기독교인은 모두 1,000여 지하교회에서 13만 5,000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것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이 공식 발표한 1만 2,000명을 훨씬 넘는 숫자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수는 추정에 불과할 뿐 단정할 수는 없으나 급속히 증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북한에서의 전도는 은밀한 개인전도가 가장 많고 중국여행이나 라디오, 비디오, 성경책, 직접 계시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종교말살을 획책하지만 중국을 통한 문화의 접촉을 통해 전해지는 기독교 복음의 물줄기는 결코 막을 수 없음을 다시 확인시켜준 셈이다.
월간 조선은 미래한국신문이 특종 보도한 남포 기독교인 처형사건(7월 23일자)을 보도하면서 북한 지하교회의 수난과 지하교인들의 울부짖음을 전했다. 특히 모퉁이돌 선교회의 이삭 목사는 “오늘도 북한 지하교인들은 ‘우리 여기 있어요.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대한민국을 향해 부르짖고 있다”고 했다.